1년 넘게 이어진 찬반 논란 끝에 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안 통과
국민의힘 당론으로 폐지안 처리…교육청 "필요한 행정절차 진행"
(홍성=연합뉴스) 김소연 기자 = 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1년이 넘게 이어진 찬반 논란 끝에 15일 도의회를 통과했다.
교권 침해 이슈와 맞물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교권과 학생 인권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의견이 맞선 가운데 조례 제정 3년 만에 폐지안이 가결됐다.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는 7개 시도 가운데 폐지안이 지방의회를 통과한 것은 처음으로, 교육청은 깊은 유감을 표시하면서 행정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다수당 때 제정…3년 만에 국민의힘 주도로 폐지안 통과
충남학생인권조례는 지난 제11대 충남도의회에서 제정됐다.
2020년 6월 열린 제321회 정례회에서 경기, 광주광역시, 서울, 전북에 이어 전국 5번째였다.
당시 재적의원 37명 중 29명이 찬성, 6명 반대, 2명은 기권으로 조례안이 통과됐는데 11대 도의회 당시 다수당은 더불어민주당이었다.
이후 인천과 제주에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 현재는 7곳에서 시행 중이다.
충남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 인권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로, 자유권·평등권·참여권·교육복지권 등을 보호받는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교육감은 학생 인권을 보장하는 심의기구로 충남학생인권위원회와 학생인권옹호관, 학생인권센터 등을 두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12대 도의회에서 다수당이 국민의힘으로 바뀌었고, 도의회는 조례 제정 3년 만인 이날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재석의원 44명에 찬성 31명, 반대 13명으로 가결했다. 전국 7개 시도 가운데 처음이다.
현재 도의회 정당별 의석수는 국민의힘 34명, 더불어민주당 12명, 무소속 1명이다.
주민 청구로 폐지 논의 본격화…서이초 사건에 힘 받기도
충남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의가 본격화한 것은 지난해 8월부터다.
충남기독교총연합회와 충남바른인권위원회, 우리아이지킴이학부모연대 등은 충남학생인권조례와 충남인권조례 폐지를 주민 발의로 청구했다.
이들은 두 조례가 좌파적 인권 개념을 강요하고, 올바른 지도를 차별이라고 금지해 학생 인권과 이익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두 조례 폐지를 위해 필요한 서명을 받아 지난 3월 도의회에 전달했다.
도의회가 서명부 검토 절차를 진행하던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학생인권조례 폐지 또는 개정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악성 민원에 대처하는 교권 회복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왔다.
전국 1천700여개 사립학교 교장이 참여한 대한사립학교장회는 교권붕괴 원인의 상당 부분을 학생인권조례로 지목할 수 있다면서 조례 보완을 촉구하기도 했다.
충남교사노조도 학생인권조례로 교육활동에 제한이 있다며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으며, 교육부도 학생인권조례 개정 논의에 착수했다.
이런 가운데 도의회는 5개월 넘게 주민 청구 폐지안 서명부를 검토한 뒤 지난 9월 폐지안 수리·발의를 결정했다.
"학생 인권, 교권과 대립 아냐" 각계서 폐지 숙고 요청
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에 대한 각계의 우려도 잇따랐다.
유엔인권이사회 특별절차는 지난 1월 한국 정부에 "학생인권조례와 인권기본조례 폐지 프로젝트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유엔교육권특별보고관, 유엔건강권특별보고관, 유엔성적지향및성별정체성독립전문가, 여성차별실무그룹 등은 "학생 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은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근거한 차별에 반대하는 보호를 약하게 만들고 국제 인권 기준과 차별 금지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권과 학생 인권이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입장도 잇따라 나왔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서이초 사건이 발생했던 지난 7월 교권 침해가 학생 인권을 강조해 생겨난 문제라거나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탓으로 돌리려는 일각의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 위원장은 지난 5일 다시 한번 도의회에 폐지를 숙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새로운학교충남네트워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남지부, 충남실천교육교사모임, 충남좋은교사운동 등 4개 교원단체 역시 교권과 학생 인권은 함께 존중해야 하는 것이라며,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반대하고 교권 보호 조례 강화를 촉구했다.
충남지역 10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등으로 구성된 위기충남공동행동은 주민 청구된 폐지안이 절차·내용상 위법하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에 대전지법이 주민 청구된 폐지안 수리·발의 처분 효력을 내년 1월 18일까지 정지했고, 내년 1월 11일 본안 심리를 앞두고 있다.
국민의힘, 폐지 주도…교육청, 재의 요구 전망
주민 청구된 학생인권조례 폐지 처리가 법원에 의해 막히자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정하고, 직접 폐지에 나섰다.
박정식(아산3)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10월 직접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발의했고, 도의회는 이날 폐지안 통과를 의결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에 앞서 대전지법이 내년 1월 18일까지 주민 청구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 수리·발의 처분 효력을 정지한 만큼 폐지안 상정을 보류해달라고 의장에게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역사 앞에 부끄러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기도 했다.
교육청은 즉각 강한 유감을 표시하며 폐지안 재의 요구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육청은 입장문을 내고 "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는 헌법·법률 등에서 규정한 평등권과 비차별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단순히 조례 하나가 사라지는 게 아닌 차별과 폭력이 없는 인권 친화적 학교 교육 가치가 후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향후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필요한 행정절차를 진행하겠다"며 "학생들의 기본적 인권이 지켜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위기충남공동행동과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도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충남도의회가 주민대표로서 해야 할 마땅한 임무인 주민 인권 보장을 포기했다"며 도의회를 규탄했다.
so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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