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은 50년에 한번 찾아올 소재…동화같이 성공했죠"
토니·그래미상 수상자…"빅토르 위고 소설 덕에 사랑받을 수 있었죠"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파리에서 초연을 올리고 3년이 지났을 때 영어를 쓰는 어떤 프로듀서에게 연락이 왔죠. 공연의 음반을 듣자마자 인생의 작품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는데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어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신화는 작사가에게 걸려 온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노래 세 곡을 듣고 작품의 성공을 확신한 프로듀서가 그에게 공연을 제안한 것이다. 1980년 파리에서 3개월간 열렸던 공연은 1985년 런던 공연을 기점으로 뮤지컬 역사에 길이 남는 작품이 됐다.
그 우연한 전화를 받은 작사가는 알랭 부블리(82)였고, 그에게 전화를 건 인물은 뮤지컬 '캣츠'를 제작한 영국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였다.
부블리는 '레미제라블'의 성공이 여전히 동화 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15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한 인터뷰에서 "'레미제라블'의 성공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런던에서 공연이 열린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함께 작업한 작곡가조차도 성공하겠다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이었다"고 밝혔다.
부블리는 1973년 작 '프랑스 혁명', 1989년 작 '미스 사이공'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해 토니상과 그래미상을 각각 2회 수상한 작사가다.
작곡가 클로드 미셸 쇤베르크와 협업한 대표작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최고권위의 연극상인 몰리에르상을 받았다. 그가 작사에 참여한 2012년 작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의 수록곡 '서든리'(Suddenly)도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
'레미제라블'을 "50년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소재"라고 칭한 부블리는 작품을 구상한 계기 역시 우연이었다고 했다. 그는 1978년 영국에서 뮤지컬 '올리버'를 관람하던 중 갑작스럽게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떠올리고 머릿속으로 구상에 들어갔다.
부블리는 "작품을 보고 있는데 위고의 소설에 등장하는 소년 가브로슈가 불현듯 떠올랐다"며 "곧이어 '레미제라블'을 뮤지컬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당시 머리 한쪽으로는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지만 반대쪽으로는 '레미제라블'을 무대에 올린다면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상상하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주인공 장발장의 인생 역정을 그린 작품이다. 세상을 향한 분노를 품었던 장발장의 회심과 구원, 혁명을 향한 민중의 열망 등 깊이 있는 메시지로 전 세계에서 1억3천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현재 한국에서 공연되고 있는 '레미제라블'은 1980년 파리에서 공연한 작품에 몇 가지 장면을 추가한 버전이다. 위고의 소설을 접하지 못한 관객을 위해 장발장의 투옥 생활과 회심을 다룬 프롤로그를 추가한 것이 큰 변화다.
부블리는 "프랑스에서는 학교에서 '레미제라블'을 배우기 때문에 장발장의 이야기를 다룬 프롤로그가 필요 없었다"며 "파리 버전에는 장발장이 노역하는 장면이나 주교의 은촛대를 훔치는 장면이 없다"고 설명했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곡은 팡틴의 넘버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이었다고 한다. 원작 소설 중 홀로 딸 코제트를 기르는 여인 팡틴의 이야기를 보자마자 노래로 쓰겠다는 영감을 얻었다.
부블리는 해당 넘버에 대해 "작업 과정에서 가장 먼저 쓴 곡이기 때문에 마음 한켠에 기념품처럼 남아있다"며 "혁명에 나선 학생들이 바리케이드에서 부르는 노래 '드링크 위드 미'(Drink With Me)도 눈물을 글썽이며 쓴 곡이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작사한 노래가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되어 불리는 현상에 대해서는 훌륭한 원작 소설을 따른 결과물이었다고 했다. 다만, 원작 소설의 정수를 음악적으로 잘 살렸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부블리는 "위고의 천재성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을 소설 속에 담았다는 점에서 드러난다"며 "위고가 묘사한 인간군상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유효하기 때문에 소설이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의 역할은 소설 속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내한으로 처음 관람한 한국어 공연에서는 배우들의 훌륭한 기량에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선율이 공연에 도움을 준다고도 했다.
부블리는 "한국어를 듣고 있으면 노래하듯 말하는 느낌을 준다"며 "음정에 말을 싣는 느낌이라 공연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한국을 다시 찾는다면 '미스 사이공'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는 기대를 드러냈다. '미스 사이공'과 '레미제라블'을 함께하며 인연을 이어온 배우 김수하를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훌륭한 배우들의 목소리를 듣고 친구인 김수하 배우를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한국을 다시 찾는다면 '미스 사이공'으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내년 3월 10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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