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기 칠수록 이득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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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에 양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 중 90%는 사기꾼이라 봅니다".
대한민국 범죄자 4~5명 중 1명은 사기를 저질렀다는 의미다.
인터넷에서는 중고거래 사기, 전화로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속출하고 부동산 시장에는 전세사기가 횡행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사기 피해자 중 73.4%가 '피해액을 하나도 되찾지 못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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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에 양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 중 90%는 사기꾼이라 봅니다”.
평소 즐겨듣는 팟캐스트에 나온 한 변호사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었던 게 떠오른다. 그는 속마음을 읽은 듯 “진지한 얘기니까 웃지 마시라”고 했다. 오히려 더 재밌어 박장대소했다.
지난 8월 중순 농담 삼아 들었던 말은 현실이었다. 메일이나 주변인들로부터 이틀에 하나꼴로 사기를 당했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경찰청 통계도 증명한다. 지난해 기준 전체 범죄 발생 건수 중 사기죄 비율이 22.6%다. 대한민국 범죄자 4~5명 중 1명은 사기를 저질렀다는 의미다. 절도, 폭행, 강도 등 각종 범죄 중 발생 건수가 가장 많은 것도 사기였다.
일상생활 곳곳에 사기꾼들이 도사리는 게 현실이다. 가까운 지인을 대상으로 코인을 비롯한 각종 투자사기를 벌이는 건 예삿일이다. 자영업자를 겨냥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가게를 홍보해 주겠다며 접근해 계약금을 뜯어간다. 인터넷에서는 중고거래 사기, 전화로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속출하고 부동산 시장에는 전세사기가 횡행한다. 초호화 주택으로 꼽히는 잠실 시그니엘은 범죄 수단으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 사기꾼이 판치는 건 여전히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개인이 저지르는 일반사기는 피해액이 5억~50억원일 경우, 징역이 최소 1년 6개월에서 최대 7년이다. 50억원 규모 사기를 쳤다 적발돼 감옥을 7년 다녀오면 연봉 7억원짜리 교도소 생활이 되는 셈이다. 피해액이 300억원을 넘어가도 징역은 최대 13년이다.
경찰은 범죄 수익 환수를 위해 노력 중이다. 올해 상반기 1400억원어치 범죄 수익을 몰수추징보전했다. 그러나 사기 피해액 규모를 감안하면 새 발의 피다. 2018~2022년까지 5년간 가상자산 투자 사기 피해액은 5조3000억원이다. 같은 기간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조7000억원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사기 피해자 중 73.4%가 ‘피해액을 하나도 되찾지 못했다’고 답했다.
뜯긴 돈을 돌려받으려면 민사소송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가해자가 범죄 수익을 탕진했거나 몰래 숨겼다면 되찾을 방안이 없다.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인생에 빨간 줄(전과) 그어지는 걸 감안해도 한국에서는 사기를 치는 쪽이 더 이득”이라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사기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하소연할 곳도 없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탓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대학 동창에게 부동산 투자 명목으로 사기를 당해 1억원 넘는 돈을 뜯긴 A씨는 최근에서야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A씨는 “욕심부리다 당했다는 주변 손가락질이 두려워 혼자 속을 썩이다 최근 피해자 단체와 연이 닿아 고소를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피해자에 대한 분노보다 자책감이 더 심했다”고도 했다. 전국범죄피해조사 2020에 따르면 사기 피해자 10명 중 8명(80.3%)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한국은 사기꾼들에겐 천국과 마찬가지다. 형량이 낮고 범죄수익 환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테라·루나를 발행해 세계 투자자들에게 50조원 넘는 피해를 입힌 권도형이 미국으로 송환되면 재판에서 100년 넘는 형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청조가 미국인이었어도 한국에서처럼 감옥을 들락날락하면서 꾸준히 사기를 칠 수 있었을까. 그의 반복된 범행이 ‘제 버릇’ 탓인지, ‘제 나라 법’ 탓인지 생각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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