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누구의 그림자로 사는 건 원치 않아[그림책]
어느 날, 그림자가 탈출했다
미셸 쿠에바스 글·시드니 스미스 그림|김지은 옮김|책읽는곰|48쪽|1만4000원
그림자가 없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상상력을 자극한다. 옛이야기 속 그림자가 없는 존재는 유령이나 귀신으로 그려진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는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소개하며 그림자를 상실한 상태를 ‘사람자격’에 가해진 손상으로 해석했다. 그림자는 인간 자격의 필수적 요소인 것이다.
<어느 날, 그림자가 탈출했다>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그림자를 바라본다. 그림자는 인간에 예속된 존재이길 거부하고, 자유의지를 갖고 독립해 존재하고자 한다. 주인에게 예속된 상태, 주인의 반영으로만 존재하던 그림자는 이제 자신이 가고픈 곳으로 갈 수 있고, 되고픈 존재가 될 수 있다.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그림자 스무트는 지난 7년 반 동안 하품 나는 장면만 읽으면서 지냈습니다.” 그림자 스무트와 아이는 정해진 선 안에서만 살아간다. 하지만 꿈을 꿀 때만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꿈속에서 스무트는 ‘카나리아의 노랑’ 같은 노래를 부르고, ‘들꽃의 빨강’ 속에서 춤춘다. ‘하늘색 자유’를 꿈꾸던 날, 스무트는 아이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자유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마음껏 뛰어노는 스무트를 보고 다른 그림자들도 용기를 낸다. 민들레의 그림자는 날아오르고, 개구리의 그림자는 망토를 두른 왕자가 된다. 잠자리의 그림자는 크고 무시무시한 용이 되고, 바위의 그림자는 대성당이 되고 높은 빌딩이 되더니 구름까지 닿는 성이 된다.
모든 그림자가 자유를 얻은 세상은 아름답기만 할까? 스무트에게 슬슬 걱정이 먹구름처럼 드리운다. 흰수염고래의 그림자가 하늘의 해를 가린다면? 동물원 동물들의 그림자가 으르렁거리며 마을을 돌아다닌다면?
스무트는 바위로 작은 성을 쌓고 개구리에게 왕자처럼 성에 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잠자리에겐 용처럼 성문을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민들레 홀씨를 불어 씨앗이 하늘을 날 수 있게 한다. 그림자의 주인이 자유를 찾고 꿈을 이루자 그림자들은 제자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바람을 다 이루었으니까요.”
스무트는 어떻게 될까? 처음부터 스무트를 지켜보고 있던 아이는 그림자를 닮고 싶어진다. 그림자와 스무트는 다시 하나가 되어 마음껏 웃고 제멋대로도 굴어본다. 그림자는 억압되고 실현되지 못한 주인의 꿈이었던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지만 자유롭게 뛰어놀고 변신하는 그림자들의 모습에 어른도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규칙과 의무에 얽매이기로 치면 어린이보다 어른이 훨씬 더 심할 테니까.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할머니의 뜰>에서 서정적 그림을 선보였던 시드니 스미스가 생동감 있는 색채와 활기찬 그림을 통해 그림자가 느끼는 자유를 생생하게 전한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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