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다, 내 딴엔" 아이 죽인 부모의 독백

조태성 2023. 12. 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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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홈'은 르포작가 이시이 고타가 일본 열도를 충격에 몰아넣은 영유아 살해·유기 사건을 정밀하게 추적한 기록이다.

전수조사가 진행됐고, 여러 건의 영유아 살해사건이 뒤늦게 드러났고, 보호출산제와 출생신고제가 도입됐다.

저자는 부모라면 당연히 아이를 잘 돌봐야 한다고 할 게 아니라, 잘 돌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자고 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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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이 고타 '스위트 홈'
자신의 아이를 죽인, 영유아 살해범을 그저 괴물 취급 하면 그만일까. 르포작가 이시이 고타는 일본 사례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해법도 찾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세 살 리쿠. 아빠는 돈 벌러 멀리 나돌아 다녔고 엄마에겐 다른 애인 생겼다. 돌볼 방법이 없어 가끔 먹을거리를 던져주곤 방문을 접착 테이프로 봉인했다. 감금생활 2년 3개월 만에 아이는 숨졌다. 아빠는 그대로 달아났다. 7년 반 뒤 백골이 된 리쿠는 쓰레기더미 집에서 발견됐다.

# 낳자마자 살해됐으니 이름조차 없다. 엄마는 그 아이를 '서랍 아이'라 불렀다. 죽인 뒤 서랍에 넣어뒀으니. 경찰은 집 안을 샅샅이 뒤져 스티로폼 박스 안에다 꽁꽁 숨겨둔 또 다른 유아 사체를 천장에서 찾아냈다. 몇 년 전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된 그 아이를 엄마는 '천장 아이'라 불렀다.

'스위트 홈'은 르포작가 이시이 고타가 일본 열도를 충격에 몰아넣은 영유아 살해·유기 사건을 정밀하게 추적한 기록이다. 당연히 읽는 내내 불편하고 반감이 치솟는다.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목소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기록이어서다.

저자의 출발점은 간단했다. 모든 사람들이 부모의 잔혹함과 악마 같은 행태에 치를 떨 때, 그들은 우린 사랑했다고, 어디서 어떻게 꼬여버렸는지 몰라도 뭔가 잘해보려고 했다고 항변해서다. 가해자의 변명이라고 치부하기엔 저자가 찾아낸 이런저런 영상, 사진, 편지 속 그들은 '그저 보통의 가족'이고 싶었던 이들이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따라가 보기로 했다. 가족, 친지, 주변인 등에 대한 발품 취재다.

결론적으로 키워드는 미숙함, 수동성, 그리고 망각이었다. 가해자들도 어릴 적 불행했다. 애정을 못 받았다. 방치를 넘어 학대당했다.

그래서 가해자들은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이러저러하게 일을 풀어나가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미숙함이다. 수동성도 함께 작용한다. 미숙함으로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을 때 도움을 구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버리고 만다. 어떻게든 되겠지, 될 대로 되라지 식의 태도다.

그러곤 망각해버린다. 이건 몸에 밴 습관과도 같다. 수사관이, 언론이, 변호사가, 판사가, 아니 온 세상이 나서서 '아무리 그래도 자기 자식에 관한 문젠데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고 물어도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거짓말도, 법정 전략도 아니다. 의뢰를 받은 심리학자도 이 망각이 진실일 것이라 증언한다.

정말 잊은 건 아니다. 리쿠의 아빠는 새출발을 위해 꽤 괜찮은 여자를 만나자 가위에 눌리고 악몽에 시달린다. '서랍 아이' '천장 아이'의 엄마 또한 모처럼 만난 착실한 어떤 남자의 구애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무 남자, 아무 여자 충동적으로 다 만나다가도 정작 진지해야 할 사람 앞에선 멈칫거린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학습된 무기력'이란, 그리고 그 최악의 결말이란 이런 것이라고 찬찬히 보여준다.

2023년 우리나라의 화두 중 하나도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는 돼 있지 않은 '미신고 아동' 문제였다. 전수조사가 진행됐고, 여러 건의 영유아 살해사건이 뒤늦게 드러났고, 보호출산제와 출생신고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이건 제도적 틀일 뿐이다. 저자는 부모라면 당연히 아이를 잘 돌봐야 한다고 할 게 아니라, 잘 돌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자고 해뒀다. 가해 부모들은 한결같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왔고, 가족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육아가 무엇인지 모른다. 생활고 탓에 유흥업으로 빠지고 범죄에 손대다 보니 공적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상담창구를 찾아가는 일을 두려워하며 꺼린다."

그렇기에 위기 징후를 감지했을 때, 왜 이렇게밖에 못했느냐 몰아세우기보다 그들 손을 붙들고 눈을 맞추며 "어떻게든, 꼭, 도와줄게"라고 힘주어 말해야 한다. 눈도 채 뜨지 못한, 제대로 걸어보지도 못한 아이들이 증발해버리는 건 막아야 하니까.

스위트 홈·이시이 고타 지음·양지연 옮김·후마니타스 발행·344쪽·1만9,000원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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