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 원정’과 중국몽 허상[뉴스와 시각]

황혜진 기자 2023. 12. 1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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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이 막바지를 향하던 지난해 1월.

당시 정화는 수백 척의 함대를 이끌고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다.

중국의 선진 문물을 낙후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평화롭게 전해 줬다는 해석이야말로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세계에서 중국의 경제·군사 영토를 확대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알리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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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진 국제부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이 막바지를 향하던 지난해 1월. 당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케냐 몸바사에 있는 유조선 터미널 준공식 현장을 방문했다. 몸바사 터미널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왕 부장은 “누가 케냐와 아프리카의 진정한 친구인지 알게 됐을 것”이라고 작심한 듯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제시한 사례가 600년 전 ‘정화(鄭和)의 원정’이었다. 이 원정은 1405∼1433년 명나라 영락제 시절 환관 정화의 지휘로 이뤄진 7차례의 탐험 활동이다. 당시 정화는 수백 척의 함대를 이끌고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다.

왕 부장은 “정화는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선단을 이끌고 방문해 아프리카에 식민과 노예 노동이 아닌 우정과 신뢰를 심었다”고 강조했다. 대항해시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무역 등 폭력을 일삼은 것을 빗대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은 아프리카에 1만㎞ 이상의 철도와 도로 및 많은 병원과 학교를 지었다”고 했다. 일대일로 탓에 아프리카 국가가 막대한 부채에 시달린다는 지적에 맞서 중국의 기여를 강조한 것이다.

정화 원정은 1433년 마지막 원정 이후 기록이 소실되면서 실체를 찾기 어렵다. 다만, 원정의 핵심은 중화사상과 조공무역이라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설명이다. 중국의 선진 문물을 낙후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평화롭게 전해 줬다는 해석이야말로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중화사상은 일대일로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일대일로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야심 차게 내놓은 프로젝트다.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잇는 도로·철도·항만 등 사회 기반시설을 구축해 경제 벨트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세계에서 중국의 경제·군사 영토를 확대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알리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의 시작이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일대일로에 대해 국제사회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일대일로에 참여한 파키스탄 등 12개국은 중국에서 빌린 차관 탓에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거나 경제 위기에 빠졌다. 최근엔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하게 일대일로에 참여했던 이탈리아마저 탈퇴를 통보했다. 그런데도 중국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를 향해 누가 진정한 친구냐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리를 향해서도 요소와 인산이암모늄 등 주요 핵심 품목의 공급망을 죄어 가면서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7차례에 걸친 정화 원정은 결과적으로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하고 해상 교통과 무역을 제한한 해금정책(海禁政策)으로 귀결됐다. 일대일로가 정화 원정의 전철을 밟게 될지, 아니면 중국을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할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6년 전인 2017년 12월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중국은 큰 산, 우리는 작은 봉우리”라며 “중국몽이 아시아와 전 인류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란다”고 추켜세웠지만, 돌아온 건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과 수출규제였다. 중국몽의 허상에서 이젠 우리부터 벗어나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당시 대통령이 지난해 퇴임 직전 펴낸 저서의 제목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였다.

황혜진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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