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그래도 우린 ‘농자(농촌+자연)’에 산다
“어머, 누가 또 보일러 다이얼버튼(온도조절)을 건드렸네.”
이때 필자는 아내의 시선을 외면하곤 짐짓 모른 체 한다. 아내는 늘 다이얼버튼을 15도에 맞춘다. 그러면 실제 실내온도가 14도를 가리킬 때 난방보일러가 돌아간다. 필자는 아내가 보지 않을 때 슬그머니 이를 16도 쪽으로 돌려놓는다. 그러면 실내온도 15도에서 보일러가 가동된다. 이번 겨울 필자와 아내가 난방온도 1도를 놓고 벌이는 ‘웃픈’ 장면이다.
11월 들어 아내는 가계긴축을 선언하면서 보일러 난방온도를 18도에서 15도로 낮췄다. 난방유 가격이 너무 비싸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돈 태우는 소리처럼 들린단다. 올 1월에는 기름 값만 40만 원가량 들었다.
필자 가족(4인)은 겨울만 되면 ‘곰 가족’으로 변신한다. 내복은 기본이고 모자달린 인조양털, 실내용 패딩, 심지어 군인용 ‘깔깔이’를 껴입기도 하니 곰처럼 덩치가 자꾸 커진다. 아침 최저 영하 20도 안팎의 한파가 몰아치면 아예 이불 밑에 침낭을 깔고 잔다. 그렇다고 궁핍은 아니다.
추운 겨울은 대표적인 농한기이나 손 놓고 쉴 틈이 없다. 요즘 해만 뜨면 지은 지 10년이 넘은 노후 비닐하우스의 리모델링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 주말에야 간신히 새 지붕을 씌웠다. 높은 사다리 두 개를 세워놓고 혼자서 ‘곡예작업’을 하니 일도 더디고 아찔한 상황도 수차례 넘겼다. 아직 비닐하우스 앞·뒷면과 내부 작업이 남아있다.
비닐하우스 리모델링 작업이 끝나면 마당에 설치한 주차장용 비닐하우스와 캐노피 천막, 그리고 컨테이너창고의 지붕도 손봐야 한다. 집 외벽도 보수하고 창고 천장의 누수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시골살이라는 게 농사 외에도 해야 할 일은 늘 쌓여있다. 다만 급한 불부터 먼저 끌 뿐이다. 여유로운 시골생활이란 피할 수 없는 일을 즐길 줄 알아야 비로소 맛볼 수 있는 경지다. 아니면 게으른 거다. 살아보면 안다.
올 한해 농사와 겸업소득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이런저런 농사비용은 처음으로 연 300만원을 넘어섰다. 농민수당, 소농 직불금 등의 이전소득이 없다면 만성적자를 면치 못한다. 다만 필자의 경우 귀농귀촌 칼럼과 강의를 통해 농업외소득을 얻으니 다른 귀농인들에 비해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주변을 보면 귀농한 지 5년 또는 10년을 훌쩍 넘겼어도 여전히 농업소득이 크게 낮아 공공근로형 일자리와 알바로 보충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억대농부는 고작 몇%(그나마 매출기준)에 불과하니 그에 대한 환상은 접으시라. 거듭 말하지만 농촌에는 돈도 사람도 일자리도 크게 부족하다. 도시에 있는 것을 농촌에서 구하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대신 농촌에는 자연이란 우물과 그 안에 힐링이란 생수는 가득하다.
겨울이 주는 시련과 해야 할 일들, 소득의 부족 등은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고 인내함으로서 오히려 감사와 기쁨의 열매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럼 지역텃세는 어떨까? 2010년 가을 강원도 홍천에 터를 잡은 필자가족은 이젠‘ 원주민 같은 외지인’이건만 여전히 차별은 있다.
농촌에서 상·하수도는 매우 중요한 생활인프라다. 줄곧 개별 지하수만 쓰던 필자 집에 마을상수도가 들어온 것은 귀농 9년만인 2019년 6월이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마을하수처리장으로 직접 연결되는 하수관공사는 기약이 없다. 애초 2010년 집을 지을 때 큰돈을 들여 마당과 진입로(80m)를 따라 지름 300㎜의 하수관을 자체 매립했다. 일부 남은 구간과 마을하수관로 연결공사는 당연히 공공의 몫이지만 수차례 건의와 민원에도 지역행정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원주민-귀농귀촌인의 갈등해결 차원에서 추진된 사업도 몇 년째 겉돌고 있다. 필자와 이웃한 4가구(원주민 3가구, 귀농인 1가구)는 집중호우 때마다 농지유실, 마당침수 등의 피해가 발생해 갈등을 겪었다. 아래쪽 귀농가구의 피해가 가장 컸다.
이에 2019년 하반기 중 5가구의 농지 사용승낙서와 사업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이후 군수도 이장도 바뀌면서 계속 미뤄지고 있다. 2024년 상반기사업으로 추진한다는 말이 들리긴 하는데 과연 이행될는지 두고 볼 일이다. 뿌리 깊은 지역텃세는 지역행정의 방조 또는 묵인 탓도 크다.
이처럼 농촌생활은 낭만이 아니라 만만찮은 현실 그 자체다. 농촌 또한 도시와 마찬가지로 공동체는 옛말이고 철저하게 돈과 이해를 우선하는 작위의 인간관계가 지배한다. 비록 춥고, 할 일은 많고, 소득은 부족하고, 차별을 겪을지라도 필자가족은 농촌 아닌 ‘농자(농촌+자연)’에서 계속 살아갈 것이다. 농자는 자연과 하나 되는 공간으로서의 농촌을 말한다.
무위자연에 터 잡은 안분지족의 삶만이 진정한 힐링과 치유(cure), 더 나아가 경건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인생2막 귀농귀촌은 농촌이 아니라 ‘농자’로 가는 길이어야 하고, ‘농자’에서 머무는 삶이어야 그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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