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가 '여긴 내 자리야'하고 뒷걸음질로 들어간 느낌"
가나아트센터에서 제작과정 소개하는 개인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가톨릭 신자가 된 것, 이탈리아 유학을 한 것, 돌 작업을 하게 된 것, 사실적인 조각을 연습하게 한 것, 이 모든 것이 김대건 신부님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성령이 저를 훈련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대건 조각상 작업은) 그렇게밖에는 해석이 안 돼요."
지난 9월 5일, 세계 가톨릭의 중심인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한국 최초 사제인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 조각상이 들어섰다. 높이 3.77m에 이르는 이 조각상은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된 아시아 성인 성상이자, 수도회 창설자가 아닌 성인의 성상으로 주목받았다.
이 조각상을 만든 조각가 한진섭(67)은 조각상 제작을 의뢰받고 작업해 설치하기까지 과정에 대해 연신 "기적 같은 일"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15일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시작하는 개인전을 앞두고 전시장에서 만난 한 작가는 김대건 신부 조각상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되기까지는 신기할 정도로 여러 기적 같은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조각상이 설치된 곳은 대성전 오른쪽 외벽의 벽감으로, 대성전이 지어진 뒤 500여년간 줄곧 비어있던 자리다. 이런 곳에 한국인 조각가가 만든 한국인 조각상이 놓이기까지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부임한 유흥식 추기경이 교황청을 설득하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많은 한국 조각가 중에 한 작가가 선정된 데도 여러 상황이 신기하게 들어맞았다. 가톨릭 신자여야 하고 이탈리아의 유명 대리석 산지인 카라라의 대리석으로 작업해야 하니 이탈리아에서 돌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등을 고려한 끝에 교황청은 이탈리아에서 유학했던 한 작가에게 연락했다.
"저는 돌 작업을 48년간 했지만 사실적인 조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신기하게도 2년 반 전부터 한덕운 토마스 복자상과 김대건 신부 조각상, 정하상 바오로 성상을 만들며 사실적인 조각을 했죠. 그때 바로 바티칸에서 연락이 와서 마침 제출할 자료가 있었던 거죠."
신기한 일은 계속 이어졌다. 작품 제작이 결정되고 나서는 돌을 찾는 게 큰일이었다. 4m 가까운 조각상을 만들 큰 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금(크랙)이나 무늬도 없어야 했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 알게 된 지인들이 발 벗고 나서 함께 찾은 돌에서는 다행히 작업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금이나 무늬도 발견되지 않았다. 작가는 "'돌 속은 사람 마음보다 더 모른다'라고들 하는데 금이나 무늬가 발견되지 않은 것 또한 기적"이라고 말했다.
'기적'은 조각상을 벽감에 설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됐다. 4m에 가까운 대형 조각상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 뒤 거짓말처럼 한 번에 설치가 완료됐다.
"조각상이 23cm 정도 들어가야 하는 데 한 번에 들어갔죠. 너무 밀어 넣으면 빼지도 못하는데 한 번에 수평도 딱 맞았고요. 마치 김대건 신부님이 '여긴 내 자리야' 하며 뒷걸음질해서 들어간 느낌이었어요."
대성전 조각상 작업은 작가로는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동시에 엄청난 부담이기도 했다. 작업 과정을 설명하며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 여러 차례 눈가가 붉어졌던 작가는 "김대건 신부가 옆에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김대건 신부에 관해 공부하다 보니 굉장히 담대하고 용기가 있으면서도 포용할 줄 아는 겸손한 분이었어요. 이런 점을 표현하는 게 너무 어려웠고 포기하고 싶었죠, 이 조각상의 중요성에 어깨가 무거워 잠도 잘 못 잤죠. 다행히 제 옆에 김대건 신부가 계셔서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싶어요."
내년 1월14일까지 계속되는 개인전에서는 김대건 신부 조각상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과 사진, 모형, 최종안이 확정되기 전 바티칸에 제출했던 네 가지 구상안, 그리고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가 바티칸에 설치한 것과 같은 형태로 새로 만든 60cm 김대건 신부상 등을 볼 수 있다. 작가가 그동안 작업해 온 성상(聖像) 조각 등도 함께 전시된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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