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과 상상력 자극… 장인의 수공예 공방들

최보윤 편집국 문화부 차장 2023. 12. 1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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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가 베네타 BOTTEGA VENETA 리기태 명장의 한국 전통 방패연 공방 ‘2023 보테가 포 보테가스’ 선정

리기태 명장의 전통 방패연 공방이 보테가 베네타가 주관하는 2023년 ‘보테가 포 보테가스(BOTTEGA FOR BOTTEGAS)’에 선정됐다. ‘보테가(Bottega)’는 이탈리아어로 우수한 장인정신과 창의성을 강조하며 수공예품을 만드는 소규모 공방을 의미한다. 지난 2021년부터 3년 연속으로 선보이는 보테가 포 보테가스의 목표는 전 세계에 있는 소규모 장인공방을 조명하는 것. 첫 해엔 이탈리아 현지 공방 위주로 선정한 데 이어, 지난해엔 미국 버몬트 주 목공예 공방에서 일본 공방까지 이탈리아 문화에서 영감받은 14개 공방을 소개한 바 있다.

올해가 더욱 특별한 건 이탈리아 문화나 이탈리아 뿌리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에서 기념할 만한 장인들의 수공예 공방으로 눈을 넓힌 것. 올해에는 개성 있는 공예품 전문가로서 창의성과 모방할 수 없이 우수한 기술을 활용하여 상상력을 자극하고 ‘함께’라는 개념을 고취하는 네 곳의 공방을 선정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리기태(KITAI RHEE), 3대째 한국 전통연 장인인 리기태 명장이 운영하는 공방이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19세기 전통연 수공 제작 방식을 보존하는 곳으로 한국 공방이 선정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보테가 베네타의 창립 정신이 구현된 현장 중 하나다. 1966년 설립된 보테가 베네타는 흔히 ‘명품’이라고 불리는 브랜드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보통 창립자의 이름을 따는 데 비해 ‘베네토 지역의 공방(보테가)’이라는 뜻이다. 말마따나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드는 장인 정신의 현장이 이름에 녹아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의 탄생지인 이탈리아는 특히 공방에 기반을 둔 문화를 자랑한다. 공방이라는 명칭을 기반으로 한 ‘보테가 베네타’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공방으로 손꼽히는 셈. 전 세계 곳곳의 다른 공방을 지원하고 있으며, 3년 연속 여러 장인의 수공예품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2023 보테가 포 보테가스 선정작들.

이번 ‘보테가 포 보테가스’ 캠페인을 위해 4곳 공방의 작품들을 함께 촬영한 사진 정 중앙을 차지한 건 리기태 명장의 방패연. 압도적인 크기 뿐만 아니라 마치 ‘탈’을 연상시키는 익살스러운 표정도 눈길을 끈다. 동시에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달의 변화를 담은 듯한 눈썹의 눈의 조화,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연상시키는 흰색과 검은색, 붉은 색과 푸른빛의 사용, 대지와 태양을 연상시키는 초록과 노란색 등 다채로운 색상으로 현대 추상 회화 같은 이미지도 전달한다. 무엇보다 한지와 대나무살로 팽팽하게 긴장감을 조성하는 연의 모습에서 중력을 거스르려는 자유와 해방감을 읽을 수 있다. 연을 바람에 날리며 하늘을 나는 경험을 대신할 수도 있고, 희망을 담아 올려보낼 수도 있다. 이는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의 디자인 철학이자 신념인 ‘크래프트 인 모션 (Craft in Motion)’을 다시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티유 블라지는 그간 컬렉션을 통해 인간의 ‘움직임(movement)’을 파고들며 여행과 장인 정신, 예술성의 조화를 상상력을 동원해 창의적으로 해석해내는 데 성공했다. 단순히 전세계 유명 공방을 찾아서 기념하고 지원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 철학에 부합하며 이에 대한 경의를 표한 마티유 블라지와 보테가 베네타의 정신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번 ‘보테가 포 보테가스’가 갖는 의의를 꼽자면 그간 전통 공방이라고 하면 주로 일본의 오래되고 작은 공방에 치우쳤던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시야를 확대시키는 계기가 된 것임이 분명하다.

서울 무교동에서 태어난 리기태 명장(73)은 마지막 남은 조선시대 전통연인 방패연 원형기법 보유자다. 1대 스승인 이천석, 2대 스승 가산 이용안에 이어 3대째로 원형기법을 보존·유지·발전시키며 평생을 연과 함께 해온 ‘연인(鳶人)’이다. 방패연은 전통 민화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돼 왔으며, 일제 강점기엔 조선 독립의 희망을 담아 하늘에 날리곤 했던 전통 유산이다. 보테가 베네타 측은 ‘방패연’에 대해 “한지와 대나무로 만든 한국 전통연”이라고 설명하면서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19세기 전통연 수공 제작 방식을 보존하는 공방으로, 리기태연보존회의 회장인 리기태 명장은 연 제작 시연과 교육을 제공하며 후학 양성에 전념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통을 보존하는 장인의 위대함 뿐만 아니라 그 대를 이으려는 장인의 노력도 함께 조명했다.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은 황금찬 시인이 지어준 그의 호 ‘초양’은 대나무로 대양을 다스린다는 의미. 초양 리기태 명장은 한국의 ‘전통연’의 대중화를 꾀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호를 딴 ‘초양법’이라는 방식으로, 1974년 대중적인 방패연을 개발했다. 전통을 계승하는 데 머무른 것이 아니라 대중도 함께 즐기고 개발시킬 수 있도록 대중화 시키는 데 앞장 선 것이다.

영국의 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s)에 소장된 한국 최고(最古)의 연이었던 서울연을 복원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난 1888년 조선시대 한성인이 만든 표준연인 서울연으로 국외 문화재급이었다. 역사적인 가치가 높음에도 일부 훼손됐던 서울연을 복원하는 데 성공해 전통 문화유산 역사를 바로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2011년 영국왕립식물원의 복원 의뢰를 맡은 영국 런던예술대학교의 캠버웰 예술대학에 조언을 통해 가로 276㎜, 세로 343㎜의 연으로 원형 복구시켰다. 2014년에는 한국.카타르 수교 40주년을 기념해 이슬람박물관에 그의 방패연이 영구 소장되는 등 전 세계에 우리의 연 문화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땐 김연아 선수를 응원하는 방패연을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탈리아 전문 공방 모디아노가 제작한 보테가 베네타 익스클루시브 세트.

리기태 명장 외에 이번에 새롭게 조명된 4곳 중 하나는 이탈리아 전문 공방인 모디아노. 사울 모디아노(Saul Modiano)가 1868년 설립한 모디아노(Modiano)는 트럼프 카드, 타로 카드, 기타 종이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역사적인 이탈리아 전문공방이다. 수공 기법 연구에 몰두한 끝에 모디아노는 이탈리아와 해외 모두에서 선두 브랜드가 되었다. 모디아노가 제작한 보테가 베네타 익스클루시브 세트는 가죽 케이스에 넣어져서 한정판으로 출시된다.

리우 웬후이가 고대 중국 건축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목공 제품.

또 중국 목공 무형문화재를 익히고 보존하는 데 헌신한 리우 웬후이(LIU WENHUI) 역시 이번에 발탁됐다. 고대 중국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건축 블록을 연구하고 설계하고 개발하는 전문가다. 또 대만 예술가인 쳉청펑(Cheng Tsung Feng)은 전통 공예 문화와 수공예품 제작 방법을 연구한다. 쳉청펑은 잊히기 쉬운 문화 분야를 연구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내며 전통 제작 기법을 보존하며, 이를 통해 영감을 받아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예술작품을 제작한다. 이번에 선정된 작품들은 12월부터 보테가 베네타 공식 웹사이트, 뉴스레터, 밀라노 플래그쉽 매장의 쇼윈도에서 수공 기법에 찬사를 보내는 이 네 공방을 만나볼 수 있다.

쳉청펑이 전통 기법을 통해 제작한 공예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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