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회견 중 스크린에 뜬 실시간 여론 “이제 대선 출마 그만하라”

이철민 국제 전문기자 2023. 12. 1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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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대선 앞두고 치밀하게 연출된
4시간 푸틴 찬양 질문들 속에
“당신의 러시아는 왜 우리랑 다른가” 메시지
“불편한 질문 여과 못한 실수였을 것”
“표현 자유 강조한 교묘한 연출” 의견도

1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4시간짜리 마라톤 연례기자회견을 가졌다. 전시장인 모스크바의 고스티니 드로브 센터에는 약 600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몰렸다. 푸틴은 작년에는 이 연례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푸틴은 2년 가까이 진행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작전”(침공)과 내년 3월에 있을 자신의 대선 재출마를 앞두고, 이번 행사를 치밀하게 연출했다. 기자회견의 제목도 “블라디미르 푸틴과 함께 한 한 해의 결실.”

무대 앞뒤에 설치된 대형 TV 스크린에선 전국에서 접수했다는 200만 건의 국민 질문 중에서 추려진 것들이 4시간 내내 소개됐다. 몇몇 언론사들과 사전에 선정된 국민들의 전화 질문을 받아 즉석에서 답변하는 ‘개방적’ 모양새도 갖췄고, 러시아의 모든 TV 채널은 이를 실시간 생중계했다.

그러나 그의 답변만큼이나, 눈길이 쏠린 것은 간간이 대형스크린에 뜬 러시아인들의 ‘진짜’ 목소리였다.

14일 푸틴의 기자회견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뜬 일반 러시아인들이 제출했다는 문자 메시지.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마시오. 젊은 층에 길을 양보하시오"라고 적혔다.

그 중 하나는 “대선에 출마하지 마시오. 젊은 층에 양보하라”였다. 올해 71세인 내년 3월15~17일에 있을 대선에 또 출마한다. 당선이 확실한 푸틴으로선 다섯번째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너무 권좌에 오래 있었다. 젊은 층에 양보하라”

원래 러시아는 소련 해체 후 1993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4년 중임(重任)제’를 채택했다. 1999년말 당시 총리였던 푸틴은 보리스 옐친으로부터 대통령 직을 물려받았고, 2008년까지 대통령을 했다. 그후 4년간 총리로 자리를 옮겼다가, 2012년에 다시 대통령 권좌에 올랐다.

2008년에 헌법을 고쳐, 2012년부터는 ‘6년 중임제’로 바꿨다. 푸틴은 이렇게 내년 3월까지 12년 동안 다시 권좌에 앉게 됐다. 2020년엔 당시 재직 중인 대통령[푸틴]에 한해 기존 재임 회수를 0으로 돌리는 헌법 개정을 했다.

결국 푸틴은 자신이 원하면 83세가 되는 2036년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다. 18세기 이후 러시아에서 최장기 집권한 여제(女帝) 예카테리나 2세의 재임 기간(34년 4개월ㆍ1762~1796)에 맞먹고,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30년 11개월)을 능가하게 된다.

기자회견장의 대형 스크린엔 “당신은 2004년에 ‘7년 대통령을 하면 미쳐 버릴 것’이라고 했는데, 23년째 하고 있소. 건강은 어떠하냐”는 질문이 떴다.

◇”언제쯤에야 진짜 러시아가 국영 TV 속 러시아처럼 되나”

스크린에 비친 또다른 질문은 “당신의 러시아는 우리의 러시아와 다르다” “언제쯤에야 진짜 러시아의 모습이 채널 원(국영 채널)에 보여지는 것처럼 될 것이냐”였다.

"왜 당신의 현실은 우리의 현실과 다른가"라고 묻는 러시아인의 전화 문자 메시지.

더 비관적인 질문도 있었다. “이 질문은 소개되지 않겠지만, 우리 대통령은 언제 자기 나라에 관심을 가질지 알고 싶다. 우리는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건강보험도 없다. 나락이 펼쳐졌다.”

이밖에 “능동적인 방어로, 전쟁을 이길 수 있느냐” “오이가 ㎏당 900 루블, 토마토는 950 루블이다. 샐러드 하나를 만드는데 1500 루블(약 2만16000원)이 들어간다. 과일은 빼고” “가스를 중국, 유럽에 주는데, 하카시아(러시아 공화국)엔 언제 가스가 오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푸틴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설 때, 스크린에는 “우리는 거의 전기도 없이 사는데, 호소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남은 유일한 희망이 당신에게 달렸다”라는 ‘애매한 찬양’ 메시지가 떴다.

◇푸틴 ”서방의 우크라이나 무기 공짜 지원, 고갈 시작됐다”

푸틴은 스크린에 뜨는 이런 질문들에 당황하지도, 답하지도 않았다. 그는 “언제 평화가 오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우크라이나 ‘특별작전’의 목표인 우크라이나 나치세력의 제거와 비(非)무장화, 중립적 지위 확보[나토 비가입]이 성취될 때”라며 “이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급진적 민족주의자인 신(新)나치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됐다고 거짓 주장한다.

그는 또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대한 피로감과 반발 여론이 커지는 것을 겨냥해, “우크라이나는 모든 것을 공짜로 받았지만, 이런 공짜 무기들은 어느 순간 고갈되며, 이미 마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간은 러시아 편이라는, 전쟁 초기 자신의 예견이 맞았다는 얘기였다.

◇여과 없는 메시지, 보안 상 중대 실수?

푸틴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스크린 속 전화 문자 메시지는 중대한 실수였을까. 망명 중인 러시아 재벌 출신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는 “불편한 내용들을 여과하지 못하고 소개했다”고 평했으나, 한 러시아 학자는 “이 또한 마치 러시아에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위장하려고 의도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러시아가 언제쯤에야 국영TV인 채널 원에서 보여주는 러시아로 옮겨갈 수 있느냐고 묻는 전화 문자 메시지가 푸틴의 뒤로 소개되고 있다.

푸틴이 답해야 하는 러시아인들의 전화 질문은 물론 치밀하게 조율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상황을 안정화시켜 주세요” “당신이 영원히 살리라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확신하죠?”

푸틴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젊은 날의 당신에게 어떤 충고를 하고 싶으냐”였다.

그의 답은 이랬다. “동지, 당신은 제대로 가고 있어. 다만 순진함이나, 소위 자네의 파트너라고 말하는 이들을 너무 신뢰하지 말고 경계하게 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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