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 전쟁과 北 도발에 존재감 ‘떡락’중인 유엔 [핫이슈]
이번 전쟁에서 시종일관 이스라엘을 편들어온 미국이 전쟁 장기화에 반대해 기권표를 던질까 기대를 모았지만 예외는 없었다. 미국 측은 휴전이 하마스에게 전쟁 준비 기회를 준다고 해명했지만 찬성표를 던진 나라들은 이스라엘 학살을 미국이 방조하고 있다며 분개하고 있다. ‘미국 때리기’를 하고 싶은 북한도 유엔 결정에 모처럼 성명을 냈다. 김선경 외무성 국제기구담당 부상은 “중동에 평화와 안정이 깃들기를 바라는 국제사회 염원이 오만무례한 일개 상임이사국의 독단과 전횡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며 미국을 규탄했다.
유엔의 무기력함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에 거부권을 행사한 미국에만 유독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상임이사국들이 국제 평화보다 자국 이해 관계를 앞세워 거부권을 맘대로 쓰다 보니 안보리의 구속력 있는 결정은 언감생심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침략 당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쥐고 있는 만큼 휴전 촉구나 러시아를 비난하는 안보리 결의는 불가능하다. 하마스 전쟁와 우크라이나 전쟁 모두 유엔 회원국들 희망을 담은 구속력 없는 총회 결의를 내는데 그치고 있다.
지난달 21일 북한이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발사했을 때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의례적인 규탄 성명을 냈을 뿐이다.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의 군사활동 중단, 외부 기술지원 금지 등을 규정한 안보리 결의 1718호, 1874호 위반이지만 유엔 차원 징계는 없다. 지난 8일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타는 신형 벤츠 마이바흐 차량이 공개됐다. 벤츠 차는 사치품으로 분류돼 대북 수출금지 품목인데도 사진까지 언론에 나왔다. 유엔의 후속 조치가 없다 보니 안보리 결의 위반은 식은 죽 먹기다. 유엔 결정에 강한 내성을 가진 북한에게 사무총장 명의의 규탄 성명 쯤은 우스운 일이다.
얼마 전 크레이그 모키버 유엔 인권최고대표 뉴욕사무소장이 사표를 던졌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과도한 공격이 ‘집단학살’ 임에도 유엔이 제역할을 못하고 있는데 대한 자괴감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유엔)는 또다시 대량 학살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만 있다”며 “우리 조직은 막을 힘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인권법을 전공한 변호사로 1992년부터 유엔에서 일한 고위 인사가 유엔의 무능을 뼈아프게 지적한 것이다.
1945년 창설된 유엔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단합해 국제 문제 해결을 목표로 했다. 1차 대전 후 미국이 불참한 채 출범한 국제연맹의 무능을 타개하기 위해 유엔은 5개국에 거부권을 주면서 국제 문제 해결에 책임있는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미소(美蘇) 냉전기에 자기 진영 논리만 내세우는 장에 그쳤고, 지금도 5개 상임이사국 간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 합의가 안되면 강대국들은 유엔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한다. 1990년대 세르비아나 2000년대 이라크에 대한 공습 역시 유엔 안보리 결의가 막히자 미국 주도로 단행됐다.
국제 평화에 무력하다면 유엔은 인도적 구호 사업 정도가 주 업무가 될 것이다. 전쟁과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들을 지원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분야도 재원 부족으로 여유있지 못하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는 14일 제네바에서 열린 난민포럼에서 “올해 4억달러(5172억여 원)가량 재정 적자에 직면할 것”이라며 감원과 사업 축소 의사를 밝혔다. 유엔은 올해 구호사업 예산으로 567억 달러를 잡았지만 모금은 목표액의 35%에 그쳤다.
무기력한 유엔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거부권 제한이나 이사국 수 증가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거부권 폐지나 이사국 수 조정은 유엔 헌장 개정 사안이다. 이걸 바꾸는데도 거부권이 적용되니 언제 될지 몰라 하세월이다. 우리가 국회의원 특권을 없애기 위해 국회법 등을 고치려 해도 의원들 결정 사항이라 불가능한 것과 비슷하다. 유엔이 국제 평화 목적 달성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국제연맹이 해체된 것처럼 새로운 국제기구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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