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초월 문화교류가 ‘제2 안전보장’… 드라마·영화가 전쟁도 막을 수 있어[M 인터뷰]

김선영 기자 2023. 12. 1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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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한·일 문화콘텐츠 협력 주도… 하바라 다이스케 ‘ATDC’ 대표
노래·웹툰 등 국경 넘은 교류
정치보다 몇 배 큰 외교 가치
일본 ‘4차 한류’로 한국 호감 확산
‘형님’‘누님’ 호칭 일상서 써
한국 콘텐츠, 일본 보다 세 발 앞서
일본 국민드라마 ‘맛상’ 각본가
재일동포 그린 영화도 유명
한·일 합작 드라마 제작 준비
하바라 다이스케 아시안 TV 드라마 콘퍼런스(ATDC) 대표.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북한의 핵 군비 증강 등 세계가 불안할수록 문화 교류 등을 통한 ‘문화적 안전 보장’이 이뤄져야 합니다. 우리는 문화를 통해 인연을 이어가고 문화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면 우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바라 다이스케(羽原大介) ‘아시안 TV 드라마 콘퍼런스(ATDC)’ 대표는 지난 4일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나나오(七尾)시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16회 ATDC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문화 교류는 정치 연설이나 사회 활동보다 몇 배의 외교적 가치가 있다”며 “국경을 초월한 문화 교류는 이른바 ‘제 2의 안전보장’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하바라 대표는 일본의 국민 드라마 ‘맛상(マッサン)’의 각본가이자, 재일동포의 삶을 그린 영화 ‘박치기!’로 2006년 일본아카데미상 각본상을 받은 일본 드라마·영화계 거장이다. ATDC는 2006년부터 한국 드라마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등이 후원해서 개최됐지만, 2022년도와 2023년도는 일본 단독 주관으로 여러 일본기업의 후원으로 열리고 있다.

하바라 대표의 대표작인 NHK 드라마 ‘맛상’(위쪽부터), 영화 ‘훌라걸스’, 영화 ‘박치기!’ 포스터. NHK·씨네콰논 홈페이지 캡처

―이번 콘퍼런스에서 ‘문화를 통한 안전보장’을 주장했는데.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 북한의 위협, 일본 군비 증강 등 다양한 안전 보장 문제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영화를 통해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고, 상호 호혜성을 높이면 우호 관계 유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문화를 통해서 인연을 이어가고, 문화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면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과도 문화 교류를 통해 국가 간 개인적 인연을 이어가서, 무역 예산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문화교류만으로 군사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번 ATDC를 통해 전쟁을 반대한다거나 그런 정치적 메시지를 발신할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평화를 위해서 문화적 콘텐츠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컸다. 되게 먼 얘기 같지만 우리에게도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문제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평화는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세계에서 다양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문화적 교류를 통한 ‘문화적 안전 보장’을 삼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국경을 초월해 문화교류를 하는 건 평화로 이어지는 이른바 ‘제 2의 안전보장’이라고 생각한다. 문화교류는 정치적 연설이나 논문보다 몇 배의 외교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다. 한일 상호 문화적인 호감이 정치·경제·사회적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일본 내 제 4차 한류 붐을 통해 한국 가수나 드라마·영화가 일본 사회에 더 깊게 들어오게 되며 교류는 더 확산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서로 언어나 호칭도 배우게 되는데, 가령 한국의 ‘형님’이나 ‘선생님’ ‘누님’ 같은 호칭을 일본인들이 배우고 사용하며 상대국에 한 발 더 가까워진다고 느낀다. ‘롯폰기 클라쓰’를 제작한 크로스픽쳐스의 김현우 대표가 한일 양국 제작사와 협회 차원의 정기적인 세미나와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민·관이 협력해 글로벌 콘텐츠를 만드는 데 협업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 등도 고민해볼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문화 교류가 한일 관계 개선의 기반을 만들어 놓으면 사회·정치·경제적 협력이 더 수월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어준 나라라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모국이라서’ 같은 문화적 고리가 한일 양국 사이에 더 많아지면 좋겠다.”

―평소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한·일 합작 드라마 공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5년 전부터 한국의 에이스토리라는 기획사와 일본의 텔레파크라는 제작사와 함께 한일 합작 드라마를 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나는 한일 합작 드라마 제작을 통해 역내 안정이 불안정해지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 평화를 이끌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를 문화적으로 깊이 이해하고 있는 만큼 양국 평화를 위해서라도 문화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한일 합작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일본인 남성과 일본에 온 한국인 여성의 러브스토리가 주 내용으로 역시 사랑 이야기가 양국 모두의 공감을 받기 좋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진행 속도가 좀 늦어졌지만, 지난 8월 에이스토리 사장과 만나 한일 합작 드라마를 최대한 빨리 공개하기로 대화한 상태다. 작년까지 한일 관계가 경직되며 한일 합작 드라마가 줄어들었는데, 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사랑의 불시착’ 등 한국 드라마와 K-팝이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다. 그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나.

“우리 딸도 K-팝의 엄청난 팬이다. 일단 한국 자체가 콘텐츠 수출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다. 드라마나 영화를 해외로 팔아야겠다는 목표의식이 매우 강하다. 내가 이번 콘퍼런스에서 충격받은 건 일본 드라마의 70%가 만화·소설 등 원작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30%는 오리지널 드라마인 데 비해 한국은 30%가 만화·소설 등 원작 기반, 70%가 오리지널 작품이라는 것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아직 제작자나 작가가 수출산업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다. ‘해외에 팔아봐야지’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한다. 일본 내에서 시청률 10% 이상을 넘는 것에 다들 집중하고, 시청률이 넘으면 기뻐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류 붐이 일본 콘텐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일단 일본 내 1차 한류 붐은 ‘겨울연가’, 4차 한류 붐은 ‘사랑의 불시착’으로 대표된다. 그중 제 4차 한류 붐의 충격은 일본 드라마 제작 업계에 엄청난 충격과 쇼크였다. 일본 드라마 제작자들은 한국서 만든 복잡한 시나리오의 완성도와 치밀함에 감탄했다. 플롯이 복잡하고 탄탄한 시나리오 만들기, 로케이션의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사랑의 불시착’ 같은 경우 휴전 중인 북한에 대해서 그렇게 대담하고 창의적으로 그려냈다는 게 엄청나다.”

―‘일본 제작 업계가 한국 제작 업계처럼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현재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일본은 한국에 세 발쯤 뒤처져 있다. ATDC는 과거 일본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에 제작 노하우를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회의였지만, 이제 일본이 한국에 노하우를 배우는 장이 되어 버렸다. 한국 작가나 제작자들은 이 콘텐츠 지식재산(IP)이 세계에 통할 것인가를 늘 의식하고 있고, 한국 전문 제작사들이 기획 단계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플랫폼 진출까지 고려하기에 전 세계에 제대로 전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모든 제작자가 한국처럼 글로벌 시각을 가지고 업계 구조개혁에 임해야 한다.”

“내 인생 바꾼 두 사람, 재일동포 극작가 김봉웅과 프로듀서 이봉우”
■ 한국과 인연

“거장 쓰카, 극작기초 전수하고
이봉우, 영화 ‘박치기!’ 영감 줘”

“제 인생을 바꾼 두 사람이 있는데, 둘 다 재일동포였습니다. 한 명은 일본의 전설적인 극작가 쓰카 고헤이(つかこうへい·한국명 김봉웅)고 또 다른 사람은 영화 ‘박치기!’ 프로듀서였던 이봉우, 이분들이 없었으면 전 극작가가 못 됐을 겁니다.”

하바라 다이스케(羽原大介) ‘아시안 TV 드라마 콘퍼런스(ATDC)’ 대표는 지난 4일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일본 대중문화계를 이끌어 가는 이들 중 재일동포가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본 현대 문화와 연극계의 전설이라 불리던 재일교포인 쓰카 작가에게 사사한 하바라 대표는 “쓰카 작가는 일본 극작의 혁신을 이끈 분으로, 그분에게 극작의 기초를 배운 덕에 내가 지금까지 작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바라 대표에게 또 이 프로듀서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에 와서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가 겪어온 차별과 편견, 빈부 격차와 한(恨)의 정서를 어떻게 영화로 풀어내야 하는지 조언을 받았던 점도 이야기했다. 하바라 대표는 “‘박치기!’ 취재를 통해 만난 재일동포들에게서 받은 감정은 ‘늠름함’이었다”며 “일본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끼리 단결하고 씩씩하게 제2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작품에 담고자 했다”고 밝혔다.

하바라 대표는 영화 ‘박치기!’ 속에 나온 ‘임진강’이라는 노래에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집필했다고 전했다. 이 역시 이 프로듀서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임진강이라는 노래가 일본에서 방송 금지곡이었지만, 입소문만으로 일본 전국에 퍼지며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선 전설의 노래가 되었다”며 “이 같은 실화를 영화 안에 녹여 넣으며 재일동포들의 애환과 일본 국적을 갖지 못한 채 가난한 생활을 영위하며 살아남았던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고 했다.

하바라 대표는 “일본 연예계는 재능있고 역량 있는 재일동포들과 함께 발전되어왔다”며 “나 역시 재일동포 동료들의 영향을 받으며 지금까지 극작가로 일해온 만큼, 앞으로도 한국과 일본, 그리고 일본 사회와 재일동포 간 가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나오=글·사진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1964년 일본 돗토리현 출생 △일본대 예술학부 문예학과 졸업 △2006년 영화 ‘박치기’ 각본 △2007년 영화 ‘훌라걸스’ 각본 △2019년 드라마 ‘하얀거탑’ 각본 △2020년 드라마 ‘싸인’(일본판) 각본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각본상 수상 △아시안 TV 드라마 콘퍼런스(ATD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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