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PF '숨겨진 부실' 토담대…"규제 헐거워" 알아도 손 못 대는 이유
[편집자주]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금리 장기화 속에 160조원이 넘는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만기연장 중심으로 소극적 대응을 했던 금융당국도 '옥석가리기'로 돌아섰다. PF 구조조정은 금융회사 구조조정까지 동반한다. 부실이 한꺼번에 터지지 않고 순차적으로 정리될 수 있도록 질서 있는 구조조정이 필요한 때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숨겨진 부실로 저축은행 토지담보대출(토담대)이 지목되고 있다. 사업초기 토지를 담보로 잡는 토담대는 사업성만 보고 대출하는 브릿지론(PF대출)과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한도 규제나 충당금 규제 수준이 낮다. 저축은행들은 규제가 헐거운 토담대를 10조원까지 확대해 PF대출 수준으로 키웠다.
14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저축은행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PF 대출 규제가 강화되자 토담대를 확대해 잔액이 1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9월말 기준 PF 대출 잔액 9조8000억원보다 많은규모다.
저축은행 기업대출 중 개인사업자 대출을 제외한 법인대출 대부분이 토담대로 추정된다. PF 사업 초기 토지를 담보로 나가는 토담대는 사실상 브릿지론과 큰 차이가 없다. 저축은행은 토지 담보가액이 대출액의 130%를 넘어서면 토담대로 분류하고 그 이하면 브릿지론으로 분류해왔다.
브릿지론은 PF대출의 일종으로 저축은행 전체 여신의 20% 이내로 한도 규제를 받고 충당금도 일반대출보다 더 쌓아야 한다. 반면 토담대는 전체 여신의 50% 이내로 헐거운 한도 규제를 받으며 충당금 부담도 크지 않다.
금융당국은 9월말 기준 금융권 전체 PF대출 잔액이 134조3000억원이라고 공식발표했지만 여기에는 저축은행 토담대 10조원이 빠졌다. 증권사 PF 채무보증 20조원을 더하면 전체 PF 대출 잔액은 164조원이 넘는다. 특히 저축은행 PF 연체율은 공식적으로 5.56%지만 토담대 연체율은 10%대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저축은행 업권은 토담대와 브릿지론이 나간 53개 사업장에 저축은행끼리 대주단협약을 진행 중이다. 만기연장과 이자유예 등으로 토담대 연체율은 일시적으로 10% 아래로 떨어졌지만 우려가 완전히 가신 건 아니다. 땅값이 고점일 때 확보한 담보의 담보가액을 재평가하면 대출액의 130% 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토담대가 부실 뇌관이 되지 않도록 내년부터는 신규 토담대엔 PF 대출 수준으로 충당금을 쌓도록 할 방침이다. 이미 금융지주회사 소속 저축은행은 당국 권고에 따라 기존 토담대에 PF 대출 수준으로 충당금을 쌓아 위험에 대비했다.
문제는 여력이 많지 않은 중소형 저축은행이다. 만기연장 시점에 자산재평가를 하면 토담대가 PF대출로 전환돼 충당금 '폭탄'이 터질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이 기존 토담대에 PF수준의 규제를 도입 못하는 이유다. 실제 나이스신용평가에서는 브릿지론의 30~50%는 부실화 될 것으로 분석했다. 자본여력이 충분치 않은 중소형 저축은행 몇 군데는 결국 문을 닫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의 토지담보대출이 그동안 높은 담보비율이 높아 PF대출과 달리 취급됐고 최근 부동산 경기 하락에 따른 부실화 가능성이 높아져 선제적으로 충당금 강화를 유도해 왔다고 설명했다. 또 저축은행의 9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14.14%라는 점을 고려하면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부연했다.
14일 금융업권에 따르면 지난 10월 캠코의 PF 지원 펀드 조성 이후 계약이 체결된 사업장은 서울시 중구 소재 삼부빌딩 한 곳에 불과하다. 신한자산운용은 브릿지론 단계의 비주거 오피스 PF 사업장인 이 빌딩을 1022억5000만원에 낙찰받아 650억원은 캠코 PF 지원 펀드를 통해, 차액은 브릿지론으로 조달했다. 당초 이 빌딩은 고급 주거 분양으로 사업이 추진됐지만 신한자산운용은 이를 10년 장기임대주택으로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캠코는 지난 10월 민간투자자 자금 매칭을 통한 PF 지원 펀드를 1조1050억원 규모로 조성했다. 사업성이 떨어지거나 부실우려가 있는 PF 사업장의 정상화와 재구조화를 목적으로 한다. 캠코가 5000억원을 위탁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 캡스톤자산운용, 코람코자산운용, KB자산운용에 1000억원씩 출자하고 이들이 따로 1000억원 가량씩을 조달했다.
하지만 사업장의 대주단과 PF 지원 펀드 운용사가 원하는 가격이 맞지 않아 삼부빌딩 외 추가 계약 사례가 나오고 있지 않다. 펀드가 사업장을 재구조화하려면 우선 대주단으로부터 PF 채권을 사와야 하는데 양측이 원하는 가격 수준이 다른 것. 대주단 측에서는 운용사들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주단의 일부 후순위 채권자들의 원금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매각가가 너무 할인됐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내년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며 대주단 역시 가격을 낮추는 쪽으로 물러설 가능성이 더 줄어들 전망이다. 본격적인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 부동산 경기도 살아나 PF 사업이 제대로 돌아갈 것이란 판단에서다. 지난 13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세 차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시장에서는 내년부터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각 운용사가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이 2000억원 정도로 제한적인 점도 재구조화 사업장을 찾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업장 대부분이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고 보는데 사업장 한 곳 한 곳 가격이 만만찮다. 삼부빌딩만 해도 1000억원을 넘었다. 애초에 가격 협상 자체가 불가능한 사업장이 많다는 뜻이다.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업권(여전업권) 등 2금융권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PF 재구조화 펀드 역시 속도가 있게 추진되지는 못하고 있다. 여전업권 펀드의 경우 10월말에 1호 펀드를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가격 협상이 난항을 겪으며 1호 펀드 계약이 지체됐다. 저축은행 펀드도 지난 10월 펀드 조성을 시작한 후 두 달 만에 이날 처음으로 부실 사업장 한 곳 매입을 마무리했다.
권화순 기자 firesoon@mt.co.kr 이용안 기자 k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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