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경영 전공한 공부벌레"···선대와 다른 MZ 오너들 [biz-플러스]

박민주 기자 2023. 12. 1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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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그룹 3040 총수일가 분석
경영학과 출신 유학파 내향인
해외IB 거치며 빠른 경영수업
조직 우선 소탈한 리더십 특징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8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의 다나파버 암 센터를 방문해 세포치료제 생산 시 항암 기능을 강화시킨 세포를 선별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제공=LG
[서울경제]

재계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면서 3040 오너 일가가 그룹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평균 나이는 41세(1982년생). 흔히 말하는 MZ세대다. 이들은 조기 유학을 떠나 중고교부터 학부와 대학원까지 해외에서 졸업한 유학파 비중이 높다. 글로벌 감각과 탄탄한 인맥이 무기가 되는 시대인 만큼 유학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셈이다. 저돌적인 공격성을 앞세워 사세를 확장했던 선대와도 다르다. 조용하고 섬세한 리더십으로 조직 문화를 우선시하는 모습이 특징이다.

14일 서울경제신문이 국내 30대 그룹 3040 오너 일가(임원급 이상)를 분석한 결과 경영학 전공, 유학파, 내향적 성격이 공통된 특징으로 나타났다.

리더로 부상한 재계 3·4세는 MBA 등 유학 경험과 경영 전공을 통해 비즈니스 감각을 키웠다.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전무는 아버지에 이어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스탠퍼드대 출신이고 김동관 한화 부회장은 중학교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세인트폴고와 하버드대를 나왔다.

유학 생활을 통해 얻게 된 인맥과 자유로운 소통 능력은 이들의 비즈니스 무기가 되고 있다. 김 부회장은 한화솔루션 시절 여러 딜을 세인트폴과 하버드 인맥을 통해 성공한 경험이 있다. SK(034730)네트웍스의 최성환 사업총괄 사장도 상하이 푸단대와 런던비즈니스스쿨 등 풍부한 해외 경험을 통해 쌓은 투자은행(IB) 인맥으로 실리콘밸리에서 해외투자를 이끌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판교 사옥에서 열린 제2회 HD현대&SNU AI 포럼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HD현대

재계 3·4세의 또 다른 특징은 권위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내향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하며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린다. 대신 이들은 조직 구성원들과의 격의 없는 소통을 선호한다. 4대 그룹 총수 중 가장 젊은 구광모 LG(003550) 회장은 회장 대신 LG 대표로 자신을 불러달라고 할 정도로 소탈한 성격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중공업 시절 울산에서 근무할 당시 직원들을 삼삼오오 모아 종종 회식을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 그룹에 합류하기 전 컨설팅 업체나 해외 IB를 거치며 빠르게 경영 수업을 받았다는 특징도 있다. 신 전무는 노무라증권에서 근무했고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도 베인앤컴퍼니 컨설턴트 경력이 있다.

젊은 오너들은 경영진들의 세대교체도 이끌고 있다. 올해 말 임원 승진 사장단의 나이는 50대 초반으로 1970년대생 최고경영자(CEO) 시대를 열었다. 다만 이들은 아버지 세대와 달리 위기 극복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3040 오너 등장에 맞춰 시대가 원하는 리더십이 달라졌다”며 “제왕적 리더십을 보였던 선대 회장들과 달리 모두를 아우르고 자신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평적 리더십으로 조직문화 바꿔

재계에서 ‘3040세대’ 총수 일가가 경영 전면에 본격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선대 총수와 이들 MZ세대 예비 총수 간의 경영 스타일 차이가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리더십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총수들이 강렬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그룹 전체를 통솔하는 ‘제왕적 리더십’을 앞세워 사세를 확장해갔다면 3040 예비 총수들은 ‘수평적 리더십’을 통해 이해관계자들의 이견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경영 문화를 바꿔가고 있어서다.

실제 과거 창업회장 한 명의 천재적 역량에 의존했던 성장 공식은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적합하지도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 기업들이 세계 수준에서 경쟁할 정도로 덩치가 커지고 각종 규제와 견제 장치도 촘촘해지고 있어 총수 한 사람이 전체 경영을 살피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외에서 선진 경영 기법을 배우고 돌아온 젊은 오너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책임 경영과 함께 소통을 중시하는 경영 문화를 이식하고 있다는 평가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경기 성남 분당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방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적인 사례가 구광모 LG그룹 회장이다. 2018년 취임한 구 회장은 대외 공개 행보를 최소화하는 대신 내부 구성원들과 소통을 즐기는 실용주의형 리더로 통한다. 권위감을 주는 회장 대신 LG 대표로 불러달라고 직접 요청할 만큼 격식을 꺼린다. 계열사 경영진에 사업을 전적으로 믿고 맡기면서 뒤에서 조력하는 스타일이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울산 공장에 불쑥 찾아와 신입 사원들과 격의 없이 식사를 할 정도로 털털한 성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략가’로 통하는 정 부회장은 스스로 자신의 MBTI(성격유형검사)를 ‘용의주도한 전략가’인 INTJ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3040 오너는 선대회장의 전철을 따라가려고만 하면 망하기 딱 좋다”며 “시대가 가져온 ‘수평적 문화’ 등을 아우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사업보국 정신에 기업 이익도 추구

경영 철학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선대 총수들이 사업으로 나라를 일으켜 세운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정신을 앞세웠던 반면 최근에는 기업 이익 최대화가 3040 예비 총수들 사이에서 최고 가치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국내 4대 그룹의 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는 “50대 후반 임원진만 해도 ‘조금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국가에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자’는 소명 의식이 어느 정도 깔려 있지만 50대 미만 경영진 사이에서는 이런 생각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특히 예비 총수들은 해외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컨설팅펌이나 투자은행(IB)을 거치면서 재무에도 밝아 이익을 깐깐히 따지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성과주의의 배경에는 이른 시일 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바심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 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100대 그룹 오너 일가들은 평균 28.9세에 입사해 5.4년 뒤인 34.3세에 임원으로 승진한 뒤 7.8년 뒤인 42.1세에 사장에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3040 예비 총수들을 보면 대체로 교육을 잘 받아 성실하고 관리에 능하지만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성과에 매달리는 경향도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바이오·AI '신영토' 확장

3040 예비 총수들이 성과를 내기 위해 집중하는 분야가 바로 신사업 육성이다. 이들이 힘을 싣고 있는 미래 신사업은 ‘E(에너지)·B(바이오)·A(인공지능·AI)’로 압축된다.

SK그룹에서는 최태원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이 그룹 최연소(1989년생) 임원으로 발탁됐다. 중국 베이징고, 미국 시카고대,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에서 근무한 글로벌 인재다. SK의 미래 먹거리 한 축인 바이오 핵심 사업을 책임질 예정이다.

올해 각 그룹의 연말 정기이사를 통해 전진배치된 허윤홍(왼쪽부터) GS건설 미래혁신대표 사장,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 신유열 롯데지주 전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아들인 신유열 상무는 롯데 미래성장실장을 맡으며 전무로 승진했다. 그는 롯데지주(004990) 미래성장실장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겸하면서 그룹의 주요 사업군을 미래 신사업 체제로 전환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의 장남 허윤홍 GS건설 사장은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GS 미래사업팀장으로 벤처 투자를 주도해온 허서홍 GS리테일 부사장은 유통 분야의 신사업 안정화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의 장남인 구동휘 부사장은 주력 계열사인 LS일렉트릭을 떠나 LS MnM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이동했다. 차기 승계 구도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구 부사장은 LS그룹의 핵심 미래 사업인 배·전·반(배터리·전기차·반도체) 중 배터리 분야의 중책을 짊어지게 됐다. CJ그룹 4세인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는 이달 중 이뤄질 그룹 인사를 통해 역할이 대폭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민주 기자 parkmj@sedaily.com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노우리 기자 we1228@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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