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우기 징하게 힘드네요"…여의도 '애연가'들의 토로 [돈앤톡]
"부스 많아도 인구밀도 심해 턱없이 부족"
"단속 기준 모르겠다…죄악시 인식도 부담"
"매일 담배 냄새 맡아" 비흡연자들 고충은 어떻게
구청 "내년 흡연부스 증설…냉정한 단속이 원칙"
"우린 담배에 지지 않은 첫번째 노담 세대…너한테 절대 안 져!" 정부가 금연 확산을 위해 만든 '노담'(No 담배) 캠페인이 히트를 쳤습니다. 이 광고는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담배에 지지 않는 첫 노담 세대로 칭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 청소년 흡연 예방에 초점을 뒀습니다.
하지만 공익광고라고 해서 모두의 입장을 대변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금연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흡연자들은 담배에 끝내 굴복한 어른들이 됐기 때문이죠. 스트레스지수와 인구 밀도가 대체로 높은 편인 여의도 증권가에도 흡연자들이 많습니다. 흔히들 여의도를 축구장의 400배라 이르지만 이들에겐 축구장 한 개도 허락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애연가들 "여의도서 담배 피우기 징하게 힘들다"
지난 12일 오후 6시께. 퇴근 후 교직원공제회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 자산운용사 주식운용 담당 김 차장의 뒷모습에선 이유모를 고독이 읽힙니다. 여의도역 5번 출구 근처라서 그런지 공식으로 설치된 흡연부스 안에는 사람들이 붐벼서 자리 하나 얻기가 힘듭니다. 결국 부스 밖 따가운 추위와 눈살을 견뎌가면서 담배를 피웁니다.
김 차장은 '여의도에서 흡연자로 살아가는 기분이 어떤가' 묻는 기자에게 "끊으려고 해봤지만 업무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결국 담배를 꺼내물게 되더라. 이러기를 벌써 10년째"라며 "추위나 거리 상의 불편함보다도 흡연자를 죄악시하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여의도는 고층의 사무실과 아파트 단지가 대부분이다보니 인구 밀도가 심한 동네로 유명합니다. 특히 오피스 인구로 북적이는 만큼 여의도 권역에는 모두가 공식·비공식으로 인정하는 흡연구역들이 많은데요. 여의도 5번 출구 부근 교직원공제회관 앞을 비롯해 교보증권 본사 앞, 오투빌딩 앞, 한국투자증권 본사 앞, IFC몰 앞, 교촌치킨 여의도점 앞, 더현대몰 뒤편, 한국노총빌딩 맞은편과 여의도백화점 주차장 등이 대표적입니다.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상 공공기관이나 연면적 1000㎡ 이상의 사무용 빌딩, 어린이집 근처 건물 등은 무조건 금연구역으로 지정됩니다. 그렇기에 내부에서 흡연해선 안 됩니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건물들은 수년 전만 하더라도 대체로 건물 내 흡연실을 뒀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감염력을 높일 우려가 있다며 거의 다 사라진 상태입니다. 물론 백상빌딩·신송센터 등 일부 오래된 건물들은 소속 직원들에 한해서 옥상에서도 피울 수 있게끔 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빽빽한 건물들로부터 쏟아지는 수많은 애연가들을 품을 정도는 못 된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모 증권사 애널리스트 이씨는 "회사 인근에 흡연구역이 있어서 내근하다가 피우는 것은 크게 불편하지 않다"면서도 "외근이 많은 직업 특성상 밖에서 흡연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딱지 떼이지 않을 구역들을 찾아나서는 것도 일"이라고 전했습니다. 상장사 한 직원은 "근무지와 흡연구역까지 2~3분 걸려서 외투를 입고 다녀와야 하는데, 물론 먼 거리는 아니지만 요즘 같은 겨울에는 더 춥고 귀찮다"면서 "출퇴근할 때나 점심·저녁 미팅이 끝나고선 역 근처 실외흡연부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부스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구청 차원의 단속에 대한 흡연자들 불만도 증폭되고 있습니다. 여의도 간접흡연에 대한 민원이 쏟아지자 영등포구청은 단속 수위를 계속해서 높여가고 있는데요. 현재로선 2인 1조의 전담 단속원들을 배치해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적발하고 있습니다. 총 서너개조로 꾸려져 여의도 주요 블록에 배치되는 이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동시 근무를 합니다.
모 신문사 기자 조씨는 과태료를 물게 된 경험을 꺼내며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그는 "부스 내 자리가 없어서 밖으로 비켜서서 피우는데 단속하시는 분들에게 걸렸다"며 "우리 일행이 걸리자 나머지 무리들은 부스 안으로 어떻게든 들어갔다. 잡을 거면 다 잡지 우리만 걸려서 더 약올랐다"고 했습니다. 모 인터넷 신문사 기자 노씨도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여의도만큼 단속 강한 곳도 처음"이라며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재떨이에 벌이지 않았다거나, 건물 턱 위(사유지)에 있다가 스트레칭하면서 턱 아래(공유지)로 발을 디뎠다든가 하는 이유로 딱지를 맞았다. 눈치는 눈치대로 보이고 욕은 욕대로 먹고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여의도 흡연생활'에 그런대로 만족한다는 흡연자도 있었습니다. 모 기업 홍보실 정씨는 "서울 광화문만 가도 흡연구역이 거의 없다보니 담배 피우기를 포기한 적도 많다"며 "그에 비해 여의도는 건물 두 개 중 하나 꼴로 부스가 있는 편이어서 이 정도면 만족하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아침만 되면 꽁초들이 화단 채"…혐연권 목소리 내는 사람들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인 비흡연자들의 혐연권 또한 지나칠 수 없는 주제인데요. 제아무리 흡연자들로서 애로가 많다고 해도 비흡연자로선 곱게 보일 리 없습니다. 의도와 관계 없이 건강에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 헌법재판소는 혐연권이 흡연권에 우선하는 기본권이라는 결정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혐연권이 헌법상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자유는 물론 건강권 생명권과도 연관된 권리이기 때문에 흡연권은 혐연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정돼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여의도 직장인·거주민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선 번번이 담배가 화두로 오릅니다. 최근에도 '매일 필수로 지나야 하는 길인데 도보 폭이 좁아서 어쩔 수 없이 항상 담배 냄새를 맡고 있다', '걸어가면서 흡연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데 그럴 때마다 뭐라고도 못하겠고 속만 끓는다', '단속해도 말짱 도루묵 아니냐…금연 표지판 바로 앞에서도 피우는데 보기 불편했다', '흡연부스 안에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다들 그 밖에서 피더라' 등 의견이 올라왔습니다.
각 건물을 관리하는 경비원들의 고충도 적지 않습니다. 여의도동 소재 한 건물 내외부를 관리 중인 박씨는 언젠가부터 '주차장 턱 근처와 화단에 뒤덮인 꽁초를 줍는 일'이 출근 직후 가장 처음 하는 업무가 됐다고 합니다. 건물주 뜻에 따라 건물 주차장에서도 담배를 가급적 피우지 못하도록 안내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단속이 없는 밤 사이 담배를 피워 단속이 소용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는 "이른 아침 와서 보면 담배 꽁초가 말도 안 되게 많다"며 "금지 스티커와 표지를 무시하고 피우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깡통(재떨이)을 아예 치웠더니 바닥에 버리더라"고 했습니다. 이어 "낮도 못 막는데 밤 사이 흡연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을까 싶다. 이제는 포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점점 많아질 여의도 인구…구청 "흡연부스 더 만들겠다"
흡연권과 혐연권 사이. 여의도에는 초고층빌딩이 곳곳 세워지고 이미 있던 건물들도 더 높이 재건축되고 있습니다. 흡연자들을 둘러싼 찬반이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해지진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입니다. 구청 직원들은 어떤 해결책을 고민했을까요.
일단 흡연부스와 단속 인력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춘 듯합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흡연자들에 대한 민원이 많다. 현재 구청에서 운영 중인 공식 흡연부스가 10개인데 내년 중 여의도역 5번 출구 추가 설치를 비롯해 몇개를 더 증설할 예정"이라며 "기존 6명 안팎의 단속조도 증원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특정 시각 무리들 둥 일부에게만 딱지를 끊는다'거나 '멀리서부터 촬영하면서 주차장 턱을 넘어서기만 기다리는 게 자칫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듯하다' 등 지적이 많습니다. 이처럼 단속 기준이 모호하다는 일부 흡연자들의 불만에 대해선 "금연구역에 서 있으면서 담배에 불이 붙어있으면 일단 단속을 한다는 게 원칙"이라며 "단속원마다 기조가 조금씩 다르고 인력의 제한도 있는 만큼 실상 모두에게 공정한 단속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주관이 개입되다보니 기분이 나쁠 수 있는 점은 이해하지만, 유연하게 단속할 경우에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에선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며 "유연하게 하는 것보다는 법에 따라 냉정하게 단속하는 게 맞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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