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결산] 전국을 강타한 '전세사기'에 수많은 피해자 절망
특별법 시행 반년…피해자들 "실효성 떨어져" "달라진게 없다"
전문가 "피해자 눈높이 맞는 지원책·전세 제도 교육 필요"
(전국종합=연합뉴스) 지난해 서울에서 시작된 '전세사기' 사태가 올 한 해 도미노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가며 수많은 세입자를 절망에 빠뜨렸다.
'빌라왕·건축왕' 등의 별칭까지 생겨난 전세사기 관련 피해는 인천, 경기도 등 수도권 일대와 부산, 대전 등지로 크게 확산했다.
1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된 전세사기 피해(1만3천433건)의 67%가 수도권에서 발생했고, 부산(12.6%)과 대전(8.3%)에서도 다수 피해가 잇따랐다.
피해 세입자 10명 중 7명은 10∼30대 청년층이었다.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 7명이 결국 세상을 등졌다.
여야가 합심해 지난 5월 전세사기 특별법을 통과시킨 지 반년이 지났다. 6개월마다 보완 입법을 하기로 했으나, 지난 6일 여야의 대립 끝에 개정안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인천 '건축왕' 범죄집단조직죄 첫 적용…피해자 4명 극단적 선택
올 상반기 전세사기 피해가 제일 극심했던 인천에서는 이른바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 일당의 범행으로 피해자들 4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건축업자인 A(61)씨는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563채의 전세보증금 453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로 지난 6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사기 등 혐의로 A씨와 바지 임대인·공인중개사·중개보조원 등 일당 35명을 기소하면서 이 중 18명에게 '범죄집단조직죄'를 적용했다. 국내 전세사기 사건 중 범죄집단조직죄가 적용된 첫 사례다.
인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A씨 일당의 재산 은닉을 막기 위한 범죄수익 몰수·추징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7월까지 인천경찰청에서 확인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A씨 일당 피해자를 포함해 800여명으로, 피해금은 1천300억원에 달했다.
경찰은 지난 7월까지 1년간 500명이 넘는 전세사기 사건 피의자를 검거하고, 10건에 대한 기소 전 추징보전을 신청해 범죄수익금 35억원을 몰수·추징 보전했다.
부산판 '빌라왕'에 이어 경기도 동탄·수원서도 대규모 전세사기
부산에서도 60억원대 피해 규모인 부산판 '빌라왕' 사건이 발생했다.
전세사기 수십건을 저지른 이른바 '부산 빌라왕'에 명의를 빌려준 '바지사장' 30대 이모 씨는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부산지역 오피스텔 6곳 세입자 62명으로부터 보증금 64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부산 빌라왕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에서도 대기업 주변의 오피스텔 전세 수요가 높다는 점을 악용한 200억원대 전세사기가 터졌다.
수원지검은 지난 6월 동탄 오피스텔 268채 보유자인 B씨 부부와 43채 보유자 C씨 부부, 그리고 이들의 오피스텔에 대해 임대 거래를 도맡아 진행한 공인중개사 D씨 부부 등 총 6명을 기소했다.
최근 경기도 수원에서 불거진 대규모 전세사기는 피해 규모가 1천23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수원에서 전세사기를 벌인 정모 씨 부부와 아들 등 3명을 지난 8일 송치했다.
이들은 여러 개의 부동산 임대업 관련 법인 등을 만들어 대규모로 임대 사업을 벌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3천세대 이상' 역대급 전세사기 피해 대전…LH도 속아
전국에서 1인 가구 비율이 제일 높은 대전은 인구 대비 전세사기 피해자 수가 인천 다음으로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국토부에서 인정한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는 지난 11일 기준 824명이다.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대책위)에서 파악한 지역 내 피해자 수는 3천300여명, 피해 금액은 3천500억원이 넘고, 연말까지 4천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다른 피해 지역과 달리 대전은 피해 세대의 98%가 다가구주택으로, 현행 특별법 지원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에서는 지난 10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까지 속고 피해 규모만 3천세대 정도로 추정되는 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했다.
지역 부동산 법인회사 대표 김모(49)씨는 2021년 4월부터 싼값에 땅을 사서 건물을 짓거나 갭투자 방식으로 건물을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이렇게 확보한 건물만 200여채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전경찰청은 김씨 관련 전세사기 피해가 최소 2천세대 이상 규모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대책위 측은 피해 금액이 3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김씨는 LH의 전세 지원 제도를 악용해 159억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로 이미 재판을 받고 있다.
특별법 시행 6개월…피해자 "달라진 게 전혀 없어"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하다 보니 정부의 특별법 외에도 지자체마다 피해자 구제책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실효성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가 제일 컸던 인천시는 올해 자체 예산 63억원을 편성해 대출이자와 월세 지원, 이사비 등을 지원했다.
그러나 지원예산 집행률이 지난 10월 초 기준 1%에도 미치지 못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부에서 내놓은 지원책 중 하나인 LH의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과 매입임대 전환도 지난달 기준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전국의 피해자들은 지난 5일 전국 동시 집회를 여는 등 그동안 현실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특별법 개정과 지원대책을 꾸준히 촉구해 왔다. 피해자들은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전국전세사기대책위 이철빈 위원장은 "현 특별법에는 기존 대출금을 다른 대출로 돌려막기 하는 식의 방안만 가득하고 실질적인 보증금 회수 방안이 전무하다"며 "피해 회복에 대한 진정성 없이 효용성 없는 선심성 대책들만 남발하고 있고 6개월 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피해자 눈높이에 맞는 수준으로 피해 구제를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며 "나아가 전세사기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전세제도에 대한 대국민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재홍 최은지 김솔 강수환 기자)
sw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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