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결산] 한일관계 풀고 한미일 협력 가속…북중러 결집엔 우려
코로나 빗장 푼 북한, 북러회담으로 돌파구…한중관계 관리는 숙제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올해 동북아 정세에는 극적인 변화가 잇따랐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과 과거사 갈등을 일단락짓고 한일관계 개선에 나선 것을 디딤돌 삼아 한미일 협력이 새로운 단계로 도약했다.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3국 관계는 지역 내 다양한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안보 협력체로 거듭나며 질적 변화를 맞았다.
북한도 수년간의 코로나19 빗장을 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러시아와의 전격적 정상회담을 통해 돌파구 마련을 꾀하면서 북중러 3국 결집을 시도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반도에 이른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진영 구도가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졌다.
한일 과거사 갈등 한국 주도 해법으로 매듭…불안정성 남아
윤석열 정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내야 할 배상금을 국내 재단이 모금한 돈으로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 해법을 올해 3월 발표했다.
수년간 한일관계를 교착시켰던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한국 주도로 매듭짓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정부는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강조했지만 일본 가해 기업의 참여나 직접 사과가 없어 '반쪽 해법'이라는 비판도 거셌다.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 중 11명이 해법을 수용했다.
생존 피해자 2명을 포함한 4명이 해법 거부를 고수하자 정부는 이들 몫의 배상금을 법원에 공탁했고 현재는 공탁의 유효성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제3자 변제 해법의 불안정성이 남아 있는 가운데서도 한일 정부는 빠르게 관계 회복을 진행했다.
한일 정상의 '셔틀외교' 복원과 함께 과거 징용 문제에서 파생됐던 수출규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관련 갈등을 속전속결로 해결했다.
8월 시작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도 한일 당국의 갈등 사안으로 비화하지 않았다. 방류에 앞서 일본이 한국 시찰단의 후쿠시마 원전 방문을 수용하고 한국이 "해양방류 계획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기준에 부합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올 한해에만 7번의 정상회담을 하고 앞서 장기간 중단됐던 한일 간 각종 협의체를 재개했다.
캠프 데이비드서 한미일 '지역 안보협력체' 발돋움
한일관계가 전면적 협력 국면으로 전환하면서 한미일 협력의 마지막 '빠진 고리'가 채워졌다.
한국의 강제징용 해법을 "신기원적인 새 장"(조 바이든 대통령)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대환영한 미국은 한미일 3각 공조 다지기에 속도를 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8월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를 대통령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했다. 한미일이 다자 국제회의가 아니라 별도로 일정과 장소를 잡아서 개최한 첫 정상회의였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한미일은 명실상부 쿼드(Quad·미국, 인도, 호주, 일본),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와 같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소다자 협력체로 제도화됐다.
특히 캠프 데이비드 회의에서 채택된 '3자 협의에 대한 공약'(Commitment to Consult) 문서는 역내외에서 3국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위기가 발생하면 정보 교환과 메시지 조율, 대응 방안 협의 등을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북한 문제뿐 아니라 중국이 연관된 인도·태평양 지역의 다양한 위기 상황으로까지 한미일의 잠재적 대응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남중국해, 대만해협 등 인태 지역에서 중국이 벌이는 다양한 국제질서 도전 행위에 대한 한국의 입장도 미국, 일본에 가깝게 선명해졌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캠프 데이비드 회의 이후 발간한 '한미일 정상회의 성과와 후속 과제' 보고서에서 "정책적 시야가 한반도에 한정되었던 한국이 개별 국가 단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 수준의 안보 행위자로 등장했다"고 평가했다.
한중관계는 여전히 숙제…북러 군사협력 새로운 골칫거리
한미일 결속 강화의 부작용으로 한중관계에서는 부담이 늘어났다.
이는 다양한 파열음으로 나타났다. 특히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6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중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면 후회한다"는 등 내정 간섭성 발언을 하며 한중관계가 크게 출렁였다.
하반기 들어 한중은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회담, 한덕수 국무총리의 항저우 아시안게임 계기 시진핑 국가주석 예방 등을 통해 갈등 봉합을 꾀했지만 아직 협력 본격화 단계로 나아가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정부는 약 4년간 멈췄던 한중일 정상회의를 올해 한국에서 개최하는 것도 중요한 외교 과제로 추진했다.
그러나 중국이 조기 개최에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결국 연내 성사는 불발됐다. 한중관계는 여전히 윤석열 정부에 미완의 외교 과제로 남아 있다.
한반도 정세에 북러 군사협력이라는 새로운 '골칫거리'가 등장하면서 중국과의 협력 필요성은 더 커진 상황이다.
북한은 7월 중·러 고위 인사를 평양에 초청한 '전승절'(정전협정기념일) 외교를 통해 수년간 굳게 걸어 잠갔던 코로나19 빗장을 풀었다.
이어 9월 이뤄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러시아 방문은 동북아 안보질서에 충격을 던졌다. 북한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사용할 무기를 제공한 데 이어 러시아의 대북 핵·탄도미사일 관련 기술 지원 가능성도 커졌다.
여기에 중국까지 끌어들인 '북중러 3각 결속'을 북러가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 들었다.
중국이 북중러 결속에 거리를 둔다는 점을 활용해 정부는 중국과 북러 간 '틈 벌리기'를 시도했지만, 중국과의 한반도 문제 관련 협력은 여전히 제한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올해 숱한 북한의 전략적 도발에도 불구하고, 중러의 반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단 한 건의 성명이나 결의도 채택하지 못했다.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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