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모두 바닥날 위기” 좀비기업 된 유니콘들, 무슨 일?

변희원 기자 2023. 12. 15.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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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분기 국내 벤처 투자 25% 감소

반도체 설계 기업(팹리스) 파두는 올해 초 120억원 투자를 유치한 데다 해외 빅테크 고객사를 확보했다는 소식까지 나오면서 기업 가치 1조800억원을 인정받았다. 유니콘 기업에 등극한 후 8월 상장 당시 시가총액은 1조3000억원이었다. 최근 파두는 올해 2·3분기 매출이 각각 5900만원과 3억2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유니콘이라는 호칭이 성공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했다.

2013년 IT 전문 매체 테크크런치가 한 칼럼에서 ‘유니콘(창업 10년 이하, 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이란 용어를 사용한 이후 전 세계 벤처 업계는 유니콘에 열광했다. 국내에서도 업계와 정부 모두 유니콘 키우기에 앞다퉈 나섰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 투자자들이 스타트업 성장성이나 이익 실현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투자 금액을 늘리면서 스타트업들의 덩치는 급격히 커졌다. 2020년 10개였던 한국 유니콘 기업은 2021년 18개, 2022년 22개까지 늘었다. 하지만 파두의 사례처럼 이 유니콘들의 상당수가 최근 실적 부진에 시달리거나 기업 공개, 인수·합병에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픽=김현국

◇유니콘 됐는데 기업 가치는 뚝 떨어져

현재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유니콘으로 인증한 스타트업은 모두 22곳이다. 전체 스타트업 가운데 0.7%에 불과한 유니콘 등극 확률을 뚫은 기업들이지만, 현재 상황은 녹록지 않다. 마켓컬리와 오아시스는 모두 연내 상장 준비를 했지만 기업 가치가 떨어지거나 매출, 수익 악화로 상장을 연기했다. 코로나 당시 업황이 좋았을 때 기업 가치를 높이 평가받았다가 최근 시장 상황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마켓컬리는 2021년 말 상장 전 지분 투자(Pre-IPO)에서 2500억원을 조달하면서 4조원에 가까운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현재 1조원대로 떨어졌다. 야놀자, 직방, 버킷플레이스, 당근 등도 경기 부진, 경쟁 심화 등으로 지난해 수백억 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줄면서 당분간 신생 유니콘을 보기는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중기부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누적 벤처투자액은 7조687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감소했다. 투자 건수도 지난해 5857건에서 5072건으로 줄었다. 기업당 투자 유치 금액도 32억2000만원에서 25억9000만원으로 6억3000만원 줄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중기부가 올해 유니콘 관련 언급을 하지 않는 것도 유니콘에 회의적인 시장 분위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실리콘밸리에선 좀비 유니콘도 속출

실리콘밸리에서도 최근 유니콘에서 ‘좀비’로 몰락한 스타트업이 속출하고 있다. 공유 오피스 기업인 위워크는 지금까지 110억달러(약 14조2560억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했고, 올리브 AI(헬스케어)는 8억5200만달러, 콘보이(화물 운송)는 9억달러, 비브(주택 건설)는 6억4700만달러를 투자받앗다. 지난 6주 동안 이들은 모두 파산 신청을 하거나 문을 닫았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투자 시장이 안 좋아지자 비용 절감을 통해 버텨온 스타트업들이 이제 시간과 자금 모두 바닥날 위기에 처했다”면서 “벤처캐피털 업계는 살릴 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을 선별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문을 닫거나 매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했다. 한때 76억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화상회의 설루션 스타트업 호핀은 지난 8월 주력 사업을 단 1500만달러에 매각했다. 7억7600만달러를 투자받은 전기 스쿠터 스타트업 버드는 지난 9월 뉴욕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됐다.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만 스타트업 약 3200곳이 폐업했다.

업계에서는 유니콘 부진 때문에 스타트업 전반에 대한 투자나 지원이 줄어들까 봐 우려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 세계적으로 유니콘에 오른 스타트업은 12곳으로, 지난 6년간의 집계 중 가장 낮았다. 국내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투자 과열기를 거쳐서 현재 조정기에 들어온 상태인데, 이 시기를 인내해야 제2의 쿠팡이나 배민이 나올 수 있다”며 “당장 영업이익·손실을 보지 말고 비즈니스 모델을 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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