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캐던 황무지가 中 최대 와인 산지로… 시진핑 ‘와인 굴기’ 중심 가보니

닝샤후이족자치구 인촨(중국)=이윤정 특파원 2023. 12. 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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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샤후이족자치구 인촨시 허란산 와인 산지
中 와인 생산 절반 담당… 작년 수입 6조원
佛 보르도 추월 목표, 中 내부는 “가능성 충분”
부패 단속에 고급 와인 소비 어려움 등 한계도

지난 11일 오후 중국 서북부에 있는 닝샤후이족자치구의 성도 인촨시. 베이징에서 2시간가량 비행기로 이동해 도착한 이곳 공항은 중국 최대 와인 산지답게 거대한 와인병과 와인잔 조형물이 관광객을 반기고 있었다. 인촨시는 허란산 동쪽 기슭에 있는 3억9000만㎡(약 1억2000만평)의 포도밭에서 연간 1억3800만병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중국 전체 와인 생산량의 절반 수준으로, 지난해에만 350억위안(약 6조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제 ‘닝샤 와인’은 중국 와인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지난 11일 오후 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 인촨허동국제공항 내 와인병과 와인잔 조형물./이윤정 기자

닝샤 허란산이 처음부터 와인 산지로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즈후이위안스 와이너리 관계자는 포도밭 바로 옆 깎아지른 절벽과 모래 공터를 보여주며 “우리 와이너리가 이런 곳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초기 모래 채굴장의 형태를 보존해 놓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 일대는 모래와 자갈을 채굴하던 황무지였고, 작물이 자랄 수 없을 만큼 척박한 곳이었다.

그러나 생태 복원 작업이 진행되면서 색깔이 선명하고 향기가 짙으면서도 달콤한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는 데 제격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3100시간 이상의 풍부한 일조량, 큰 일교차, 일 년에 비가 200mm도 내리지 않는 건조한 기후에 중국 문명의 상징인 황하(黃河)까지 맞닿아 있어 농지에 물을 공급하는 관개도 수월한 환경을 갖춘 덕분이다. 시거 와이너리의 류첸 브랜드 대사는 “닝샤 포도로 만든 와인은 균형잡힌 당과 산도, 촉촉함 덕분에 편안하게 마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2일 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 인촨시 허란산에 있는 즈후이위안스 와이너리. 와이너리가 들어서기 전의 모래, 자갈 채석장 일부를 보존해뒀다./이윤정 기자

닝샤의 자연환경과 거대한 중국 내수 시장에 주목한 기업들이 허란산에 앞다퉈 와이너리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0년대 초반부터 해외 기업들이 대거 진출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산하 세계 최대 샴페인 브랜드인 ‘모엣샹동’을 비롯해 시바스 리갈로 알려져 있는 페르노리카, 호주 대표 와인 펜폴즈 등이 닝샤에서 와이너리를 운영 중이다. 현재 허란산에만 228개의 와인 업체가 있는데, 이들이 운영하는 와이너리는 116개에 달한다.

중국 정부도 닝샤의 발전 가능성에 주목, 이곳을 프랑스 보르도에 버금가는 세계 와인 산지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앞서 중국 정부는 지난 2021년 허란산의 ‘2035년 와인 6억병 생산’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여기에 닝샤후이족자치구 정부는 최근 보다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했다. 2025년까지 허란산 포도밭 규모를 6억6600만㎡로 늘리고, 연간 3억병 이상의 와인을 생산해 1000억위안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는 것이 골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2016년,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닝샤를 방문하며 힘을 실어줬다. 그는 2016년 시찰 당시 “(중국 와인 산업이) 가는 길은 옳다. 그 방향 그대로 전진하라”는 말을 남겼다.

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 인촨시 허란산에 있는 즈후이위안스 와이너리./이윤정 기자

다만 닝샤 와인이 중국 정부 바람대로 보르도 등을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중국은 중국인의 소비 수준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만큼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제이드 와이너리의 장옌리 대표는 “닝샤 와인 산업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며 “지금도 닝샤 와인 산업은 초기 단계에 불과한 데다, 다른 산업군에서 성공한 기업들이 와인 분야에 진출하고 있어 자금이 더욱 몰려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중국의 1인당 와인 소비량은 2015년 1.52리터(ℓ)에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1.71ℓ로 12% 넘게 증가해 빠른 성장 속도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장애물도 만만치 않다. 시 주석이 집권한 이후 ‘부패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고급 와인 소비가 어려워졌다는 점이 문제다. 최소한 공무원 집단에서는 고급 와인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결국 와인 업체들은 판매 타겟을 대중으로 돌리게 됐고, 이는 중국 내 와인 품질의 발전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역사가 짧은 탓에 닝샤 와인의 위치도 애매한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와인 칼럼니스트 엘레노어 올콧은 “중국 와인은 지난 10년간 품질이 향상되고 국제 대회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여전히 가격 면에서 신흥국 와인과, 명성 면에서 선진국 와인과 경쟁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와인을 정기적으로 소비하는 중국 내 애주가들 역시 소수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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