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3일 기다린 깜짝카드', 사령탑 엄지척+김연경의 특급케어... 흥국생명 세터진 옵션이 추가됐다

인천=안호근 기자 2023. 12. 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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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 인천=안호근 기자]
흥국생명 세터 박혜진이 14일 IBK기업은행전을 승리로 이끈 뒤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마르첼로 아본단자 인천 흥국생명 감독은 의외의 인물을 선발 라인업에 올렸다. 작년 3월 이후 경기 출전이 전무했던 박혜진(21)을 세터로 기용한 것이다.

박혜진은 1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 도드람 V리그 여자부 화성 IBK기업은행과 방문경기에 선발 출전해 활약하며 팀의 3-2(26-24, 22-25, 25-18, 23-25, 18-16)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써 흥국생명은 13승 2패로 수원 현대건설(11승 4패)과 승점 35로 어깨를 나란히했지만 다승에서 앞서 이틀 만에 선두를 탈환했다.

경기 전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주전 세터 이원정(23)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경기 출전이 어려워진 탓이다. 선발 라인업엔 팬들 사이에서 잊혀졌던 선수가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3월 21일 서울 GS칼텍스전 이후 자취를 감췄던 박혜진이 세터로 선발 출전한 것이다.

2020~2021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순위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은 박혜진은 첫 시즌 10경기, 2번째 시즌 29경기 출전하며 기회를 늘려가는 듯 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인해 수술대에 오르며 지난 시즌을 통째로 쉬어갔다.

박혜진이 경기 중 선수들과 사인을 주고 받고 있다. /사진=KOVO
토스를 올리는 박혜진(오른쪽). /사진=KOVO
올 시즌엔 팀 훈련을 함께 하며 기회를 엿봤지만 교체로도 출전하지 못하던 터였기에 이날 깜짝 선발 출전이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공격수들과 실전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으나 결과는 준수했다. '쌍포' 김연경과 옐레나 므라제노비치(등록명 옐레나)에게 35.33%, 30.98%로 알맞게 배분하며 각각 36점, 16점을 이끌어냈다. 세터치고 장신인 177㎝의 신장을 활용해 블로킹 3개 포함 5득점도 기록했다.

경기 후 아본단자 감독은 "확실히 잠재력이 있는 선수 같다. 오랫동안 코트에서 안 뛰었는데 잘해줬다"며 "시작을 안하면 (언제가지고) 뛸 수 없는데 오늘 투입돼 잘 스타트를 끊은 것 같다. 그래서 더 값졌고 경기력은 좋았다"고 칭찬했다.

몸을 아끼지 않을 만큼 기회를 잘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1세트 25-24로 승리까지 1점만을 남겨둔 상황에선 광고판과 부딪히면서까지 몸을 날려 공을 살려냈고 그 덕에 흥국생명은 1세트를 잡아내고 시작할 수 있었다. 무릎 부상으로 오랫동안 코트를 떠나 있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경기 후 만난 박혜진은 "경기를 마친 후에야 오랜 만에 경기를 뛰었다는 게 실감이 난다. 미리 (경기 출전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고 며칠 전부터 연습을 많이 하긴 했다"며 "오더를 보고는 자신 있게 해야겠다고만 생각했다"고 복귀 소감을 밝혔다.

팀 득점 후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는 박혜진(왼쪽에서 2번째). /사진=KOVO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었다. 그럼에도 사령탑의 칭찬을 이끌어낼 만큼 생각 이상의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박혜진은 "(호흡을) 맞춘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면서도 "하면서 맞아가는 부분이 있었다.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연경을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옐레나가 공격 성공률 22.81%로 부진해 더욱 적극적으로 김연경을 활용한 탓이었다. 이날은 평소에 비해 유독 김연경의 후위 공격(5득점)도 많았다. "감독님께서 세터들에게 속공이나 백어택 사용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그 부분을 잘 하려고 했다"는 박혜진의 의도된 플레이였다.

박혜진은 기대를 모았던 선수다. 어머니 남순옥은 흥국생명의 전신인 태광산업에서 뛰었던 미들블로커였고 친오빠 박태환(28)은 수원 한국전력에서 미들블로커로 활약 중일 정도로 보기 드문 배구 집안이다.

이다영의 예상치 못한 이탈로 데뷔 초반부터 기대 이상의 기회를 얻은 그는 2022년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국가대표로도 선발되며 잠재력을 인정 받은 자원이었다.

토스를 띄우는 박혜진(왼쪽)과 그를 지켜보는 아본단자 감독. /사진=KOVO
경기 도중 박혜진(왼쪽)을 불러 지시를 내리는 아본단자 감독. /사진=KOVO
그러나 부상에 발목을 잡혔다. 빨리 회복해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박혜진은 "배구는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봤다. 저 자리에 없는 게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회복하고 얼른 복귀하는데 중점을 맞춰서 괜찮았다"는 그는 이날 승리를 이끈 뒤 오랜 만에 관중들 앞에 섰다. "사실 정말 울컥했는데 참았다. 너무도 기뻤다"고 말했다.

부상 선수들이 너무도 힘들어하는 재활 과정을 그 또한 거쳤다. 배구 선수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수술대에 오른 것이었기에 낯설고 힘들었다. "재활할 땐 울지 않았지만 수술대에 오르기 전까지 정말 많이 울었다"는 박혜진은 "재활 했던 언니들도 괜찮다고 많이 말해줬고 팀원들이나 주변에서도 많은 얘기를 해줬다. 집에 4개월 있으면서 가족이 너무 큰 위로가 돼줬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날 경기 중에도 동료들이 계속 그를 독려해줬다. 특히나 김연경은 박혜진이 실수를 하거나 그 덕에 득점을 했을 때 그에게 다가와 꾸준히 응원을 해줬다. 박혜진은 "(김연경이) 기술적인 면도 얘기해주고 자신 없어할 때 자신 있게 하라고 말해줬다"며 "연경 언니뿐 아니라 코트에 있는 다른 선수들이나 웜업존에서 언니들 동생들, 선생님들, 스태프들도 얘기를 많이 해줘서 버틸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가족들도 너무 떨려 경기장에도 오지 못할 정도였으나 성공적으로 경기를 마쳤다. 그럼에도 박혜진은 "10점 만점 중 7점을 주고 싶다. 그래도 높이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한 것 같고 호흡이 좀 맞는 것도 있었다. 앞으로 연습 많이 맞추며 많이 뛰는 경기 보여드리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연경(오른쪽)이 박혜진을 독려하고 있다. /사진=KOVO
경기 중 이야기를 나누는 박혜진(왼쪽)과 김연경. /사진=KOVO

인천=안호근 기자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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