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분명한 성공들을 기억해 보아요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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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공'이라는 낱말을 어린이와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왔다.
그야 그러려니 하는데, 이 책들이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요약된 것을 보면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어린이가 '성공한 인생'만이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할까 봐 조마조마하다.
올 연말에는 어린이들과 '1년 동안 성공한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혼자서 단추를 다 채운 것, 수학학원 레벨 테스트를 통과한 것, 학교에 혼자 간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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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의 그림책 속 어린이]
성공이란 무엇인가
이성표 지음, 베시 앤더슨 스탠리 원작 l 보림(2023)
나는 ‘성공’이라는 낱말을 어린이와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왔다. 수많은 자기계발서 제목에서 성공은 ‘리더’ ‘법칙’ ‘부’ ‘습관’ 같은 낱말과 나란히 쓰인다. 그야 그러려니 하는데, 이 책들이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요약된 것을 보면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나 자신은 종종 시간 관리에 대한 자기계발서를 찾아보는 독자이지만, 어린이가 읽는다고 생각하면 역시 어색하다. 어린이가 ‘성공한 인생’만이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할까 봐 조마조마하다.
조금 미심쩍어하며 ‘성공이란 무엇인가’를 펼쳤다가, 성공에 대한 첫 번째 정의에서 그만 민망해졌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호랑이와 어린이 들이 크게 웃으며 펼침면을 채우고 있다. 이어지는 정의들은 이렇다. “이웃에게 존경받고” “어린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 조용히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 마음이 아픈 사람 곁에 있어 주는 것도 성공이다. 원래 ‘성공’은 목적한 바를 이룬다는 뜻으로 쓰이는 낱말인데 왜 나는 자본주의적인 것, 과시적인 것으로 지레짐작했을까. 그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아니었나 싶어 뜨끔했다.
이 그림책은 베시 앤더슨 스탠리의 원작 시 ‘What is success?’를 이성표 작가가 재해석해 완성한 작품이다. 문장이 서정적이면 다소 모호하게 느껴지기 쉬운데 이 그림책은 소박하고 따뜻한 그림으로 인해 글이 부드럽게, 안정적으로 읽힌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어 읽으면 시적 운율을 느낄 수 있다. 어른의 목소리로 한 번, 어린이의 목소리로 한 번 시를 읊듯 읽어보기를 권한다. 읽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한 해가 저물어 갈 때면 어린이는 어른들로부터 내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초등학생이 되면, 4학년이 되니까, 몇 살이니까 이러저러하게 달라져야 한다는 당부를 듣게 마련이다. 어떤 어린이는 새해를 결심과 기대로 맞이하지만 누군가는 벌써 걱정과 한숨으로 땅이 꺼지는 기분일 것이다. 올 연말에는 어린이들과 ‘1년 동안 성공한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혼자서 단추를 다 채운 것, 수학학원 레벨 테스트를 통과한 것, 학교에 혼자 간 것도 좋다. 우산을 펴고 접을 줄 알게 된 것이나 방송 댄스의 어려운 안무를 결국 해낸 것도 좋다. 혹시 성공의 목록이 빈약하다 싶으면 급조해도 된다. 줄넘기 연속 100개가 어려웠다면 열 개씩 열 번 하는 것으로 고치는 것이다. 독서교실 어린이들과는 그럴 때 짧은 시를 몇 편 외우기도 한다. 어린이에게는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하는 형식적인 말보다, 작고 분명한 성공을 일일이 기억하는 쪽이 훨씬 격려가 된다는 걸 잊지 말자.
이런 성공에 대한 격려는 어른에게도 필요하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힌트를 줄 것이다. “내가 잠시 이곳에 살았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어린이와 함께 행복했던 순간을 짚어보면 좋겠다. 어린이도 어른도 비로소 내년 계획을 세우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김소영 독서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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