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무릎꿇리기 위한 자본의 선택이 기후위기 기원 [책&생각]
‘화석 경제’의 시작을 찾아 19세기 초 영국으로
화석 자본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온난화의 기원
안드레아스 말름 지음, 위대현 옮김 l 두번째테제 l 3만8000원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가 폭넓게 진행되면서 네덜란드 기후학자 파울 크뤼천(1933~2021)이 제시했던 ‘인류세’(Anthropocene)란 개념은 이제 널리 자리를 잡았다. 인류세란 말은 인간이 그 본성적인 탐욕으로 말미암아 지구라는 행성을 더이상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화시켰다 지적하고, 종(種)적인 차원에서 그 책임을 묻는 접근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인류세란 새 지질시대의 시작점은 과연 어디일까. 인간이 농경을 시작하면서? 산업혁명을 일으켰을 때? 인간의 흔적이 자연에 본격적으로 퇴적되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이는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 기후위기의 기원인가 따지는 논쟁과 맞닿는다.
스웨덴 출신 정치생태학자·기후활동가 안드레아스 말름(46)은 2016년 펴낸 자신의 첫 책 ‘화석 자본’에서 기후위기의 근원을 찾기 위해 독자들을 1820년~1830년대 영국으로 데려간다. 공장의 탄생 등 면직업종에서의 비약적인 생산력 발전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직후, 자본주의 경제의 첫 구조적인 경기 침체가 일어났던 시기다. 지은이는 이 시기에 수력에서 증기력으로 동력 전환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파헤치며, 오늘날 기후위기의 근원인 ‘화석 경제’가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전모를 보여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석 경제는 인간이란 종 전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종 내부의 모순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이 새로운 지질시대는 인류 전체가 아니라 화석 경제를 선택한 특정 주체의 이름으로, 곧 인류세가 아닌 ‘자본세’(Capitalocene)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먼저 지은이는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눠본다. 태양에서 기원한 일부 에너지원은 생물권을 통과하여 흘러가는데, 인간은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이 ‘에너지의 흐름’을 낚아채 쓸 수 있다. 이를테면 바람, 하천의 흐름 등이다. 어떤 에너지원은 인간이나 동물이 가진 근육이 지닌 힘의 형태로 생명체에 깃드는데, 이는 ‘동물력’이다. 마지막으로 아주 오래전 과거에 주어진 태양에너지를 품고 있는 ‘에너지의 재고’가 있는데,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가 여기에 해당한다. 화석연료의 출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에너지를 더 소비하려는 (종적 차원에서) 인간의 욕망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결핍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추동해 결국 화석연료를 불태우게 되었다는 식(리카도-맬서스식)으로 설명한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 인구의 증가 등이 이런 설명을 뒤따른다.
그러나 19세기 초 영국이란 현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력 방적기를 발명한 리처드 아크라이트(1732~1792)가 제시한 길에 따라, 애초 영국의 면직업은 수력(수차)에 기대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참이었다. 1784년 제임스 와트(1736~1819)가 석탄의 열에너지를 물리적인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회전식 증기기관을 만들어냈으나, 이것이 곧바로 ‘화석 경제’의 시작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수력에 견줘 비용은 높고 생산성은 낮았기에 증기력은 한동안 수력을 대체하지 못했다. 수차에 자동장치를 적용해 대규모 생산을 추진한 로버트 톰의 기획에서 보듯 수력에서도 혁신이 있었다. 화석 경제는 증기력 자체가 아니라 다른 핵심적인 원인에 기대어 등장했고, 또 같은 원인에 따라 오늘날까지 우리의 평시 활동을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 지은이의 핵심 주장이다.
그것은 시간·공간적 측면에서 노동을 복종시키기 위한 제조업자(자본가)들의 선택이었다. 50%에 달하는 초과이윤을 얻던 면직업은 1825년 12월이 되면 이윤율이 5% 이하로 떨어지는 “자본주의 최초의 구조적 위기”에 맞닥뜨리게 된다. 구조적 위기는 여러 차례 노동조합의 결성과 파업, 대중 봉기에 불을 붙였고, 공장법 제정, 차티스트 운동 등과 맞물려 1842년 총파업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1848년에 이르면 이런 움직임들이 ‘평정’되고 “영국 자본주의는 교착상태를 벗어나 지속적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구조적 위기’ 동안 제조업자들은 수력 대신 증기력을 ‘선택’함으로써 노동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우선 “증기는 그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닌 공간상의 이동성 덕에 선택되었다.” 수력을 쓰려면 공장을 벽지인 하천 근처에 세워야 했고, 이는 노동자를 조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했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생활을 위해 정착촌도 건설해주고 ‘인간관계’에 묶여야 했다. 그러나 ‘에너지의 재고’라는 특성으로 말미암아 증기력을 이용한 공장은 도시 등 인구 밀집지에 지어져 손쉽게 노동력을 조달할 수 있었고, 노동자를 공장 속에서 기계 부품처럼 다루는 것을 가능하게 해줬다. 시간의 측면도 중요했는데, 노동시간을 하천의 유량과 유속에 맞춰야 하는 수력과 다르게 증기력은 언제든 자본가가 원하는 대로 공장을 돌릴 수 있게 해줬다. 당시 ‘하루 10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공장법 제정 운동은 수력에 치명적이었으나, 증기력은 노동시간 규제 기류에 적응하면서도 작업 속도를 올리는 방식으로 이윤을 챙겼다. “증기력은 제조업자들에게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노동자라는 멍에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했다.” 이런 측면에서 지은이는 당시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권력-동력’이라고 짚는다. 자본은 동력을 통해 권력을 얻은 반면, 노동은 권력 없는 동력이 된 것이다.
결국 ‘화석 경제’는 결핍을 이겨내기 위한 생산력 고도화 등 에너지원 그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본이 노동을 무릎꿇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은이는 “기후변화가 인간적(anthropogenic)이라는 점을 인지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 사회적 원인을 가진다(sociogenic)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라며, 역사적 기록이 이처럼 명백히 보여주는 ‘종 내부의 모순’에는 눈감은 채 “무차별적으로 우리라고 지칭하는” 인류세 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인류가 아니라 자본축적의 지질학”이라면, 이 시대의 이름은 ‘자본세’ 말고 다른 것일 수 없다. 지금의 행동 역시 여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을 터, 지은이는 과거 증기기관의 마개를 뽑으려 했던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자며 말한다. “가서 피어나는 저 연기를 멈추자!”(Stop the smoke!)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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