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주 칼럼] 농촌에 사는 것, 그 서러움에 대하여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남모 할머니는 농촌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울에 사는 김모 할머니보다 서러운 일이 많다.
면 소재지에 병원은커녕 약국 하나 없어 읍내까지 가야 한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인구감소 농촌지역의 기초생활서비스 확충방안'에 따르면 인구감소지역 가운데 병원이 없는 면은 2020년 기준 87.9%, 약국이 없는 면은 59.2%에 달한다.
도암마을에 사는 남모 할머니는 89세 노인이지만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서비스 혜택을 받기도 힘들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김모 할머니는 올해 87세로 몇해 전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연립주택에서 살고 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무릎이 성치 않아 집 앞 정형외과에서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고 있다. 오전에는 10분 거리에 있는 노인복지관에서 뜨개질하다가 경로식당에서 식사한 후 집에 와서 인근에 사는 손자를 돌봐준다. 연립주택이라 수리할 곳이 있으면 관리인이나 자녀가 와서 도와준다. 가끔 외롭기는 하지만 복지관이 있고 자녀가 곁에 있기에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 전남 구례군 용방면 도암마을에 사는 남모 할머니는 올해 89세로 3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살고 있다. 평생 농사일을 해왔기 때문에 온몸이 아프다. 마을에 보건진료소가 있지만 허리·눈·치아 진료를 받으려면 읍내 병원에 가야 하는데 한나절이 넘게 걸린다. 자식들과 나눠 먹을 텃밭농사만 하기에 힘들지는 않지만 홀로 생활이 힘들다. 면(面)에 그 흔한 가게 하나 없어 뭐 하나 사려면 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가야 한다. 유일한 낙은 경로당에 모여 동네 할머니들과 점심을 같이 먹는 일이다.
남모 할머니는 농촌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울에 사는 김모 할머니보다 서러운 일이 많다. 우선 병원이나 약국을 이용하기가 너무나 불편하다. 면 소재지에 병원은커녕 약국 하나 없어 읍내까지 가야 한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인구감소 농촌지역의 기초생활서비스 확충방안’에 따르면 인구감소지역 가운데 병원이 없는 면은 2020년 기준 87.9%, 약국이 없는 면은 59.2%에 달한다. 마을에 보건진료소가 있지만 이웃 면과 순회진료를 하므로 비어 있는 시간이 많고 의사가 아니기에 치료에 제한이 많다.
아침 대용으로 마시는 두유 하나를 사기도, 난방 대용인 전기장판이 고장 나 수리하기도 어렵다. 용방면에는 농협 하나로마트도 없고 생활편의시설은 전화해야 문을 여는 미용실과 식당이 전부다. 전국 면지역의 평균 면적은 63㎢, 관악구 면적의 두배쯤 된다. 면에 상점 하나 없다는 말은 고무장갑 하나 사려면 관악구에 사는 사람이 동작구를 지나 영등포구나 용산구까지 가는 것과 비슷한 거리를 이동해야 함을 뜻한다. 게다가 농촌 주민 다수는 자가 차량이 없거나 운전할 수 없는 교통약자다.
도암마을에 사는 남모 할머니는 89세 노인이지만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서비스 혜택을 받기도 힘들다. 그래서 서럽다. 용방면에는 주간보호센터가 하나도 없고 가장 가까운 노인복지관은 읍내에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발간하는 ‘농어업인 등에 대한 복지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농촌의 복지시설 이용률은 노인복지시설이 17.3%, 아동·청소년 시설이 16.4%였다. 장애인시설 이용률은 5.0%에 그쳤다. 그 흔한 주간보호센터 하나 없는 면이 33%에 이르고 노인복지관은 읍에 0.3개가 있지만, 면에는 0.01개에 불과하다. 이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농촌이기에 더 많은 혜택이 있기도 하다. 정부의 ‘농어업인 기준’에 맞으면 건강보험료와 연금보험료를 지원해주는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89세 남모 할머니에게 더 절실한 것은 일상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는 돌봄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편하게 병원에 다니고, 쉽게 두유를 사고, 눈치 보지 않고 전기장판을 고쳐달라고 부탁하고, 돈 걱정 없이 경로당 밥도 먹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생활돌봄을 실천할 수 있는 ‘농촌 지역 공동체 기반 경제·사회 서비스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내년 8월부터 시행된다. 조금의 시행착오도 없게 지금부터 준비하고 또 준비하길 기대해본다.
김흥주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전 한국농촌사회학회장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