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기로에 놓인 라쿤카페…라쿤들은 어디로 가나

CBS노컷뉴스 류효림 인턴기자 2023. 12. 15.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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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법의 사각지대 평가받던 '야생동물카페', 14일부터 금지
동물원으로 업종 변경해야 운영 가능, 동물 만지기도 금지
야생동물카페 직접 가보니…업주들 "현실성없다" 반발
동물권 단체 "변화 환영하지만 폐업 시 유기 우려도"
동물 학대와 방임으로 논란이 일었던 '야생동물 카페' 운영이 14일부터 금지됐다. 이날부터 시행되는 '야생생물법'에 따라 라쿤, 미어캣 등 야생동물 카페가 정해진 환경 조건을 갖춰 동물원으로 업종을 변경하지 않으면 폐업해야 한다.

하지만 이 법안으로 야생동물들의 주거 조건이 더 좋아진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카페를 동물원으로 변경하면 나아질 수 있지만,  폐업을 하면 동물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 내몰릴 수 있다.

라쿤, 미어캣 키우던 동물 카페 사라진다

12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의 한 동물 카페의 라쿤과 미어캣. 류효림 인턴기자

동물카페의 동물들이 적절한 환경에서 관리되지 못하고 학대까지 의심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지난해 11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됐다.

기존 법은 10종류·50마리 미만의 동물만 전시하면 동물원으로 등록하지 않아도 됐다. 이에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해 운영하는 업장이 많아 '법의 사각지대'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 개정된 야생생물법은 동물원 또는 수족관으로 등록하지 않은 시설에서 야생 동물의 전시를 금지한다. 학대로 지적됐던 야생동물 올라타기, 만지기 등의 행위도 금지하고, 이를 어긴 경우 과태료를 부과한다. (1차-150만원, 2차-200만원, 3차-300만원, 4차 이상-500만원)

다만 2022년 12월 이전부터 야생동물 카페를 운영한 업주들은 4년간 유예를 신청할 수 있다.

손님 "귀엽고 사랑스럽지만…야생 동물이 있을 만한 곳은 아니야"

12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의 한 동물 카페에서 미어캣이 창 밖을 보고 있다. 류효림 인턴기자

지난 12일 오후 기자가 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 카페를 방문해 보니 평일 낮임에도 30분간 20명 이상의 손님들이 다녀갈 정도로 시끌벅적했다. 입장권 16000원을 지불하고 카페 내부로 들어가니 라쿤 두 마리가 손님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카페 한구석에는 투명 아크릴 창으로 둘러싸인 작은 방에 미어캣 여섯 마리가 있었고, 중앙에는 동물들이 타고 노는 트램펄린, 미끄럼틀, 캣타워가 놓여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카페를 방문한 손님들은 카페의 동물들을 보고 복잡한 심경을 표했다. 유 모 씨(17)는 "들어오자마자 냄새가 난다고 느꼈고, 카페 내에 식물이나 올라타고 놀거리가 많을 줄 알았는데, 그냥 일반 건물과 똑같아서 놀랐다"고 했다.

12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의 한 동물 카페에서 라쿤이 투명 유리 벽을 긁으며 제자리에서 뛰고 있다. 류효림 인턴기자


3평 남짓한 방에서 한 라쿤이 투명 유리 벽을 긁으며 제자리에서 뛰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직원이 문을 열어주니 손님들은 환호하며 라쿤의 눈앞에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라쿤이 나오지 못하고 문 앞을 서성이자 직원이 먹이를 주며 방에서 나오도록 했다.

손님 박 모 씨(24)는 "동물들이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것 같긴 한데, 야생 동물이 있을 만한 곳은 아닌 것 같다"며 "또 손님들이 먹이를 계속 줘서 식이 사이클이 엉망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업주들 "현실성 없는 법이지만, 가족같은 동물들 끝까지 책임질 것"

12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의 한 동물 카페에서 라쿤이 관람객들에 둘러싸여있다. 류효림 인턴기자

동물원으로 업종을 변경하거나 폐업해야 할 처지에 놓인 업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동물원으로 업종을 변경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6년째 마포구에서 야생동물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동물원으로 업종 변경은 까다로운 걸 넘어서서 100퍼센트 불가능하다"면서도 "악법도 법이니 업종을 변경해서라도 동물들을 끝까지 책임질 것"이라고 했다.

동물원으로 업종을 바꾸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건축법상 용도 변경을 하려면 영업을 중단하고, 공사를 한 후 용도 변경 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공사 중 동물들의 거취 문제도 해결해야 하니 이중고다.

광진구에서 야생동물 카페를 운영하는 B씨는 "동물원으로 업종을 변경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아 업종 변경을 하지 않기로 했다"며 "가게에서 키우던 라쿤, 미어캣은 집에서 기르려고 한다"고 했다.

B씨는 그러면서 "카페에서 키우면 환경을 잘 꾸밀 수 있을 텐데 가정에서 기르면 동물을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 같다"며 "개정안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가정 집에서 야생동물을 키우는 것에 대한 규제는 없다.

폐업 시 유기 우려도 남아있다

2023년 개소 예정인 국립생태원 유기·야생동물 보호시설 건립부지. 총 40억원이 투입된다

법 개정을 촉구해 온 동물권 단체는 변화를 환영하면서도 폐업하는 가게에서 유기 야생동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동물카페 업종이 애초에 법적인 사각지대 속에서 태어난 기형적인 산업"이라며 "만지기·먹이주기 등을 업체 측에서는 교감이라고 표현하는데, 동물들에게는 굉장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했다.

다만 폐업 시 동물 처분 문제가 남아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동물원은 시설 휴·폐원 시 보유 동물 관리 계획서를 지자체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야생 동물 카페는 동물원이 아닌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돼 있다. 여기서 법적 사각지대가 생긴다. 폐업 시 관리계획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단위나 근거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 보호시설을 건립하고 있다. 환경부는 "이번 법 개정으로 동물 유기·방치 문제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시설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 시설은 국립생태원 부속시설로 400개체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모니터링 방안이 없어 보호시설이 실질적으로 유용할지는 미지수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관리·감독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업체 측의 사정에 의해서 동물들이 유기·방치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동물 카페 운영 업주들도 보호시설에 난색을 표했다. 마포구 동물카페 업주 A씨는 "여기 있는 아이들은 다 가족 같은 반려동물인데, 갑자기 평생을 보호시설에 맡기라고 하면 어떡하냐…"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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