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실력자들이 17회나 안방 찾아오게 만든 네이버…'제2 중동 붐' 만든다
디지털 트윈, 국내 스타트업 중동 진출 밑거름
지난해 11월, '사막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의 항구 도시 제다에 기록적 폭우가 내렸다. 단 여섯 시간 동안 내린 비의 양은 179㎜. 사우디의 연중 강수량(100~200㎜)과 맞먹는 비가 몇 시간 사이에 쏟아진 것이다. 홍수 때문에 학교가 문 닫고 항공기 운항이 지연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로 가는 길도 막혔다. 홍수 관제 시스템과 배수 시설을 적절하게 갖추지 못한 터라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마제드 알 호가일(Majed Al Hogail)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 장관이 한국으로 날아왔다. 그는 경기 성남시 네이버의 제2사옥이자 세계 최초의 로봇 빌딩인 '1784'를 찾았다.채선주 네이버 대외·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정책 대표는 알 호가일 장관 일행에게 1784에 적용된 여러 기술을 선보였다.
네이버는 특히 홍수로 고민이 깊을 알 호가일 장관에게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을 활용한 홍수 예측 시뮬레이션으로 피해를 미리 막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 장면은 네이버가 10월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로부터 1억 달러(약 1,350억 원) 규모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 구축 사업을 수주하는 데 결정적 단초가 됐다.
'제2차 중동 붐' 이끄는 네이버, 기술력으로 승부
중동을 향한 네이버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네이버는 이르면 2024년부터 5년 동안 사우디 주요 5개 도시(리야드, 제다, 메디나, 담맘, 메카)에 클라우드 기반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 구축에 나선다.
디지털 트윈은 스마트시티 조성을 위한 '필수 인프라'다. 현실 세계와 동일한 가상의 디지털 세계를 컴퓨터 시스템에 똑같이 표현해 스마트시티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 중요해서다. 네이버 관계자는 14일 "제1차 중동 붐 당시 한국 기업이 '건물'과 '도시'를 짓지 않았느냐"며 "제2차 중동 붐이 부는 지금은 '데이터'와 '정보통신(IT) 기술'로 가상 세계에 현실과 판박이인 도시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우디가 한국 기업을 파트너로 삼은 이유는 뭘까. 네이버는 인공지능(AI), 로보틱스, 자율주행, 3D·HD 매핑(mapping), 증강현실(AR) 등을 10년 동안 연구해 온 싱크탱크인 네이버랩스의 기술력이 큰 영향을 줬다고 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제너럴일렉트릭(GE) 등도 디지털 트윈 관련 기술을 갖고 있지만 도시처럼 대규모 공간 단위의 디지털 트윈 구축 기술력은 네이버랩스가 한발 앞서 있기 때문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네옴시티와 같은 거대한 스마트시티를 만들고자 하는 사우디에는 디지털 트윈과 관련해 모든 기술을 갖춘 네이버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봤다.
네이버 1784, 1년 동안 17회 찾은 사우디 인사들
네이버가 첨단 기술을 집약해 만든 제2사옥 '1784'도 사우디 인사들의 마음을 빼앗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784는 설계 단계부터 '로봇 전용 건물'로 기획된 곳. 로봇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고 직원들이 주문한 커피와 간식, 우편물을 원하는 자리로 로봇이 가져다준다. 특히 이곳 로봇들은 뇌에 해당하는 컴퓨터를 몸체에 달지 않고 클라우드로 옮겨 놓았다. 클라우드로 로봇에게 지시를 내리면 실물 빌딩을 똑같이 매핑한 디지털 트윈 기술을 바탕으로 로봇이 업무를 수행하는 '미래형 건물'이다.
미래형 신도시인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사우디 입장에선 디지털 트윈이 담긴 1784를 '모델하우스'로 여겼다. 실제 알 호가일 장관이 지난해 11월 온 것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17회(비공개 방문 포함)나 사우디 인사들이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네이버도 사우디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공을 들였다. 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채 대표는 지난 1년여 동안 일곱 차례나 수도 리야드를 비롯해 제다, 담맘 등 사우디 곳곳을 누볐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채 대표의 리더십도 빛을 발했다는 후문이다. 중동 지역에서는 라마단(이슬람 금식성월) 기간에 행정 처리가 느려지곤 한다. 하지만 채 대표는 이에 굴하지 않고 사우디 주택부와 소통하면서 3월 사우디의 국가 디지털전환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사업 수주의 물꼬를 텄다.
소프트웨어 기술 수출 물꼬… 반도체처럼 효자 상품 될까
네이버의 행보에 IT 업계도 고무된 모습이다. 국내 전체 수출액 중 소프트웨어(SW) 수출액 비중은 지난해 기준 2.9%(약 202억 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네이버가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와 기술력으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다. IT 업계 관계자는 "SW 분야는 원자재 가격 변동 영향이 적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며 "잘 키우면 반도체처럼 수출 효자 상품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네이버의 기술 수출에 속도가 붙으면서 국내 기업과의 시너지(상승 효과)에도 관심이 모인다. 현재 네이버의 사우디 프로젝트에는 LX와 한국수자원공사도 힘을 보태고 있다. 디지털 트윈이 오픈 플랫폼인 만큼 국내 스타트업들의 관련 SW 수출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채 대표는 "최초의 IT 기술 수출 활로를 뚫겠다는 각오로 1년 넘게 바삐 움직였다"면서 "네이버가 IT스타트업의 중동 진출에 이바지할 수 있는 포지션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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