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가을 꽃게’ 풍년… 봄처럼 알 밴 암게도 잡혀
지난 13일 오후 충남 태안 서산수협 모항항 위판장에 트럭 한 대가 들어오더니 꽃게를 쏟아냈다. 이날 오전 5시부터 6~7시간 조업해 잡은 꽃게 약 350㎏이었다.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꽃게는 겨울이 오면 먼바다로 나간다. 수온이 6도 이하로 내려가면 몸을 파묻고 겨울잠을 잔다. 11월이면 ‘가을 꽃게’는 사라지고 한 해 꽃게 조업도 마무리된다. 그런데 올해는 12월 중순인데도 가을 꽃게가 풍년이다. 위판장 관계자는 “작년 12월만 해도 꽃게는 다른 물고기 잡다가 간혹 걸리는 수준이었다”며 “12월에 꽃게가 이렇게 많이 올라오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다른 트럭도 들어와 꽃게 수백㎏을 쏟아부었다. 한 선주는 “오전 2시부터 그물을 쳐서 300㎏쯤 잡았다”며 “12월 들어 600㎏까지 잡은 날도 있었다”고 했다. 위판장의 ‘꽃게 선별사’들이 바쁘게 암게와 수게를 골라냈다. 봄에는 알이 들어찬 암게가 더 비싸고, 가을에는 수게가 더 인기라고 한다. 8월 산란을 끝낸 암게는 살이 덜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2월 꽃게는 암게가 더 비싸다. 수협 관계자는 “봄처럼 알이 찬 암게가 잡히고 있다”고 했다. 어민들은 “햇게” “봄 꽃게”라는 표현을 썼다. 겨울 잠을 자야 할 암게가 따뜻한 수온 때문에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기후 변화로 올해 서해 수온은 예년보다 1~1.5도 높다. 지난여름 꽃게들이 연안으로 대거 몰린 뒤 먼바다로 나가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서해 최대 꽃게 어장인 연평도의 어획량은 지난달 기준 169만㎏을 넘으며 최근 5년간 가장 많이 잡혔다.
어민들은 “꽃게가 많이 잡히는 것은 좋은데 올해는 유독 ‘물렁게’가 많이 올라왔다”고 했다. 물렁게는 껍데기가 단단하지 않아 제값을 못 받는 꽃게를 말한다. 위판장 관계자는 꽃게로 가득 찬 수조 한 곳을 가리키며 “전부 물렁게”라고 했다. 한 마리를 들어 올려 배딱지를 눌러보니 푹 들어갔다. 이날 위판장에 들어온 꽃게 2645㎏ 중 746㎏(약 28%)이 물렁게였다. 최근 암게는 1㎏당 2만원까지 나가지만 물렁게는 암수를 섞어 1㎏당 9000원 정도에 그치고 있다. 김서영 태안근해 자망협회장은 “많이 잡혀도 (물렁게 등으로) 가격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꽃게는 수온이 18~20도로 오르는 6~8월 알을 낳고 허물을 벗는다. 이 기간엔 껍데기가 단단하지 않고 살도 들어차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지지만, 9월 중순이 되면 물렁게는 거의 없어진다. 그런데 올여름 서해 꽃게는 산란이 늦었다고 한다. 표층 수온은 높았지만 지난 8월 밑바닥에 냉수가 유입되면서 허물도 늦게 벗었고 지금까지 물렁게가 올라오는 것으로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는 보고 있다. 올해 냉수가 연안까지 밀려온 데 대해 서해수산연구소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했다.
올해 서해 수온이 오르며 꽃게는 풍년이었지만 까나리는 흉년이었다.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까나리는 5~6월 주로 잡히며 백령도 특산물이다. 그런데 올해 인천 연근해에서 잡힌 까나리는 305t으로 작년의 1105t과 비교할 때 72.4%나 줄었다. 김진구 부경대 교수는 “까나리는 수온이 15도 이상 올라가면 해저 모래 밑에서 ‘여름잠’을 잔다”며 “올해는 서해 수온이 빨리 오르자 한창 조업할 시기에 모습을 감춘 것”이라고 했다.
기후 변화로 한반도 주변 바닷물 온도가 달라지자 ‘어획 지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김병직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동해 오징어잡이는 12월이 성수기인데 올해는 어획량이 크게 줄었고, 남해에선 동남아에서 잡히는 아열대 어종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며 “평균 수심이 44m 정도인 서해 바닷속은 더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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