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 게임체인저 ‘GLP-1 유사체’...사이언스 선정 올해 최고 연구

이병철 기자 2023. 12. 15.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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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올해의 혁신적인 연구 성과 발표
GLP-1 유사체, 당뇨병과 비만은 물론 심혈관 질환, 중독, 치매 치료 효과까지
인류 이동 역사 바꿀 발자국, 엑사스케일 컴퓨팅 등 10개 연구 성과 선정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GLP-1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GLP-1 유사체'가 사이언스가 선정하는 '올해의 혁신적인 연구 성과'로 꼽혔다. 당뇨병과 비만은 물론 심혈관 질환, 중독, 치매까지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조선일보DB

예기치 않은 기회가 역사에 남을 발견을 만들기도 한다. 최근 의료계에서 큰 주목을 받는 비만 치료제 ‘GLP-1(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 유사체’가 대표적이다. 인슐린 분비를 조절하는 호르몬인 GLP-1의 기능을 내는 유사체는 당초 당뇨병 치료제 후보물질로 개발됐다. 그러던 중 뛰어난 체중 조절 효능이 확인되면서 비만 치료제로 글로벌 의약품 시장을 휩쓸고 있다. 이제는 심혈관 질환과 중독, 치매 환자에 대해서도 효능을 낼 것이라는 기대까지 나오고 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15일 GLP-1 유사체 개발을 ‘올해의 혁신적인 연구 성과(Breakthrough of the Year)’ 중 첫 번째로 꼽았다.

GLP-1은 인크레틴 호르몬 중 하나로 혈당 수치에 따라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해 혈당을 내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즉각적인 혈당 완화 효과를 낼 수 있으나 문제는 분해 속도가 워낙 빠르다는 점이다. 인체에서 만들어지는 GLP-1은 일시적으로 혈당을 낮춘 후 이내 분해돼 사라진다.

GLP-1 유사체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당뇨병 환자를 위한 의약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됐다. 인위적으로 합성한 GLP-1은 인체에서 안정성이 높아 오랜 시간 혈당 수치를 낮출 수 있다. 덕분에 이미 20년 전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당뇨병 치료제로만 남을 뻔 했던 GLP-1 유사체는 2014년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비만 보조치료제로 허가 받으면서 의료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최초의 GLP-1 비만 치료제인 삭센다는 국내에서도 2017년 허가 받았다. 이후 삭센다가 불러 온 비만 치료제 열풍을 타고 글로벌 제약사에서는 GLP-1 유사체를 이용한 신약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현재는 위고비, 마운자로를 비롯한 비만 치료제가 연이어 출시됐다.

GLP-1 유사체가 불러 온 비만 치료제 열풍은 실로 대단했다. JP모건은 GLP-1 유사체 의약품 시장은 2032년 710억달러(약 94조원)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전 예측치인 340억달러에서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GLP-1 유사체의 혈당 저감 효과로 인해 뛰어난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GLP-1 유사체로 당뇨병, 비만뿐 아니라 심혈관질환, 중독, 치매를 치료하려는 시도도 시작되면서 앞으로 시장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 8월 위고비를 이용한 임상시험에서 심장마비, 뇌졸중,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20%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지난 2월에는 GLP-1 유사체를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사용하기 위한 임상시험 계획도 공개했다. 덴마크 연구진은 GLP-1 유사체로 알코올 중독(AUD)을 관리할 수 있는지 실험한 결과, 음주량을 유의미하게 감소시키는 효과를 확인하기도 했다.

홀든 소프 사이언스 편집장은 “GLP-1은 우리가 찾은 대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받고 있다“며 “이는 혁신적인 연구의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에서 발견된 아메리카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 발자국. 2만3000~2만1000년 전 빙하기에 생성된 것으로 확인됐다./미 국립공원관리청

미국 뉴멕시코주의 화이트 샌드 국립공원에서 발견된 인류 발자국도 GLP-1 유사체와 함께 올해의 혁신적인 연구 성과로 선정됐다. 미국 지질조사국 연구진이 지난 6월 공개한 이 발자국은 인류가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했을 것이라고 여겨진 시기를 최소 5000년 앞당겼다. 이제까지 1만6000년 전 인류가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디뎠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2만3000~2만1000년 사이에 만들어진 인류 발자국이 발견된 것이다. 과학계에서는 인류의 이동을 설명하는 이론이 뒤집힐 수 있는 중요한 연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이언스는 1초에 100경번 연산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진 엑사스케일 컴퓨팅 기술에도 주목했다. 이같이 뛰어난 성능을 갖는 컴퓨팅 기술은 시뮬레이션,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을 비롯해 첨단 연구에 필수적인 자원이다. 이미 미국과 중국이 엑사스케일 컴퓨터를 확보했으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이외에도 모두 10개의 연구 성과가 사이언스가 선정한 ‘올해의 혁신적인 연구 성과’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1월과 7월 각각 승인된 알츠하이머병 항체치료제를 비롯해 지하에서 발견된 천연 수소, 신진 과학자를 육성하기 위한 과학 정책, 지구의 탄소 배출·흡수량을 결정하는 탄소 펌프의 작동, 대규모 블랙홀 합병으로 발생한 성간 신호, 인공지능(AI) 기반 일기 예보, 말라리아 백신을 올해의 혁신적인 연구 성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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