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치에 맞을 때마다 "감사합니다"…열 네살 지옥이 된 학교
수차례 복부 등 구타…"안 죽었냐" 폭언
야구공 던져 '헤딩' 시키고 "돼지XX" 모욕
코치는 "친근감 표시", 감독은 혐의 부인
우울증 진단…"피해자만 고통받아" 분통
경찰 수사 착수…"학교 측, 분리조치 늦어"
코치님이 무릎으로 허벅지를 찍는 '마비킥'을 할 때마다 다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복부를 때린 뒤 '감사하다'고 인사하도록 했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야구 명문중 재학생 E군 진술서.
야구 명문으로 이름난 서울 소재의 한 사립 중학교에서 야구부 지도자들이 특정 부원을 지속적으로 학대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폭언 안 들으려 무리한 체중 감량…시력 '1.0→0.1' 부작용
14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서울 A중학교 야구부 감독 B씨와 코치 C·D씨는 부원인 E군(2학년)을 1년 6개월간 반복적으로 폭행하고 모욕을 준 혐의(아동학대)를 받고 있다. 이 야구부는 전국대회 우승 후보로 꼽히는 강팀으로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등 다수의 프로야구 선수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국가대표 등을 배출했다. 현재 50명 넘는 부원이 속해 있다.
피해자 E군의 악몽은 지난해 3월 이 학교 야구부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E군의 피해 진술서에 따르면, 감독과 코치 두 명은 E군의 외모와 신체를 비하하며 수시로 폭언했다. 당시 피해 학생은 키 171㎝, 몸무게 80㎏ 정도였다. 감독이 다른 부원들이 보는 자리에서 "야 이 돼지XX야", "야구 XX 못하네" 등 수시로 폭언을 했다는 게 E군 측 주장이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E군은 한 달 만에 10kg을 감량했다. E군은 진술서에서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내가 정말 야구도 못하는 돼지XX처럼 느껴졌다"고 적었다. 무리한 감량의 부작용은 심각했다. 시력이 한 달 새 1.0에서 0.1로 뚝 떨어졌다. 야구공이 잘 안 보여서 훈련 중 배팅볼에 맞아 다치기도 했다.
코치들도 피해 학생에게 모멸적 폭언을 하며 괴롭혔다. 지난 7월 코로나19에 걸렸던 E군은 "격리 해제 후 야구부 연습에 합류했는데 C코치가 다가와 '안 뒤졌냐'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E군이 감정을 추스르며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았다"고 답하자, C코치가 싸늘한 표정으로 "아... 아깝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허벅지 차는 '마비킥'…피해 학생 화장실 문 잠그고 눈물
야구부 지도자의 학대는 폭언에서 그치지 않았다. E군은 "코치 2명이 나를 반복적으로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2월부터 시작됐다는 C코치의 '헤딩 놀이'가 대표적이다. 딱딱한 야구공을 3~4m 위로 높게 던진 뒤 "헤딩"이라고 외치면, 떨어지는 야구공을 머리로 받으며 "감사합니다"를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는 것이다.
D코치는 더 노골적으로 피해 학생을 때렸다. '차려' 자세를 시키고 주먹으로 복부를 수십 차례 때렸다는 게 피해 학생 측 주장이다. E군은 주먹으로 맞을 때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쳐야 했다. 4월에는 허벅지 바깥을 강하게 찍어 다리 힘이 풀리게 하는 '마비킥'을 맞았다. E군은 곧바로 비명을 지르며 흙바닥을 굴렀다. 그는 "집에 돌아와 화장실 문을 잠그고 1시간을 울었다"고 했다. D코치는 국내 프로야구팀에서 선수 생활을 한 젊은 지도자다.
피해 학생은 틱장애까지
야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폭언과 폭행을 견뎌왔던 E군은 지난 8월 부모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이미 틱장애까지 생긴 뒤였다. 부모는 연습을 나갈 때마다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내고 설사를 했던 아이의 모습이 그제서야 이해됐다.
E군의 부모는 다음 날 야구부를 찾아가 감독에게 피해 사실을 따졌다. 그러자 감독은 "C코치가 사과를 하도록 하겠다"며 컨테이너 박스 안에 피해 학생과 가해 코치를 단 둘이 남겨 뒀다. E군은 이 자리에서도 C코치가 폭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E군은 결국 야구부를 그만뒀다. 부모가 항의하자 감독과 코치는 다시 사과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C코치는 지난 8월 30일 면담에서 잘못을 인정했고, D코치는 9월 폭행 사실을 사과했다. 다만 D코치는 "관심 표현이자 친밀감 형성을 위한 장난이었다"고 말했다. 감독은 "폭언이나 폭행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학부모 "감독 형님 결혼식에도 30만원…코치 빨래까지" 주장
E군은 왜 괴롭힘을 당한 걸까. E군 아버지는 "돈을 적게 줘서 그런 것 같다"고 의심했다. 당시 E군 아버지는 야구부 학부모 대표였다.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매년 명절이나 지도자 생일 때 수십만 원대 현금과 선물을 줬다고 한다. 경기를 나가면 학부모들이 감독과 코치들의 특식과 별식을 따로 챙겨줬다. 이들의 운동복과 수건 빨래도 학부모들이 맡았다.
지난해 11월 B감독 결혼식과 올해 3월 D코치 결혼식에는 야구부원 수십 명과 학부모들이 참석했다. 학부모들은 축의금 액수를 고민하다가 30만~50만 원 정도가 적당하겠다고 뜻을 모았다. E군 아버지는 "축의금 액수를 정하는 과정에서 감독과 코치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50만 원을 냈다. B감독은 올해 4월 자신의 친형 결혼식에도 E군 부모로부터 축의금 30만 원을 받았다.
E군 측은 "학교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9월 11일과 13일, 학교 교장과 교감을 만나 피해사실을 다시 알렸지만, 제대로 된 분리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교는 9월 18일이 돼서야 야구부 지도자들을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과 코치들은 계속해서 야구부를 지도하고 있다. E군이 야구부를 그만둬 자연스럽게 지도자들과 분리됐기 때문에 감독·코치의 업무정지나 정직은 필요없다는 논리다. E군 아버지는 "같은 학교에서 생활하는데 야구부를 그만뒀다고 분리조치가 됐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학교 "경찰 수사에 협조…결과에 따라 조치"
E군은 결국 우울증까지 얻었다. 병원 진단서에는 '야구부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명시됐다.
학교 측은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자료를 요구해 보내줬고, 교육청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개최도 요구한 상태"라며 "결과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학교를 통해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과 코치에게 입장을 물었지만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라 언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E군 부모는 "학교에 피해사실을 알렸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며 "아동학대와 학폭은 학교장 재량으로 신속한 분리조치와 대처가 제일 중요한데 조사결과가 나온 뒤 인사조치를 취하면 우리 아이는 어쩌라는 거냐"며 허탈해했다.
※<제보받습니다> 학교 체육이나 성인 엘리트 체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조리(운동부 내 폭력•폭언 등 가혹행위, 지도자의 뒷돈 요구, 대학·성인팀 진학·진출 시 부당한 요구 및 압력 행사, 학업을 가로막는 관행이나 분위기, 스포츠 예산의 방만한 집행, 체육시설의 미개방 등)를 찾아 집중 보도할 예정입니다.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목격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21002490005416)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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