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7명 숨지게 해도 민주유공자? 野, ‘운동권 셀프 특혜법’ 강행 처리

주희연 기자 2023. 12. 15.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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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정무위서 법안 통과 밀어붙여
진보당 넣어 안건조정위 무력화
백혜련 국회 정무위 위원장이 11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11.15/뉴스1

더불어민주당은 14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을 강행 처리했다. 국민의힘이 “가짜 유공자 양산법” “운동권 셀프 특혜법”이라며 반대해 다수당 입법 독재를 견제할 수 있는 안건조정위에 법안을 회부했으나, 비교섭단체 몫에 진보당 강성희 의원을 넣어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은 “민주유공자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반(反)민주적 날치기를 했다”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이 법안은 종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민주화 운동 관련자 9844명 중 다치거나 숨지거나 행방불명된 829명을 추려 민주 유공자로 지정·예우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4·19 혁명과 5·18 민주화 운동을 제외한 다른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피해 본 이들을 유공자로 지정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대상자 명단과 공적이 비밀이라서 ‘가짜 유공자 양산법’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를 받는다.

민주당은 앞서 지난 7월 정무위 법안심사1소위에서 국민의힘 반대에도 법안을 강행 처리한 데 이어, 이날 오전 전체 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키려 했다. 국민의힘은 “소위에서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민주당이 ‘날치기’했다”며 반발했고, 안건조정위원회 소집을 요구했다. 안건조정위는 다수당과 다른 당 의원 3대3 동수로 구성되며, 의원 4명 찬성이 있어야 법안이 의결된다. 이견 있는 법안 처리 시 입법 독재를 막으려는 취지다. 그러나 민주당 소속 백혜련 정무위원장은 ‘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 비교섭단체 1명’으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에 진보당 강성희 의원을 비교섭단체 몫으로 선정했다.

경찰들 목숨 앗아간 ‘동의대 화염병’ 현장 - 1989년 5월 부산 동의대 도서관 7층 세미나실이 불에 탄 모습. 당시 경찰이 시위 학생들에게 붙잡힌 전경 5명을 구출하러 진입했는데, 학생들이 복도에 석유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져 경찰 7명이 숨졌다. /연합뉴스

이들은 국민의힘이 불참한 상황에서 안건조정위를 연 지 1시간 만에 민주유공자법을 통과시켰고, 곧바로 전체 회의를 열어 의결했다. 국회법은 안건조정위에서 최장 90일간 법안을 숙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민주당이 의석수와 꼼수로 밀어붙인 것이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유공자법을 처리하면서 날치기 처리를 했다. 절차 면에서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이날 통과시킨 민주유공자법안을 보면, 유공자로 지정된 사람은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의료 지원과 양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의료·양로 지원은 기존 유공자법을 준용한 기본적 지원”이라며 “민주화 열사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혜택을 최소화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은 “법안 내용을 보면 과거의 반정부 시위, 불법 파업, 무단 점거 농성, 자유민주주의 체제 부정 등 각종 시위 사건과 관련해서 사망했거나 부상했던 사람들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민주 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게 요지”라고 했다. 실제로 국가보훈부는 민주 유공 대상자 829명에 대한 세부 내용을 국가기록원에 요청했지만 ‘개인 정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국민의힘에서 ‘가짜 유공자 양산법’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법이 통과되면 진압 경찰이 무더기 사망한 동의대 사건, 남민전 사건, 무고한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감금·폭행한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관련자들까지 민주 유공자 심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민주당은 “보훈부가 심사위원을 꾸려 대상자를 정하고 심사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보훈부는 “현실은 깜깜이 심사가 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전체 회의에서 “대한민국의 방향성과 가치를 완전히 뒤집는 반헌법적 법률”이라며 “어떤 사건을 민주 유공 사건으로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고, 인정 기준과 범위가 법률에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는 최소한의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에도 이 법을 추진하다가 ‘운동권 셀프 특혜법’이라는 비판 여론에 거둬들인 바 있다. 당시 법안 내용 중 민주 유공자 유가족에 대한 교육과 취업 지원 부분이 ‘운동권 세습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민주당은 이를 고려해 관련 지원 내용은 삭제했다. 지금 법안대로라면 유공자와 그 가족은 의료와 양로 지원만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이 법을 통과시킨 후 법안을 개정해 다른 혜택을 더 넣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민주유공자법이 21대 국회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유공자법을 심사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라 상정을 아예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여야 합의를 깨고 일방 처리한 법안은 법사위에 상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법안은 법사위에서 60일까지는 심사를 늦출 수 있지만 그 후에 정무위가 ‘본회의 직회부’를 결정하면 본회의에서 과반 의석인 민주당 마음대로 통과시킬 수 있다. 앞서 민주당은 간호법, 방송법,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등을 본회의에 직회부한 바 있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민주유공자법은 우리 당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법안 중 하나”라며 “향후 논의 과정을 봐 가며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당 일각에선 민주당이 지지층 눈치에 ‘보여주기’를 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유공자법 처리가 민주당 숙원 사업 같은 건데, 우리가 다수당일 때 통과시키지 않으면 욕을 심하게 먹을 것”이라며 “뭐라도 하려고 했다는 흔적을 남겨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그래픽=정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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