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삿포로의 눈, 서울의 눈

박상현 기자 2023. 12. 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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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출장차 일본 삿포로에 간 몇 주 전, 하필 올해 첫 폭설이 내렸다. 도로가 금세 빙판길이 됐다. 고속도로가 폐쇄돼 1시간이면 갈 거리를 국도로 엉금엉금 기어 2시간 반 걸려 도착했다. 편의점 들러 커피 한 잔에 몸 녹이며 눈 치우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눈밭에 햇살이 반사돼 맨눈으로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눈이 부셨다. 서울에서도 지겹게 봐왔던 눈인데, 다른 게 있었다. 미세 먼지 뒤섞인 서울의 회색 눈과 달리 삿포로의 눈은 새하얗고 깨끗했다. 이런 눈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나 싶을 정도였다.

눈은 대기 중 수증기가 높은 곳에서 찬 공기를 만나 얼어붙어 떨어지는 현상이다. 이것은 눈에 대한 순수한 정의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맞는 눈에는 물뿐만 아니라 각종 먼지와 오염물질이 뒤섞여 있다. 우리나라는 겨울철에 중국발(發) 미세 먼지가 유입되는 양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깨끗한 눈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공기는 서풍(西風)에 따라 중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흘러간다. 삿포로의 눈을 보면서 “일본 미세 먼지 농도가 한국보다 낮은 건 중국산 미세 먼지를 한국인이 다 마셔줬기 때문”이라는 농이 떠올랐다.

미세 먼지만으로도 벅찬데 요즘 더 걱정되는 것은 ‘플라스틱 눈’이다. 풍화(風化)에 산산이 부서져 대기를 부유하다가 하늘 높이 올라간 미세 플라스틱이 눈과 함께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올 10월 일본 와세다대 연구팀은 후지산과 오야마산 해발 1300~3776m에 있는 구름을 분석한 결과 각종 플라스틱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구름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확인된 건 처음이다.

구름 시료를 살펴보니 1L당 6.7~13.9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있었고, 이 중엔 수분을 빨아들이는 성질을 가진 플라스틱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수증기가 얼어서 떨어지는 눈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미세 플라스틱이 물을 빨아들여 무거워져 떨어지는 ‘플라스틱 눈’이 실제로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미세 플라스틱은 5㎜ 미만으로 잘게 쪼개진 것이어서 공기나 바람을 타고 멀리 이동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사용하는 각종 플라스틱 제품을 눈과 비로 맞고, 숨으로 들이마실 날도 살면서 더 많아진 셈이다.

신생아가 태어나서 처음 배설한 태변(胎便)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상당량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세 플라스틱이 산모의 몸을 통해 태아의 소화기로 이동한 것이다. 미국 뉴욕대와 중국 난카이대 공동 연구팀이 뉴욕주의 신생아 3명의 태변 샘플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이 중 2명에게서 태변 1g당 1만2000ng(나노그램·10억분의 1g)과 3200ng의 페트(PET) 성분이 각각 검출됐다. PET는 생수병 등에 사용되는 가장 일상적인 플라스틱이다. 뉴욕대 연구팀은 생후 1년 이내 유아 6명에 대해서도 대변 검사를 했는데, 6명 모두에게서 1g당 5700~8만2000ng의 PET 성분이 나왔다. 아이들이 플라스틱 소재 카펫에서 뒹굴거나, 합성섬유를 빨고 씹으면서 미세 플라스틱 섭취가 많아진 것으로 분석했다.

지구는 본디 모든 것이 순환하도록 설계돼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미세 먼지나 플라스틱도 결국 인간에게 돌아오게 돼있다. 살면서 미세 먼지도, 플라스틱도 포함돼 있지 않은 순수한 눈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올까. 당장은 힘들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깨끗한 서울의 눈을 맞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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