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語西話] 송현공원 곁에서 1년을 함께 살며
서울 종로 북촌 입구에 있는 송현공원을 24시간 살필 수 있는 위치에 머물고 있다. 작년 늦가을 새로 공원을 개장한 이래 그 주변 지역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함께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공간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높아져만 간다.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경복궁과 북촌을 잇는 곳에 위치한 공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런저런 행사만 반복했다. 임시 건조물을 짓고 생뚱맞은 분위기를 연출할 때마다 송현을 찾은 이들의 찌푸린 이맛살과 마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주말 아침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종로문화원의 붉은 이층 벽돌 건물 뒤편 공간이 많이 바뀌었다. 마치 누에가 뽕잎을 먹어치우듯 야금야금 적지 않은 면적을 이미 잠식한 상태다. 못 보던 하얀 컨테이너가 자꾸 늘어나고 중장비도 있다. 통행로까지 차가 줄지어 서 있는 걸 보니 또 뭔가 일을 꾸미는 모양이다. 그동안 ‘시민들과 관광객은 당분간 참아달라’는 공사 현장 책임자의 안내판 하나로 때운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참은 만큼 공사 결과물이 만족스러운 경우도 별로 없었다. 이래저래 공원을 찾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송현(松峴)은 글자 그대로 ‘소나무 언덕’이었다. 궁궐 옆이라 민가도 짓지 못하게 하고 사람 출입조차 금할 만큼 엄격하게 관리하던 곳이다. 근대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 소나무도 없어지고 언덕은 평지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비어있는 자연스러운 공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2022년 10월 ‘열린 송현 녹지광장’이란 이름으로 개방하면서 인위적인 것을 최대한 절제하던 소박한 풍경이 주는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키 작은 야생 풀과 낮은 소나무 몇 그루를 심고서 우리나라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산야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연출이었다. 꾸미지 않는 질박함은 도심에서 더욱 빛을 발휘했다.
빌딩들로 빽빽한 서울 사대문 안에서 이 정도 숨구멍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쉼’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가가치를 만들어 낸다. 빈 공간에는 뭔가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나 금싸라기 땅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도 새로운 방안을 찾아가는 길이 된다. 국내 최고 수준의 예술품 소장가가 사회에 환원한 문화적 업적을 공유하는 미술관 외 나머지 터는 자연스럽게 본래 들판처럼 가꾸는 것도 또 다른 해법이라 하겠다. 공터라고 아무거나 짓겠다는 발상은 문화가 곧 국격인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다.
광화문광장, 시청광장, 청계광장은 그동안의 노하우와 그 나름의 개성으로 색깔 있는 연말 축제를 꾸려오고 있다. 따라서 후발 주자인 송현광장은 그 나름의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요란함이 아니라 한 해가 저물어가는 아쉬움과 허허로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종전의 한적함을 그대로 지켜가는 것이 제대로 된 송년 축제가 될 수도 있겠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민들과 관광객에게 법정 스님 말씀처럼 ‘텅 빈 충만’을 나누도록 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이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빈터가 영감(靈感)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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