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서울의 봄’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김요아킴 시인·부산 경원고 교사 2023. 12. 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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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독재로 얼룩진 아픈 우리의 현대사
군사 쿠데타로 멀어진 진정한 봄을 기억하다
김요아킴 시인·부산 경원고 교사

요즘 날씨가 겨울 같지 않다. 다음 계절이 오려면 한참이지만, 벌써 봄이 찾아온 듯한 설렘에 마음까지 한결 따사롭다. 흔히 봄이 주는 이미지는 늘 밝고 생기가 넘친다. 이는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맞이하는 기다림의 산물이기에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역사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엄혹한 탄압과 공포의 겨울공화국에서 한 줄기 빛과 그 자유를 찾기 위한 희망은 그래서 우리에게 더 소중하고 간절하기만 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근현대사를 보면 3.1 기미독립만세부터 4월 시민혁명, 그리고 5.18 광주 민중항쟁과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사건의 굵직한 축들이 모두 봄에 기준점을 두고 있다. 일제 강점에서부터 자유당 독재, 유신과 신군부의 폭압적 정치 앞에 민주주의로의 민중적 열망은 마치 얼어붙은 대지에 메마른 나무껍질을 뚫고 여린 꽃잎을 틔우는 산고(産苦)의 과정과 다름 없는 것이다.

최근 ‘서울의 봄’ 영화가 개봉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1979년 12월 12일, 그 9시간 동안의 숨 막히는 군부 내 쿠데타 과정을 출연한 배우들의 흡인력 있는 연기를 통해 밀도 있게 그려내면서 그간 대중이 잘 몰랐던 그날의 상황을 새롭게 각인시켜 주고 있다. 물론 영화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화면을 지켜보는 내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꼭짓점들이 몇 번이고 존재했기에 관객들이 토해내는 아쉬움과 답답함 나아가 그 분노는 고스란히 지금 우리의 몫으로 남겨진 것이다.

사건의 시발점이 된 10월 26일, 당시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의 총격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일당의 본격적인 움직임을 세밀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 육사 11기 출신들이 중심이 된 군 내 사조직 하나회는 이미 박정희의 상당한 조력에 힘입어 성장했고, 게다가 당시 경호실장 차지철을 포함해 권력 서열로 보면 3인자까지 모두 사망, 체포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백이 결국 쿠데타의 동력이 됐다. 야망이 컸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합동수사본부장이 되면서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 것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당시 전국이 아닌 제주도를 제외한 부분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군 통제권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최규하 국무총리의 정치적 무관심만 아니었다면, 그리고 노재현 국방부 장관의 비겁함과 무능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전두환은 육군참모총장인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는 만행과 하극상을 저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나아가 조직적으로 사건을 치밀하게 모의하고 미리 준비한 반란군에 비해 이를 진압하려는 육본 수뇌부들의 허술한 지휘체계와 결정적 상황에서의 어리석은 오판이 결국 영화 속에서의 ‘성공한 쿠데타’로 만들어 주고만 셈이다. 물론 장태완 수도경비 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 그리고 김진기 육군 헌병감 같은 참 군인들이 이에 결사 항전하려 했지만 이미 군 내부는 하나회 쪽으로 대세가 기울어 역부족일 뿐이었다. 결국 12.12 군사쿠데타는 이듬해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확대해 헌법과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며 정권을 폭력적으로 장악하는 5.17 내란의 가교(架橋)역할을 하고 만 것이다. 10.26 사건 이후 야당을 비롯하여 대다수 국민이 암울한 유신체제의 종언과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새로운 정치와 시대를 꿈꾸었지만, 그 ‘서울의 봄’은 끝내 오지 못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진정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이를 총과 탱크로 짓밟는 군부의 무자비한 독재는 이미 1961년 5.16에 배태되어 권력의 사유화라는 그 기시감(旣視感)은 단지 모습만 달리할 뿐,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도 여전한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필자가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국가에 태어나 살면서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대통령, 마치 충무공 하면 이순신 장군이듯 대통령 박정희의 죽음을 경험한 어린 시절의 그 희미한 기억을 한 편의 졸시로 떠올려 본다. 나아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품고 있는 그 따뜻한 봄도 함께.


‘신문지를 말았다 / 오늘의 TV 프로그램과 / 1면의 만화 네 컷 외엔 별 필요 없는 / 종이를 둥글게 말았다 / 어려운 한자로 검열된 기사들이 / 삐죽삐죽 불거져 나와 / 쉽사리 공으로 환생되질 않았다 / 급하게 청색 테이프로 봉합한다 / 어린 고사리손은 만화 속 / 마구를 꿈꾸며/ 동생이 든 빨래방망이를 향했다 / 집 마당은 좁았다 / 샐비어 꽃대들이 촘촘하게 / 전진 수비를 섰고 / 10월의 뒷집 감나무는 / 우두커니 관중이 되었다 / 공은 셋 포지션에서 / 은폐된 진실처럼 정직하지 못했고 / 결국 정타로 맞은 신문지 공은 / 한 장의 너덜해진 흑백 사진을 / 각혈하고 말았다 / 총탄에 맞아 쓰러진 어느 / 한 독재자의 붉은 말로처럼’ (‘종이공 신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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