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해외 판세 제대로 취재 못 한 언론도 반성해야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11일 정례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김별아(소설가),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상욱(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과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금현섭(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태수(변호사),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민생]
-요즘 조선일보를 보면 정치 기사, 특히 대통령 홍보 및 야당 비판 기사의 과잉이 아닐까 싶다. 과도하게 윤석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사화하는 것 같다. 대통령이 해외 방문, 엑스포 홍보 등에 나서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먹었는지 너무 디테일하게 나온다. 사회면에는 이재명, 조국, 송영길의 재판·수사 기사가 가장 많이 나온다. 거의 매일 한명씩 교대로 실리는 것 같다. 그다음 많은 것은 시국 사범·노조 기사다. 이런 자리에 ‘민생(民生)’ 기사를 써야 한다. 정치권도 민생을 얘기하지만 일종의 무의미한 립서비스가 되어버렸다. 그러면 언론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다뤄야할 것 아닌가. 언론이 사회 분열 및 정치적 양극화에 편승하지 말고 자영업자 몰락, 가계 부채, 전세 사기 등 서민의 어려움을 적극 발굴·보도해 민생 문제 해결을 선도하고 정부의 관심을 촉구해야 한다.
-11월 28일 자 <부산은 온 힘을 다했다>(A1면)와 <”부산으로 오이소, 준비 다 됐어예”>(A2면), 11월 29일 자 <마지막 순간까지 응원>(A1면 사진)과 <마지막까지 ‘부산’ 외친 유치단 “최선 다했다, 후회 없다”>(A4면) 등이 부산엑스포 유치 결정 전후에 나왔다. 이런 기사들이 대통령과 국민의 눈을 가렸다. 지난여름 대혼란을 겪은 새만금 잼버리 때와 달라진 게 없는 패턴이다. 새만금 잼버리와 부산 엑스포 유치 모두 직전까지 언론은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고 장밋빛 전망을 하다가 급작스럽게 일을 당했다. 해외 주요 언론들이 엑스포 유치 판세를 전망할 때 사우디 우세가 압도적이었고, 외교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유치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우리 언론은 한 번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와 관련, 정부 탓만 하지 말고 언론도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특파원 리포트] 개도국 눈높이 못 맞춘 K엑스포>(12월 7일 자 A38면)를 보면 엑스포 유치 실패는 결국 사우디 ‘오일 머니’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전문가보다 낙하산 입김이 더 강했다는 등 일부 이유도 거론하고 있지만, 그런 지엽적 문제들 때문에 압도적 표 차로 실패한 것 같지는 않다. 사우디가 유치전에서 많이 앞서 나가는 상태에서 우리가 후발 주자로 늦게 뛰어들었고, 대륙별 순환 개최 원칙이나 최근 개최국 면면을 봤을 때, 이번에는 중동에서 개최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받았고, 사우디의 자금력이나 효과적인 유치 전략이 빛을 발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또 과연 엑스포가 막대한 행정력과 예산을 퍼부을 만큼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이미 세(勢)가 상당히 기울어 있는 상태에서 늦게 유치전에 뛰어든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그런 측면의 언급이 없어 아쉬웠다.
[수능]
-<’킬러 수능’에 지방학력이 저격당했다>(12월 9일 자 A1·3면) 등은 올 수능을 ‘킬러 문항’과 ‘카르텔’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했는데, 이런 것은 수능의 근본 문제가 아니다. 정답률 1.4% 문항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킬러 문항은 아니라고 하니 얼마나 황당한가. 킬러 문항과 카르텔 관련자를 적발하고 그들을 수능 출제에서 제외하면 수능은 괜찮은 평가 방식이 될까. 수능은 교육이란 이름으로 행하는 가장 비(非)교육적인 국가 행사다. 이렇게 획일적으로 전국 수험생을 평가하는 일도 반세기가 넘었다. 진정한 교육 개혁을 위해 종합적·미래 지향적 시각으로 수능 이슈를 다루어야 한다. 입시에서의 공정성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만 독특한 수능 제도에 매달리고 있나. 일부 대학에 40%의 신입생을 수능 성적으로 선발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 왜 N수생의 비율이 30년 만에 가장 높아졌을까. 이런 문제에 대한 치밀한 기획·분석 기사가 필요하다.
-<1명뿐인 만점자 “선택 과목 탓에 서울 의대 지원 못해.. 후회는 없어요”>(12월 8일 자 A8면)는 수능 만점자에 대한 인터뷰인데, 서울대 의대를 지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헤드라인으로 뽑은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선택 과목이 달라 서울대 의대에 진학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는 말도 이상하다. 만점자 인터뷰가 해당 학생에 대한 내용이 되어야지 서울대 의대와 입시 제도에 대한 기사가 되고 말았다. 우리 입시 보도에서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최상위 학생들이 명문대에 어떻게 가는지에 지나치게 관심이 쏠려있다는 점이다.
-<8세 아이 던진 돌에 70대 사망... 누구도 처벌 안 받는다>(11월 20일 자 A12면)는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8세 아이가 아파트 복도에서 돌덩이를 집어던져 70대 남성이 사망한 사건을 기사화하면서, 해당 아동이 촉법소년(10세 이상 14세 미만)에도 해당하지 않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경우 처벌 여부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법정대리인 부모의 관리 감독 책임에 대해 다룰 필요가 있다. 관리 감독이 안 돼서 사고가 날 경우 부모는 민사상 책임을 진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80대 노부부 살리고... 20대 소방관은 나오지 못했다>(12월 2일 자 A1면 사진)와 <구급대원이었는데... 진화에 앞장섰다 참변>(A12면)은 제주 화재 현장에서 안타깝게 순직한 임성철 소방관에 관한 내용을 크게 다루었다. 위급한 상황에 처한 국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군인, 경찰, 소방관 등의 희생을 높이 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80대 노부부와 20대 소방관’을 강조하면서 이를 사진 제목으로 삼은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들의 나이를 대비시켜 노인의 삶을 경시하는 것 같은 오해를 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의사수]
-<1인당 학생 1.6명인데 의대 교수 부족?... 약대의 9배>(11월 29일 자 A10면) 제목을 보고 헷갈려 기사를 읽어보니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약대가 9배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약대의 9배가 맞으려면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아니라 학생 1인당 교수 수를 제목으로 뽑아야 한다. 그 아래 기사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교수들은 밤샘 수술 다반사... 강의에 연구 압박까지> 제목을 보면 “그럼 의학 교수가 부족하다”는 얘기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메인 기사 제목의 뉘앙스는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인데, 아래 기사는 부족하다로 읽힌다. 그러다보니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한 건지 이해가 안 됐다.
-<행정망 먹통 됐다. 민원 서류 올스톱>(11월 18일 자 A1면) 등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 기사가 이어졌다. 이번 정부 들어 전자정부 구축의 중심 역할을 할 디지털 플랫폼 정부위원회가 발족했는데, 관련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위원회가 준비 중인 미래 버전 그림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그런 게 없어 아쉬웠다. 외국에는 ‘국가 CTO(최고기술경영자)’ 얘기까지 들리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모든 것이 더 IT화·디지털화될 텐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제시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행정전산망 먹통과 관련, 예전에는 공공SW 사업에 대기업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데 앞으로 대기업도 들어올 수 있게 하겠다 정도로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아 아쉽다.
-<예약 앱 몰라서... 할머니는 병원서 2시간 대기>(12월 7일 자 A2면)는 줄서기 앱을 통한 예약 서비스가 제공되면서 디지털 기기 활용에 제약이 있는 고령층 소외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줄서기 불평등’이라는 재미있는 용어도 소개했다. 단, 기사에서 주목하는 것은 의료 서비스 같은 필수적 공공 서비스 불평등이란 측면에서 식당, 은행, 무인 편의점 등의 키오스크 활용 불편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50대]
-<’경제 허리’ 이제 40대 아닌 50대... 일자리 비중 첫 1위>(12월 7일 자 B2면)의 핵심 주장은 50대 일자리가 40대보다 많아졌다는 건데, 이는 인구 구성에서 50대가 40대보다 많아진 것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50대 인구 중 일자리를 가진 비율은 73%로, 40대 79%에 비해서 낮고, 30대 80%보다는 더 낮다. 그렇다면 이것은 노동력 고령화(高齡化)의 문제이지 일자리 배분에서 50대가 40대를 앞질렀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또 고령층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는 반면 청년층 일자리는 별로 늘지 않는 ‘일자리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고령층의 늘어난 일자리가 대부분 돌봄 중심의 비임금 근로나 생계형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다면 양적으로 세대 간 일자리 양극화 현상이 있지만 질적으로는 그렇지도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기사의 논지가 모호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인류 구원할 우리가 무조건 옳다” 오픈AI 사태 부른 오만>(11월 24일 자 A10면)은 미 테크 업계 유력 인사들의 왜곡된 오만이나 영웅주의 등을 ‘효율적 이타주의’라고 하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면서 ‘효율적 이타주의’를 국내에 거의 최초로 소개했다. 미국에서 ‘EA’라고 줄여 쓰는데 지금 ‘EA’는 PC를 넘어서 아주 큰 현상이 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몇몇 간부들이 그렇게 하려는 움직임을 잘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잊힌 전쟁.. 우크라 덮친 두 번째 겨울>(11월 27일 자 A1면), <우크라 후방까지 밤낮없이 공습 사이렌... 21개월째 ‘피말리는 공포’>(A3면) 등 우크라이나 전장(戰場)에서 김신영 국제부장이 보내는 르포가 눈에 띄었다. 생생한 현장 상황을 간결한 문장으로 담아냈다.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소강상태가 되면서 관심도 떨어지고 너무 먼 곳의 일이라 더 이상 전쟁이 진행되는 것에 대한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인데,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시진핑]
-<시진핑 ‘첫사랑’은 아이오와에 있다?>(11월 17일 자 A16면)는 6년 만에 방미한 시진핑 주석이 기업인 만찬에서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머물렀던 아이오와의 추억을 언급했다는 기사다. 그런데 그것이 미·중 관계에서 무슨 의미가 있어 국제면 절반 가까이 차지했는지 개인적 추억담 말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제목의 ‘첫사랑’은 미끼인 셈인데, 의미도 재미도 없는 낚시다.
-<[朝鮮칼럼] 언론은 수명을 다했다고? 당신은 틀렸다>(11월 17일 자 A34면)의 온라인 버전에 포함된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종이 신문에 없던 이 그림은 미드저니(Midjourney)라는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것이라고 명시됐다. 비를 맞으며 취재하는 기자들 모습을 통해 기자의 사명감을 표현한 것 같은데, 글의 맥락과 다소 거리가 느껴졌고 그림의 선명도도 떨어져 조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 언론계에서 인공지능 생성 그림·사진 활용에 대해 토의가 벌어지고 있다. 조선일보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료 사용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리=김정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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