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선지에 굵은 먹선 그은 듯… 국립무용단 ‘묵향’ 10주년 공연

이태훈 기자 2023. 12. 1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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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무용단 '묵향' 10주년 기념공연 시연회. 제1장 '서무(序舞)'. /뉴시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가 새하얀 한지에 굵은 먹선을 힘차게 그은 듯 정갈하다. 해외 10국을 돌며 43회 공연해 누적 관객 4만명을 넘어선 국립무용단 ‘묵향(墨香)’ 10주년 기념 공연이 14일 개막했다. 드물게 만나는 창작 한국무용 흥행작이다.

‘서무(序舞)’와 ‘종무(終舞)’ 사이 올곧은 선비의 마음을 상징하는 사군자(四君子) ‘매화’, ‘난초’, ‘국화’, ‘오죽(烏竹)’까지 총 6장으로 구성됐다. 각 장 별로 대표색을 두고, 조명과 의상, 무용수들의 춤이 선비의 붓질처럼 유려하게 어우러져 무대 위에 수묵화를 그리듯 번져나간다.

가야금·거문고의 4중주와 은은한 초록빛이 어우러진 ‘묵향’ 3장 ‘난초’의 한 장면. /국립무용단

2장 ‘매화’에선 긴 한지 위에 찍은 커다란 분홍색 꽃도장이 하나 둘 늘어나며 붉은 저고리에 꽃봉오리처럼 부푼 흰 치마를 입은 여성 무용수들의 춤도 점점 활짝 피어나고, 무대 역시 더욱 붉게 물든다. 섬세한 초록으로 물드는 난초의 3장에선 무용수들의 춤도 갸냘픈 듯 강인하고, 활짝 흐드러진 국화밭처럼 노랑으로 물드는 국화의 4장에선 뭉실뭉실 관능적인 춤사위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검은 대나무를 가리키는 5장 ‘오죽(烏竹)’의 춤은 굳세나 유연한 선비의 기상 같다. 검은 장대를 든 남성 무용수들이 활기차게 걸음을 옮기고, 단호하게 장대로 바닥을 두드리며 군무(群舞)를 선보인다.

국립무용단 '묵향' 중 제4장 '국화'. /연합뉴스

연출 뿐 아니라 무대와 의상 디자인까지 맡은 디자이너 출신 연출가 정구호의 개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 국립무용단의 ‘묵향’ ‘향연’ ‘산조’ 등에 이어 올해 미국 뉴욕 링컨센터 공연으로 호평받은 서울시무용단의 ‘일무(佾舞)’까지, 정구호는 지금 가장 각광받는 한국무용 연출가다.

안무가 윤성주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은 “핵심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짧고 긴 호흡, 치맛자락 아래로 언뜻 스치듯 보이는 내밀한 버선발의 움직임이다. 오랜 시간 전통을 수련한 국립무용단원들의 기량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공연은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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