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여자들에 더 많이 귀 기울여라
영국 BBC가 최근 한국 드라마에 강력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했다고 주목한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학교 폭력 피해 여성의 복수극을 다룬 ‘더 글로리’, 자폐증을 가진 여성 변호사가 주인공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을 소개했다. 여성이 치밀하고 잔인한 복수를 감행하고, 여성 주인공이 장애인으로 나온 드라마를 소개하면서 “지금도 한국에선 부자나 강한 캐릭터가 선호되지만 이제는 그 주인공이 여성일 수 있다는 것이 큰 변화”라고 분석했다. 과거 버릇없는 부잣집 상속자가 가난한 소녀에게 반하는 ‘꽃보다 남자’ 같은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것과 무척 대비된다는 것이다.
공연 예술 분야도 여성 주인공이 극을 이끌어가는 ‘여성 서사’가 이미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뮤지컬 ‘레드북’ ‘마리퀴리’ ‘리지’ ‘실비아, 살다’ ‘앤’ ‘프리다’ 등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은 일일이 꼽을 수도 없을 정도다. 스페인 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2018)는 초연 당시 남성 배우 없이 여배우 10명으로만 무대에 등장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경제 발전에 따른 여성의 지위 변화, 높아진 교육 수준, 사회적 성공에 대한 갈망,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여성 관객층의 등장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덕분에 이제는 여배우들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무대나 스크린에서 사라지는 일도 없다. 과거엔 30세가 되면 주연을 맡을 수 없었고 35세가 넘으면 어머니 역할, 그보다 더 나이 들어선 할머니 역할밖에 없던 여배우들이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서사를 계속 선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실제로 변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문화 예술은 한 시대의 인식을 반영하지만, 때로는 사회 변화보다 훨씬 앞서 나가는 경우도 많다. 최근 어느 중년 여배우가 사석에서 “우리 이야기를 희곡으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여성의 서사를 다룬 작품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다. 문화와 예술은 이런 목소리들을 놓치지 않고 더 다양한 사람과 세대의 이야기를 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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