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이하동문
초·중·고 시절 참으로 하기 싫었던 학교 의무 행사가 있었다. 그것은 매월 첫 주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시행하는 ‘애국조회’였다.
애국조회의 순서는 국민의례-애국가 제창–훈화 말씀–상장 수여–교가 제창으로 진행된다. 계절에 상관없이 비와 눈만 오지 않으면 1천명도 넘는 전교생이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부동자세로 듣는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조회 시간에서 훈화 말씀보다 더 싫은 게 있었다. 바로 ‘상장 수여’ 시간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상을 받는 것은 참으로 축하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상장을 받는 이들 중 대표 학생을 호명하고 수여한 후 나머지 수상자들은 ‘이하동문(以下同文)’이라며 끝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시간의 제약과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이하동문’이 필요하겠으나 그 짧은 ‘이하동문’ 한마디에 같은 상의 가치가 퇴색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물론 필자는 학창 시절 단상에 나가서 수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실까” 또는 “주님이 나를 다른 사람만큼 사랑하실까”라는 질문이 생기곤 한다. 마치 하나님이 나를 ‘이하동문’으로 사랑하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분 하나님이 80억 인류를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말은 인간의 이성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다.
또 반대로 종교적 열심이 너무 강해 잘못된 생각으로 빠지기 쉬운 것 중 하나가 ‘믿는 사람들만 사랑하신다’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장 45절에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새번역)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이하동문’이나 ‘One of them(그중 하나)’으로 대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이를 같은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것이다.
어릴 적 들은 설교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저녁 예배가 끝나고 교인 한 분이 목사님께 질문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우리는 이렇게도 많은데, 하나님이 저 같은 사람에게 관심이나 있을까요?” 그 말을 들을 목사님은 그 교인을 데리고 논둑으로 향했다고 한다. 때는 마침 모내기를 위해 논마다 물을 채워 놓았고 하늘에는 밝은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목사님은 교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성도님. 저 앞의 논들을 보십시오. 하늘에는 달이 하나만 떠 있는데 모든 논에는 달이 다 떠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이제 곧 성탄절이다. 우리 모두를 한 사람, 한 사람 사랑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를 기억하고 그분의 사랑이 필요한 모든 곳에 그 사랑을 나누는 계절이 되길 소망한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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