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산책] 죽어서도 백성을 안전하게 지킨 임금 문무대왕
신라 문무대왕은 삼국통일을 이루고도 외부침략과 나라의 올바른 통치를 위해 항상 걱정했다. 그래서 죽은 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 이를 일러 우리는 나라를 보호하는 용이라 하여 호국룡(護國龍)이란 말을 쓴다.
이 호국룡은 불교의 도덕과 교리로 집약되는 부처의 가르침인 불법을 수호해 주는 호법동물(護法動物)에서 비롯했다. 그러니 호국룡은 불교가 갖는 도덕적인 교리를 지키는 조력자였다. 불교가 종교로써 가질 수 있는 도덕과 윤리를 수호해 주는 기능을 용이 맡아 수행했다. 신라의 통치 기반이 불교의 교리에 있었으니, 문무대왕의 호국용 생각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듯 문무대왕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조력자의 역할을 죽어서도 수행하고자 했다. 외부의 침략은 신라의 통치 도덕을 파괴하는 악행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왜 문무대왕이 왕이라는 통치자에서 짐승의 응보인 용이 되고자 했을까를 생각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보면 문무왕과 지의법사가 나누는 대화가 나온다. 지의법사가 왜 짐승의 응보인 용이 되고자 하느냐고 묻자, 왕은 대답한다.
“나는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가 오래되오. 만일 추한 응보로 내가 짐승이 된다면 이야말로 내 뜻에 맞는 것이오.” 이 말은 이상적인 통치라는 면에서 아주 많은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문무대왕은 추한 짐승의 응보로 태어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를 지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문무왕이 어떤 생각으로 임금의 일을 수행했는지를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 과정을 ‘삼국유사’에서는 뒤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문무대왕은 그의 말과 같이 소원이 이뤄져서 용이 된다. 문무대왕의 아들 신문왕은 이견대(利見臺)에서 아버지가 죽어 용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신라의 보물인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만들어지는 이변을 낳는다. 산 하나가 바다에 떠서 감은사로 온다고 했을 때 일관이 점을 쳐서 말했다.
“대왕의 아버님께서 지금 바다의 용이 되어 삼한을 진호(鎭護)하고 계십니다. 김유신도 천신이 되어 신라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참 무서운 말이다. 삼국통일의 주역 두 사람이 죽어 용과 천신이 되어서 신문왕의 통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통치 방법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이는 국가를 다스림에 대나무가 합쳐야 피리를 이루듯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야 하고, 사익을 위한 편법이나 비리가 아닌 도덕적 정통으로 해야 함을 보여준 이야기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여야가 화합하고 힘을 합쳐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이처럼 문무대왕은 개인적인 이익을 탐하지 않고, 나라의 근간인 백성을 중요시했다. 왕이 나가야 할 길을 사람도 아닌 짐승의 모습인 용이 되어 조력하는 실천정신을 보여주었다. 곧, 문무대왕은 백성을 탓하지 않고, 왕이 스스로 도덕적인 실천을 보여주면서 백성이 알아서 따르도록 해야 함을 실천으로 드러낸 것이다. 죽어서까지 통치의 근간을 알려 주었다.
국가를 다스리는 왕은 백성을 신뢰하고 국가 만년대계를 세우는 큰 뜻을 품고 있어야 한다. 통치자가 아집을 내세워 정법이 아닌 편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면, 이는 이미 통치자의 자격이 상실된 것이다. 더불어 국민에 대한 신뢰를 잃었음을 뜻한다.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서는 법보다 도덕이 우선하며, 백성을 감시하지 않고 신뢰했다. 그래서 나라를 다스림에 최선은 도덕이고, 차선은 국법이며, 망국의 길은 감찰이다. 스스로 언약을 지킬 때 사회질서는 이뤄지고, 국가 공동체는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
통치자들은 스스로 개인의 업적과 인기를 내세우고, 아집으로 생각이 굳어 있으면 안 된다. 통치자는 국민의 종이라 했다. 그런데 어찌 종으로서 스스로 자신의 업적을 자랑할 수 있을까. 참 못난 모습이다. 우리 속담에 제 자랑하고 처자식 자랑하는 사람을 일러 팔푼이라 했다. 팔푼이가 어찌 선량하고 지혜로운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나설 수 있을까. 우리는 왜 통합이 아닌 화합으로 정치를 해야 하는지를 문무왕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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