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하의 대중문화평론] 그렇게 어른이 된다
츠지무라 미즈키 소설 ‘거울 속 외딴 성’에 등장
세상에 대한 희망·절망 넘나드는 ‘등교거부아’
시공간 넘나드는 판타지 속 과거·현재·미래 다뤄
학교 떠나 삶의 끈 놓은 대한민국 청소년 자화상
관계 단절로 학교 울타리 밖 등 삶의 언저리 서성여
아이들의 순수와 어른들의 인내가 만나 ‘함께 성장’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이면, 세기말의 그림자를 관통하며 지나는 것 같은 을씨년스런 느낌을 받곤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가 만들어 낸 그림자는 점점 넓어지고 짙어지는 것 같다. 이구동성으로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시대든 챗GPT의 시대든, 사람이 사는 세상이란 게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염려와 기대를 동시에 떠안고 태어난 아이들에게 보이는 우리의 관심은 출생아 수라는 숫자에 비례하지 못한다.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 삶의 끈을 놓는 아이들은 오늘도 삶의 언저리를 서성인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아동·청소년 문제를 겪었던 일본도 상황이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본의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의 ‘거울 속 외딴 성(Lonely Castle in the Mirror, かがみの孤城, 2018)’은 학교를 거부하는 ‘등교거부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 인기를 얻었다. 이전에도 학교와 관련된 여러 편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 이야기는 큰 호응을 얻어, 만화책으로 만들어졌고, 이어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하라 케이이치, 2022) 우리나라에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왠지 우리나라의 청소년들과 닮은데가 있다. ‘학교 밖 청소년’과 달리, ‘등교거부아’는 학적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들이다. 학교 안에 있지만 학교 밖에 머무르는 아이들, 그들은 세상에 대한 희망과 절망을 넘나든다. 이 소설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비현실적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간다. 각기 다른 시대에서 온 중학생들이‘거울’이라는 마법의 문을 통과하여, 외딴 성에 모이고, 새롭게 관계를 형성하며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판타지적 설정이다. 아이들은 각각 1985, 1992, 2000, 2013, 2020, 2027년의 현실을 사는데, 이 설정은 학교를 둘러싼 문제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있으며, 미래도 있을 문제라는 걸 말한다. 주인공인 일곱 명의 아이들이 만나는 과정은 비현실적이지만, 그들이 겪는 문제는 ‘지금, 여기’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소설과 영화는 코코로라는 소녀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관계의 단절로 인한 고통을 겪던 코코로는 거울 너머의 ‘외딴 성’에서 친구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면서 조금씩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새로운 관계 맺기와 공감의 경험은 코코로에게 자신감을 가져다주고, 결국 그녀는 학교로 다시 돌아간다. 코코로의 결심에는 엄마와 상담 선생님(기타지마)의 역할도 있다. 엄마와 상담 선생님은 획기적인 교육법이 아니라, 부단히 기다리고 무수한 절망 속에서도 끝끝내 버티면서 코코로의 일상을 되찾아 온다.
코코로의 상담 선생님인 기타지마는 코코로가 외딴 성에서 만났던 아키이다. 아키는 “네가 생기지 않았으면 아마 결혼은 안 했을 거야”라는 엄마의 거부 속에서 성장했다. 아키를 조건 없이 사랑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의 방임과 계부의 부적절한 접촉 시도는 결국 아키를 절망의 끝으로 밀어버린다. 세상의 끈을 놓아버린 아키를 구해낸 것은 외딴 성 속의 아이들이고, 아키는 겨우 세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는다. 아키는 엄마와 계부에게 상처받았지만, 조건 없는 사랑을 주었던 할머니와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던 상담 교사 덕분에 어른이 된다. 자신의 상처로 공감의 유대를 만들어낸 아키는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wounded storyteller)가 되고(아서 프랭크, ‘몸의 증언’), 인생의 길을 잃은 아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어른이 된다. 이 작품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소설 속의 어떤 사람도, 어떤 어른도 완전하지 않다. 아이들은 미래를 이끌고 책임질 ‘인재(人才)’이기 이전에, 연약한 사람일 뿐이다. 어른이 된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수없이 실수하고, 절망하고 무너진다.
아이와 어른 모두, 인생이라는 낯설고 거친 길 위에 있다. 그 길의 어떤 사람도, 어떤 어른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아이들 내면의 무모하고 순수한 용기 덕분에, 또 ‘기다림’과 ‘버티기’라는 지리한 인내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어른들 덕분에, 아이들은 어른이 된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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