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한국 독립운동은 과연 테러리즘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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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이 또 다시 화약고가 되기 시작했던 얼마 전, 광교 영풍문고 근처에서 일군의 외국인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며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었습니다. 놀랍게도 하마스 측이 정당하다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민간인을 해치는 일을 대놓고 버젓이 벌이고도 명분이 선다는 것인가? ‘너희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이스라엘보다 너희들이 나은 것이 무엇이냐’고 꾸짖으려다 혹 너튜브에 출연하게 될까봐 그만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간혹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전 우리 독립운동도 결국 테러 아니었나?”
이것은 사실 대단히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한국인들은 정규 과정에서 테러리즘을 옹호하는 교육을 받는다’며 이상하다는 일본인도 있습니다. ‘너희는 극우 교과서를 통해 전체주의를 가르치지 않느냐’고 하기 전에 이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 방송에서도 가끔 이 문제를 헷갈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지난해(2022년) 12월 15일에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김구와 오사마 빈 라덴의 사진을 나란히 보여주며 ‘공통점을 찾으라’는 문제를 냈다가 뭇매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현상금이 많았다’는 게 정답이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었죠.
이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죠. ‘테러의 주체들은 그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닐까? 독립과 외세배격과 저항을 위한 나름대로의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혹시 어디서,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의 지난 20세기 전반의 역사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 아니었을까?’
상당히 드문 경우지만 국내 학계에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지 않았습니다. 2004년 3월 20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한국역사연구회 기획발표회 ‘테러, 피압박민족의 저항수단인가?’에서였습니다. 의열단과 한인애국단 등 독립운동사에서 두드러졌던 이른바 ‘테러 전술’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여기서 나온 의견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1>”테러는 강대국의 물리력에 맞서 피압박민족의 해방을 추구한 수단이었고, 이는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2>”그렇지 않다. 독립운동에서 나타난 무장투쟁은 일반적인 의미의 ‘테러’와는 구분해야 한다. 역사적 맥락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정당한 행위였다.”
당시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는 발표문 ‘테러와 3·1운동’을 통해 “1923년 의열단은 테러 전술을 공공연하게 표방, 암살·파괴·폭동 등과 같은 폭력투쟁을 전개했는데, 한국인들은 이를 ‘의열투쟁’으로 본다”며 의열단과 이라크 저항세력들의 행위를 상반되게 평가하는 한국인이 테러에 대해 ‘모순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임 교수는 ‘테러와 핵무기는 약자인 비서구 세계의 무기’라고 지적한 새뮤얼 헌팅턴의 지적처럼 3·1운동기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 선상에 등장한 테러리즘은 그 전형적인 보기라고 말했죠.
테러 전술은 평화적인 만세시위 운동이 현실적 효용을 가질 수 없었을 때 출현했으며 1922년 이후 사회주의자들이 이 전술을 폐기한 이후 민족주의와 무정부주의자만의 전술이 됐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 토론자로 나선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할 말이 많아 보였습니다.
“우리의 의열투쟁은 일반적인 의미의 ‘테러’와는 확연히 구분되며, 서구적 인식으로 독립운동을 규정해선 안 된다.”
무슨 얘길까요. “테러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고한 양민을 희생시키는 일을 그 수단으로 하지만, 우리 독립운동사에선 침략과 무관한 일본 민간인들을 인질로 삼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장 교수의 말을 더 들어보죠.
“무장투쟁의 대상이 된 이토 히로부미는 ‘무고한 민간인’이 아니라 침략의 상징적 존재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테러는 자신들의 존재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의열투쟁에선 ‘우리가 했다’는 것을 당당히 밝혔다.”
당시 김영범 대구대 교수는 발표문 ‘독립운동·테러리즘·의열투쟁’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존의 개념 규정으로는 의열단의 암살·파괴 운동도 형태적으로는 테러리즘이지만, 제국주의 타도와 민족의 독립·해방이라는 목적에서 나온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의열투쟁은 인류 보편의 양심과 정의감에 입각해 구체적 표적을 대상으로 공개적인 폭력을 행한 것으로, 일반적인 테러와 동일시할 수 없기 때문에 ‘정당한 테러리즘’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죠.
독립운동은 과연 테러리즘의 일종이었을까요? 윤봉길, 이봉창, 나석주, 김상옥과 같은 무장투쟁의 주역이었던 의사(義士)들에 대해 ‘테러리스트’라 부른 자들은 바로 조선총독부였습니다.
언젠가 이 ‘돌발史전’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었지만, 김진현 전 과기처 장관은 200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 순국 의거 70주년 기념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의사의 의거는 당시 아시아 민족운동에서도 유일하게 일왕을 직접 저격한 쾌거였으며, 해외 항일독립운동을 재집결하고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더욱 굳건히 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같은 의거는 정의와 헌신이 사라진 이 시대에 커다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민족의 독립과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진 것에선 우리의 독립운동은 지금 ‘저들’의 테러와 일견 닮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목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수단입니다. 우리의 지사(志士)들은 결코 불특정다수의 민간인을 위협하거나 납치하거나 폭사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분명한 ‘민족의 독립’이었습니다. 의사능력 부족한 미성년자를 유혹하거나 출근하는 민간인을 공격하는 식의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얼치기 저항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주체가 좌(左)였는지 우(右)였는지 따지는 것도 무의미합니다.
안중근이 하얼빈역 플랫폼에서 총을 쏜 대상은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와 그를 수행하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었습니다.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진 대상은 단상 위의 침략자들이었습니다. 그 중 부상당한 한 명은 1945년 9월 2일 미주리호 선상 위 항복문서 조인식에서 일본 외무대신 자격으로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플랫폼이나 단상 아래에서 일장기를 흔들며 환호하던 일본 민간인을 공격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도쿄 왕궁(김지섭)이나 일왕이 탄 마차(이봉창), 침략의 수행 기관 동양척식주식회사(나석주)에 폭탄을 던졌을지언정, 제국호텔이나 긴자 거리나 혼마치에서 그런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도쿄 한복판에 폭탄을 들고 나타나 ‘윤봉길을 석방하지 않으면 이걸 터뜨리겠다’는 따위의 행동을 벌인 적도 없습니다. 그렇게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의롭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스스로의 인생을 헌신하며 한 가지 숭고한 목표를 위해 자신을 불살랐으면서도 불의를 저지르지 않았던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이처럼 번영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너무나 분명한 사실에 대해 우리 모두는 곧잘 망각합니다. 임정도 의열단도 광복군도 다른 모든 독립운동가들도, 결코 알 카에다나 하마스가 아니었습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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