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 '서울의봄' 141분·'노량' 153분…서사가 이긴 러닝타임
조연경 기자 2023. 12. 14. 21:29
그 시절 이야기와, 그들의 목소리와, 명확한 메시지만 담아낸다면 길어도 좋다.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그려낸 겨울 대작들의 러닝타임이 다소 길게 뽑혔다. 1000만 레이스에 올라타 누적관객수 800만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현 박스오피스 1위 '서울의 봄(김성수 감독)' 141분에 이어, 오는 20일 개봉하는 '노량: 죽음의 바다(김한민 감독)'은 무려 153분으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다채널과 콘텐트 소비 방식의 변화로 숏 플랫폼이 흥하고 있는 시대, 애초 정체성을 달리하는 극장 영화들은 영화라는 콘텐트의 멋과 맛을 지켜내면서 그럼에도 관객들이 극장에 발걸음 할 수 있도록 그 토대가 되는 작품의 완성도에 힘을 쏟으려는 모양새다. 그 중심에 올 겨울 스크린을 책임질 '서울의 봄'과 '노량: 죽음의 바다'가 있다.
러닝타임과 흥행이 별개의 카테고리라는 건 앞서 192분을 할애해 1000만 돌파에 성공한 외화 '아바타: 물의 길(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증명했다. 지난 여름 개봉한 '오펜하이머(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역시 180분의 대서사시로 관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이들 작품은 오로지 시간만 본다면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지루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서사로 이겨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러닝타임이 아무리 길어도 흥미로운 서사가 충만하다면, 이를 풀어내는 연출에 힘이 있다면 같은 티켓 값을 내고 오히려 더 길게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반증 한다.
올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작품이 될 '서울의 봄'과 '노량: 죽음의 바다' 역시 같은 결을 자랑한다. 최근 '범죄도시3' 105분, '밀수' 129분, '콘크리트 유토피아' 130분에 이어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98분, '잠'은 94분으로 끊어내면서 대부분의 한국 영화들은 최대 130분의 러닝타임을 넘기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서울의 봄'과 '노량: 죽음의 바다'는 시간을 아끼지 않았고 최대한 활용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시대극과 사극이라는 묵직한 장르를 바탕으로 단 하루 동안 일어난 실제 역사의 기록을 스크린에 옮겼다. 한정 된 시간에 장엄한 이야기를 촘촘히 담아낸 것이 되려 놀라울 따름이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는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를 전한다.
3시간 편집본에서 141분으로 압축해낸 '서울의 봄'은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선보인 지난 시대극 '내부자들' 130분, '남산의 부장들' 114분 보다 길다. 153분의 '노량: 죽음의 바다'도 이순신 3부작 '명량' 128분, '한산: 용의 출현' 129분 보다 훨씬 더 늘어났지만 당초 10분의 분량이 더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김성수 감독과 김한민 감독은 왜 이 러닝타임이 필요했는지 거두절미 작품으로 보여줬다. '서울의 봄'은 숨도 못 쉴 정도의 쫄깃한 기승전결로 '과장을 보태 14분처럼 느껴졌다'는 평을 받았고, '노량: 죽음의 바다'는 해상 전투신에만 100분을 할애해 이순신의 영혼과 정신이 스크린에서 살아 숨 쉬는 경험을 체감하게 만든다.
역사를 스포일러로 알면서도 분노하고, 알면서도 긴장케 하는 재미는 가히 걸작이다. 아까운 시간이 아닌, 특별한 시간을 선물한다. 전 국민이 응원하고 있는 '서울의 봄' 1000만 기대감은 '노량: 죽음의 바다'까지 고스란히 이어질 전망. 한국 영화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새 교두보가 될지 어느 해보다 따뜻한 겨울 극장이 준비됐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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