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설악산 케이블카 착공식 열려…‘이러다 다 죽는다’
착공식 이후에도 매주 1인 피켓 시위 나서
‘이러다 다 죽는다’. 매 주말 아침,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설악산소공원 입구에선 초록색 치마를 입은 한 남성이 이런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모습을 볼 수 있다. 녹색연합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의 박그림(75) 대표다. 설악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오색케이블카 문제도 함께 고민해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매번 피켓을 든다. 박 대표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반대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정부가 2010년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개정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반대투쟁에 나섰다. 대청봉 알몸시위를 비롯해 지방환경청과 강원도청 앞에서 노숙농성을 했다. 평소에도 접을 수 있는 피켓을 들고 다니며 수없이 1인시위를 했다. 그러나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계속 추진됐고, 2023년 11월20일 착공식이 열렸다. 박 대표는 그날도 행사장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경찰에 둘러싸여 착공식에서 환호하는 사람들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제1457호 표지이야기 ‘산양·노루·담비 위 최상위 포식자가 나타난다’ 취재를 위해 인터뷰한 이후 9개월 만에 전화를 걸었다.
—오색케이블카 착공식 당일 상황은 어땠나.
“경찰이 에워싸고 완전히 우리를 통제하는 바람에 뭘 할 수 없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들어갈 때 입구에서라도 피켓시위로 강력하게 의사표시를 하고 싶었는데, 관광버스를 타고 들어가더라. 어떻게 (의사표시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착공식은 열렸지만, 실제 착공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아직 시공업체도 선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건 시공사 선정되고 공사가 시작되면 당장 현장에서 잘릴 나무들이다. 케이블카 사업 예산이 1천억원이 넘는다. 양양군이 부담할 돈만 1년 예산의 4분의 1 정도다. 혹시 공사가 지지부진하거나, 나중에 정권이 바뀌면 공사가 중단될 수도 있다. 그럼 이미 잘린 나무와 숲은 어떻게 하나.”
—케이블카 반대를 위한 계획이 있나.
“우리 뜻을 전달하려면 끝까지 저항해야 하고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항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으니까. (어떻게 싸울지) 여러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케이블카 사업 지역 앞에) 농성장을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닌지, 삼보일배로 용산 대통령실로 가자는 의견도 있고. 강력하게 뭔가를 보여줘야 할 것 같다. 대부분 국민이 무관심하니까, 그걸 깨트릴 계기가 필요하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나 김진하 양양군수 등과는 전혀 소통이 없는지.
“못 만난다. 양양군수가 늘 하는 이야기는 이런 거다. ‘반대하는 사람하고는 만날 필요가 없다.’ 그게 군수가 할 이야긴가. 반대의견도 들어보지 않고 친환경 케이블카라고 하는 게 참….”
—케이블카가 설악산에 들어서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설악산을 포함해 국립공원은 전 국토의 5%에도 미치지 않는 아주 작은 땅이다. 어떻게 보면 숨통이고, 이것만은 지키자고 모두가 약속한 땅이다. 그걸 정부가 스스로 깨버리는 거다. 그나마 5%의 땅이라도 자연 그대로 아이들에게 되돌려줘야 부끄럽지 않은 조상으로 기억되지 않겠나. 여기도 지키지 못하면 무엇이 남겠나. 더구나 이렇게 한번 시작하면 다른 데도 다 쉽다. 김진태 지사가 착공식 때 오색케이블카를 잘 만들어서 제2, 제3의 오색케이블카를 만들겠다고 하더라. 이젠 강원도가 강원특별자치도가 되어 (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 등) 권한도 도지사가 갖고 있다.”
—<한겨레21>에 하고 싶은 말.
“세상엔 다양한 문제가 있지만, 기후위기와 더불어 모든 자연환경에 관한 이야기가 더 심도 있게 다뤄졌으면 좋겠다. 케이블카만 해도 우리에겐 끊임없이 중요한 문제이고 절박한데 한번 나오면 다시 언론에 보도되기 어렵더라. 언론이 이런 식으로 문제를 다루는 게 답답하다. 국민이 꾸준히 관심을 가지도록 이런 문제를 다뤄줬으면 좋겠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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