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판 주무르고 노벨평화상 받은 학살 원흉?

한겨레 2023. 12. 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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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이름은 하인츠 키싱거였다.

15살이던 1938년 유대인 박해를 피해 일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헨리 키신저가 됐다.

미국과 중국의 역사적 화해의 배경에도 키신저가 있다.

키신저는 1977년 국무장관에서 물러나고, 이듬해 12월15일 미국과 중국은 국교 정상화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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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나는 역사다] 헨리 키신저 (1923~2023)

독일 이름은 하인츠 키싱거였다. 15살이던 1938년 유대인 박해를 피해 일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헨리 키신저가 됐다. 유럽에 남은 친척 가운데 수용소에 끌려가 죽은 이가 많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군 병사로 나치와 싸웠고 전쟁이 끝난 뒤 하버드대에서 공부해 교수가 됐다. 1969년 닉슨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1973년 국무장관이 돼 세계를 쥐락펴락했다.

일단 그가 한 좋은 일. 평화와 질서를 위해 노력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 평화협상을 주선했다. 그해 파리 평화협정을 성사시켜 베트남에서 미국이 발을 빼도록 했다. 이 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평화상 수상에 반발하는 이도 많았다. 미국과 소련의 군축 협상도 이끌었다.

몹쓸 짓도 많이 했다. 캄보디아 무차별 폭격으로 민간인 수만명을 희생시킨 결과 폴 포트 정권이 들어서고, 칠레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며 피노체트 독재가 들어서고,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 독립운동을 총칼로 짓밟은 배경에 키신저가 있었다. 한반도에서도 1970년대 북한에 본때를 보이자며 키신저가 전쟁 위기를 키웠다고 이상돈 전 의원은 지적했다.

그 외에도 동아시아에서 키신저가 남긴 흔적은 크다. 미국과 중국의 역사적 화해의 배경에도 키신저가 있다. 밀사가 된 그는 기자들 눈을 속이고 파키스탄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

“여러분은 중국 공산당이 머리 셋, 팔 여섯 달린 괴물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저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미국 사절단을 두번째로 만났을 때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한 말이다. 키신저는 1977년 국무장관에서 물러나고, 이듬해 12월15일 미국과 중국은 국교 정상화를 발표한다.

키신저는 정치판을 떠난 뒤에도 책 쓰고 강연하고, 또 미국 정부에 조언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 사이 갈등을 염려했다. 둘 사이 전쟁이 나면 “문명을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올해 5월 100살 생일을 맞고 11월 말 세상을 떠났다. 미래는 그를, 그의 현실주의 외교를 어떻게 기억할까?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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