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님 바쁘신데 너무 감사해요”

신형철 2023. 12. 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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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누군가를 부를 때 그 사람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남들이 나를 부를 때도 "형철님"이라고 하는 경우가 잦아지는 것 같다.

그랬던 언론계에서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르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은, 젊은 기자일수록 그런 끈적한(?) 방식의 관계 맺음에 소극적이거나 거부감이 커서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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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게티이미지뱅크

신형철 | 통일외교팀 기자

 최근 들어 누군가를 부를 때 그 사람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남들이 나를 부를 때도 “형철님”이라고 하는 경우가 잦아지는 것 같다. 아직은 ‘팀장님’, ‘차장님’처럼 직위를 부를 때가 많지만, ‘○○님’이라고 부르는 게 서로 존중하는 느낌이어서 갈수록 편히 쓰는 것 같다. 기자들끼리도 나이 차 많은 선배가 아니라면 ‘○○님’이라고 부르는 일이 많아졌음을 느낀다.

‘○○님’ 호칭은 10여년 전부터 일부 아이티(IT) 대기업들에서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 사용해왔다고 한다. 위계에 따른 존대와 비하 대신에, 상호 존댓말로 호칭을 단순화한 것이다. 하지만 언론계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기자는 출입처 사람 등 취재원들과 최대한 빠르게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선배’ ‘형님’ 같은 표현이 누군가에게 다가가기에 가장 편한 호칭이기 때문이다. 학교나 지역으로 연결된다면 더욱이나 편하게 형-동생, 선배-후배로 얽히게 된다. 한밤중이나 주말에 전화해 괴롭히거나 취재 방향이나 기사 내용을 두고 충돌하기도 하는데, “아, 형님 정말 이러시기입니까”, “선배,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잘 아시잖아요”라며 눙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랬던 언론계에서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르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은, 젊은 기자일수록 그런 끈적한(?) 방식의 관계 맺음에 소극적이거나 거부감이 커서일 테다. 사실 그런 변화가 언론뿐일까. 최근 만난 한 사립대 교수는 불과 몇년 새 학내 분위기가 딴판이 됐다며 걱정스러워했다. 같은 수업에 들어온 학생들이 서로 이름을 알지도 못할 정도로 서먹해하고 서로 ‘○○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고 했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야’, ‘너’라고 부르는 대신 이름 뒤에 ‘님’을 붙이도록 한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다.

효율과 속도가 중시되는 성장 사회였던 과거 한국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이름보다 그가 가진 사회적 배경이 더욱 중요했다. 직위와 나이, 기수로 서열이 정해졌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런 시대를 살아왔던 이들에게 ‘○○님’이라고 부르며 서로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은 인간미가 사라진 시대의 한 단면처럼 느껴질 듯도 하다.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 등과 ‘형님’ ‘동생’ 하며 밤샘 술자리 끝에 특종을 보도했던 선배 기자에게 이런 후배는 너무 패기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님’ 호칭이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기회는 줄어들고 경쟁은 더욱 심해지는 가운데 젊은 세대들의 자연스러운 방어기제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 이름과 높임말이 동시에 들어 있는 ‘○○님’ 호칭의 함의는 존중과 배타성이다. 직업이나 직급, 사회적 배경보다 상대방이라는 사람 자체(이름)로 존중해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 속에는 내가 당신을 그렇게 대하니, 당신도 선을 넘어 대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님 바쁘신데 너무 감사해요.” “별말씀을요. ○○님도 좋은 오후 보내세요.” 오늘도 ‘○○님’ 호칭을 쓰며 하루를 평화롭게 마무리했다. 서로에게 폐 끼치지 않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가 생각나지만, 혐오와 냉소가 넘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서로와 조금 거리를 두는 것도 어쩌면 삶의 지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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