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질문하자, 진짜 괜찮아?

한겨레 2023. 12. 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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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경의 이방인 초라함의 상대성][안희경의 이방인, 초라함의 상대성]

11 _구로와 실리콘밸리의 언니들

홍리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다문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줄임말을 풀어 대답했다. “다양한 문화요.” 홍리가 설명했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문화를 갖는 다문화에요. 한국인들도 각자 다른 사고방식과 취향을 갖기에 다문화입니다.” 홍리는 4년 전부터 아이들의 변화를 확인하고 있다. 아이들이 먼저 ‘우리 모두 다양한 문화를 갖고 살아요’라고 말한다.

해외이주여성 커뮤니티 ‘테이크루트’가 ‘선생님의 날’을 맞아 아이 손에 들려 보낼 풍선아트 교실을 열었다. 김성은 작가가 재능기부를 했고, 참가자들은 이날 만남 자체로 미국에서 한인 학부모로 사는 막막함을 덜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테이크루트는 이날 행사를 계기로 온라인 중심 세미나를 넘어 지역 행사를 확대하게 됐다. 안미정 제공

‘‘나를 잃어버리는 시간’이 강물처럼 놓여 있다. 건너가야 한다.’

레인보우 해피잡 협동조합과 테이크루트는 ‘아이들이 안녕한 세상’을 향해 엄마들과 나아간다.

김홍리(54)는 2002년 남편을 따라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했다. 시부모님이 한국 국적을 회복한 뒤 남편이 사업을 접고 한국 회사에 취직해서다. 홍리는 한국어를 못해 밖에 나가기 어려웠다. 조선족이지만 ‘여자도 하늘의 반쪽이다’는 중국문화에 익숙한 그는 외벌이 신랑을 보는 마음이 복잡했다.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며 나간 미싱공장에서 울면서 일했다. ‘내가 왜 여기 왔을까….’

안미정(39)은 2013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신랑이 텍사스주에서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좀비 비자’라는 배우자비자(F-2)를 받았다. 경제활동도 못하고 학생비자(F-1)를 가진 남편과 동행하지 않으면 미국 입국도 못하기에 숙주에게 기생한다는 의미다. 운전을 못하고, 무서워 걸어 다닐 엄두도 못낸 미정은 종일 반지하 아파트에서 맴맴거렸다. ‘우울증 걸릴 거 같아.’

러시아어를 전공한 홍리는 중국에서 공무원이자 도서관 사서였다. 러시아와 교역하는 기업에서도 홍리를 고용했다. 기업이 도서관에 재정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러시아를 오갔고, 두곳에서 월급을 받았다. 한국에서 그의 학력과 경력은 부정당했다. 남편이 서울대언어교육원에 입학할 기회를 마련했지만, 홍리가 주저앉았다. 살림에 학비를 얹기엔 마음이 작아진 뒤였다. ‘포기도 괜찮은 선택이야.’

미정은 학생비자를 받기로 결심했다. 경제 사정으로 이탈했던 피아니스트 길에 올랐다. 장학금을 받고 석사과정에 들어갔고, 교수는 연습계획서를 주며 국제콩쿠르에 나가자고 독려했다. 첫 연습 전날, 미정은 임신 사실을 알았다. 교수는 도전을 접었다. 미정도 동의했다. 마음은 접자고 애쓰면 또 접힌다.

주머니 속 송곳은 어떡하든 삐져나온다고 했던가? 홍리에게 중국어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학부모들이 학생을 소개하면서 수업은 기차칸 꼬리 물듯 늘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어린이집에 있던 큰아이가 감기 열로 쓰러졌고, 홍리는 수업을 그만뒀다. 중국어 선생님 홍리의 삶과 엄마 홍리의 삶을 헤집으면 결코 ‘여자 대 엄마’로 나뉠 수 없지만, 통념은 아이가 아픈 탓을 엄마에게 지운다. 아니, 엄마가 먼저 주눅 든다. 1년 반이 흐르고 홍리의 엄마가 한국에 왔다. 딸의 아이들을 위해선지 딸을 위해선지 모호한 경계지만, 홍리는 중국어 선생님 역할을 되찾았다.

미정은 피아노를 치며 무엇을 배웠는지 복기했다. 무한 반복 연습이었다. 누군가는 똑같은 도레미를 150번 친다고 들을지 몰라도 그에게는 선명히 다른 150번이었다. 마침내 원하던 도레미에 다다랐다. ‘그’는 장벽을 넘었다. 장벽과 압도당하는 동요를 구별하는 차원에 이른 것이다. 장벽에 사로잡힐 때 이는 짜증으로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일상의 과속방지턱일 수 있다. 우리가 관계 맺는 사람마다 장벽 하나쯤은 안기는 것이 인생이니까. 그걸 넘는 주체는 오직 우리다. 미정은 무심히 하다 보니 할 줄 아는 자기를 만났던 것이다. 음악학원 일을 시작했다.

2010년, 홍리는 서울 구로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강사 양성과정에 등록했다. 한국역사, 아동교육, 동화구연 등을 배웠다. 당시엔 어린이집 위주로 강의했기에 그랬다. 홍리는 중국어 수업과 문화 수업을 즐겁게 병행했다. 2014년 말, 센터가 사업 중단을 발표했다. 강사와 수업을 연결하는 고리가 끊어지는 것이다. 센터는 강사들이 협동조합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홍리는 하고 싶었다. 차별과 배제를 줄이고자. 피부색 짙은 엄마들은 자녀가 따돌림당해 눈물짓곤 했다.

2015년 강사 여섯명으로 출발한 레인보우 해피잡 협동조합은 이제 조합원 강사 29명에 프리랜서 강사들까지 함께하고 있다. 어린이집, 학교 도서관 등에서 강의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온 이주민들의 문화를 소개하고, 차별과 배제를 넘어 함께하는 삶을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 세계문화행사에서 고유 의상을 입고 함께한 조합원들의 모습. 김홍리 제공

2015년 강사 6명과 센터장, 한국인 교육담당자 한명이 출자해 레인보우 해피잡 협동조합을 출범시켰다. 지금은 조합원 강사 29명에 프리랜서 강사들까지 어린이집, 학교, 도서관 등에서 자신들의 고유문화까지 교육하고, 세계문화행사를 주도한다. 홍리는 교육정책 자문가로 엄마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가르치도록 정책을 바꾸는 데 한몫해왔다.

미정은 악보를 읽지 못해도 피아노를 즐겁게 배우는 과정을 가르쳤다. 수강생이 넘쳐났다. 하지만, 다시 남편을 따라 테네시주로 가야 했다. 사뿐히 떠났다. 대학교 강의를 제안받아서다. 그러나 개강을 앞두고 코로나가 왔고 폐강되었다. 아들과 함께 하는 피아노 놀이를 찍어 사회관계망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훗날 테이크루트 공동창업자가 될 두 친구를 만난다. 문지선 강유리. 같은 30대로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2021년, 미정 가족이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자리 잡으면서 가까이 사는 셋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누군가 자기와 함께해서 행복해졌다고 말할 때 눈물 날 정도로 행복해진다, 초라해지는 시간을 건너왔다.’ 이들은 취업 훈련이 아닌 가정을 돌보려는 이주여성을 위한 단체가 없는 것을 알고 이주민 엄마를 위한 단체를 만들었다. ‘테이크루트’는 2022년 2월 주정부로부터 비영리기구로 승인받았다. 온라인으로 자녀교육, 정신건강, 기후변화 등 전문가 강의를 무료로 진행했다. 2023년에만 온라인 행사 300시간, 누적 참가자 1천명이 넘는다. 영어책 읽기, 글쓰기 모임 등이 자리 잡고, 만나야 더 진하게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하며 오는 3월 쿠퍼티노에서 한인 해외이주여성 포럼을 개최한다.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홍리를 소개했다. “참 좋은 선생님을 모셨어요. 이 분은 다문화에요. 우리는 다문화가 아니고요.”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는 다문화에요.” 소위 ‘다문화 가정’ 아이였다. 아이와 교사의 ‘다문화’는 민족 분류에 근거한 개념이다. 행정용어일 수도 있다. 홍리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다문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줄임말을 풀어 대답했다. “다양한 문화요.” 홍리가 설명했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문화를 갖는 다문화에요. 한국인들도 각자 다른 사고방식과 취향을 갖기에 다문화입니다.” 홍리는 4년 전부터 아이들의 변화를 확인하고 있다. 아이들이 먼저 ‘우리 모두 다양한 문화를 갖고 살아요’라고 말한다.

미정은 테이크루트를 출범하며 소망을 품었다. ‘‘괜찮다’라고 다독이며 사는 분들 마음에 돌 하나 던져드릴 수 있다면…. ‘조금 능동적이어도 좋지 않을까?’ 질문하게 할 수 있다면….’ 지난해 가을, 온라인 독서토론 때였다. 동부에서 참여한 분이 ‘제 마음에 돌 하나가 던져진 것 같아요’라는 말을 했다. 그 순간 테이크루트의 바퀴가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홍리는 조합원 강사들에게 능력을 키우자고 말한다. 대학에 다니다 이주한 강사에게 한국 대학 편입을 북돋고, 형편이 어려운 강사에게 조리사 자격증을 따자고 설득한다. 다들 적은 수입에도 자부심으로 활동하는데, 홍리는 지속가능하도록 그들의 삶을 보살핀다.

나는 두 단체가 닮은꼴이라고 생각한다. 소수자 여성들이 나서서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며, 무엇보다 같은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한다. 변화를 바라는 사람 스스로 변화하며 나아가는 방식이다. 주체의 역량을 키우는 이들의 방식은 바퀴의 역학을 보여주는 것 같다. 외부의 힘이 작용하며 바퀴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축과 바퀴살이라는 구조가 없다면 바퀴는 구르지 못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도 개인의 행동이 모여 궤적을 그려왔다. 아이들이 안녕한 세상으로 향하는 엄마들의 움직임이 순항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나도 내게 질문해보련다. ‘지금 이대로 괜찮아?’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2002년 미국으로 이주,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인류 생존을 위한 10년 전략을 제시하는 대담집 ‘내일의 세계’, 세계 지성들과 코로나19의 원인과 미래를 탐색하는 ‘오늘부터의 세계’,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담 ‘어크로스 페미니즘’, 문명의 현재와 이를 만들어온 개인의 마음 운용 실체까지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세계 지성 29인과의 대담 3부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대담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이해인의 말’, ‘최재천의 공부’, 에세이 ‘나의 질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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