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의 작은 아트페어…파리 라거펠트 저택 문을 열다

2023 디자인 마이애미
참여 갤러리 수 30~60곳
대형 아트페어의 6분의 1
작지만 관객 친화적 축제
앉거나 누워서도 작품 감상
파리 이어 마이애미서도 전시
부스마다 발 디딜 틈 없어

프랑스의 갤러리 빌라 알베르탕과 모빌리에내셔널이 5명의 프랑스 작가와 협업해 동시대 프랑스 장인들을 소개한 부스.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된 아트바젤이 미국 마이애미에 상륙한 건 2002년이었다. 설립 30여 년 만의 첫 ‘외출’이었다. 아트바젤을 맞이한 마이애미의 디자이너, 기업가, 갤러리, 브랜드 전문가와 수집가들은 3년을 고민했다.

“판박이 같은 아트페어는 지겹지 않아? 마이애미로 사람들을 오게 하려면 뭘 해야 하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내놓은 게 바로 ‘디자인 마이애미’다. 아트바젤 마이애미와 같은 시기에 열리는 부티크 아트페어다.

천편일률적인 하얀색 부스를 구획별로 나누고, 그 안에 그림을 걸거나 설치 작품으로 채우는 게 기존 아트페어 방식이다. 디자인 마이애미는 참여하는 갤러리를 대형 아트페어보다 훨씬 적은 30~60곳 정도로 줄이는 대신 ‘누구나 꿈꾸는, 거실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했다. 이미 알려진 거장 디자이너의 작품은 물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들을 세계 각국에서 끌어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했다.

스페인 태생의 네덜란드 작가 나초 카보넬이 선보인 작품. 이번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10만달러(약 1억3000만원)에 팔렸다. 김보라 기자

또 한 가지. 기존 아트페어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을 허용했다. “의자나 소파에 앉아보고 장식장 문도 열어보세요”라고 말한다. 낮아진 장벽에 관람객은 환호했다. 디자인 마이애미를 만든 건 마이애미의 럭셔리 지구 ‘디자인 디스트릭트’를 기획한 기업인이자 수집가인 크레이그 로빈스다. 2015년 제니퍼 로버츠 최고경영자(CEO)에게 경영을 맡기고 지금은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0여 년이 지나자 아트바젤이 디자인 마이애미에 ‘러브콜’을 보냈다. 디자인 마이애미와 공동 개최에 관한 파트너십을 맺은 아트바젤은 홍콩(3월), 바젤(6월), 파리(9월), 마이애미(12월) 등 연간 네 차례 각 대륙에서 열린다. 이 중 홍콩을 제외한 3개 지역에서 아트바젤과 디자인 마이애미가 함께 개최된다.

 파리의 라거펠트 저택도 접수

카를 라거펠트의 저택인 ‘메종 호텔’에서 지난 10월 열린 ‘디자인 마이애미 파리’.

디자인 마이애미의 힘은 지난 10월 ‘파리+파 아트바젤’에서 다시 한번 입증됐다. 몇 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디자인 마이애미 파리’라는 이름으로 패션과 문화의 본고장에 입성했는데, 이게 ‘대박’을 친 것.

이들의 첫 파리 페어 장소는 파리 근교 생제르맹데프레 지역의 18세기 저택이자 ‘샤넬’을 이끈 세계적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의 저택이었던 메종 호텔(L’htel de Maisons)이었다.

파리의 상징과 같은 이곳의 정원과 안뜰, 내부 공간에 ‘공존’을 주제로 현대적인 감각을 입힌 가구들을 큐레이션했다. 16개의 파리 갤러리, 11개의 해외 갤러리가 참여해 파리의 패션계는 물론 미술계 사람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모든 대륙 장인들의 12월 축제

미국 뉴욕 J.로먼갤러리가 출품한 토니 드 지저스의 도예 작품들.

파리의 열기는 지난 5~10일 ‘고향’에서 열린 디자인 마이애미로 이어졌다. 행사장은 40개가 넘는 갤러리 부스와 20개 이상의 브랜드 협업 작품으로 가득 찼다. 5000만원~1억원의 작품이 주를 이뤘고, 얀 쿠르베, 구마 겐고 등 장인의 작품부터 유럽과 아프리카, 중남미 대륙의 신진 작가 작품까지 다양했다.

디자인 마이애미는 아트바젤 행사장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자리 잡았는데, 야외 정원과 VIP라운지는 밤이건 낮이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관람객은 5일간 4만5000명으로 아트바젤(7만9000명)보다 적지만, 참여 갤러리의 수가 6분의 1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알짜’다. 주최 측은 올해 ‘파리 진출의 효과’로 역대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테마 큐레이션은 디자인 마이애미를 다른 아트페어와 차별화하는 핵심 포인트다. 관람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게 이 섹션을 만든 취지다. 올해의 주제는 ‘우리가 서 있는 곳(Where We Stand)’이었다.

화려하고 위트 넘치는 모던 디자인 사이에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출신 작가, 분쟁지역에서 탈출한 작가 등이 저마다의 고민을 담은 작품을 전시했다.

하이라이트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침대에 경의를 표하는 ‘존과 요코’라는 이름의 의자. 사자와 비둘기로 표현해 주목받았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루카스 바그웨스는 파스텔색으로 물들인 나무 지붕을 겹겹이 쌓은 작품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럭셔리 리조트 아만의 인테리어 부문은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가 만든 테이블과 의자 등 가구 컬렉션을 새로 공개했다. 독일 명차 아우디와 명품 브랜드 펜디, 파네라이, 보테가베네타, 페리에주에, 버켄스탁, 쾰러 등의 브랜드가 올해 후원사로 참여해 부스를 만들거나 관람객을 위한 행사를 열었다.

마이애미=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 클래식과 미술의 모든 것 '아르떼'에서 확인하세요
▶ 한국경제·모바일한경·WSJ 구독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