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2스타 파티에 초대받은 듯…그림같은 요리, 오너 셰프가 서빙
키친 둘러싼 커뮤니티 테이블
요리 지켜보며 와인 홀짝이다 보면
가와테 셰프가 다가와 묻는다
"맛은 어때요? 불편한 건 없나요?"
잊지 못할 오감만족 추억
거의 5년여 만에 찾은 도쿄, 다른 지방으로의 이동 중 잠시 체류한 만큼 만족할 만한 다이닝 레스토랑을 찾아야 했다. 늘 고민스러운 것은 짧은 일정 중 두세 번 혹은 단 한 번의 다이닝을 위해 새로이 떠오르는 루키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안정적인 리듬으로 노련한 솜씨를 뽐내는 단골 레스토랑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현재 도쿄에서 가장 핫한 이슈는 모리빌딩의 34년 만의 신작, 아자부다이힐스의 개장이다. 이에 대한 생생한 소식은 다음 회에 풀어낼 예정이지만 오늘 소개할 ‘플로릴레주(Florilege)’ 또한 아자부다이힐스 개장에 맞춰 핫하고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했다. 운이 좋게도 지난달 24일 정식 오픈 전 가와테 히로야스 셰프의 새로운 3.0 스테이지를 맛볼 수 있었다. 도쿄의 생생한 다이닝 신의 변화를 느끼려면 빼놓을 수 없는 레스토랑들 중 한 곳인 플로릴레주는 요리 외에도 다양한 시선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다.
채소 베이스 코스요리…미쉐린 그린 스타 획득
요즘 일본 내에서 트렌드처럼 이어지고 있는 ‘타블 도트(Table d’hte)’ 스타일의 새로운 공간 구성부터 지속가능성의 하나의 방향성으로서 채소 베이스의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고기나 생선의 웨이트를 줄인 코스로 변화를 꾀했다. 특히 메인에서 고기와 채소를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다는 점도 눈에 띈다. 오래전부터 코스와 곁들이는 와인 페어링과 함께 논알코올 페어링을 운영했는데 그 완성도가 여느 노르딕 퀴진의 그것들을 능가할 정도로 상당히 수준급이었다. 확실히 손님의 앞에 놓이는 접시만이 아니라 그 시간을 채우는 오감의 만족도에 세심한 정성을 들인 티가 역력하게 나타난다.
플로릴레주의 오너 셰프인 가와테는 요리사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환경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요리사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일본 국내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다가 프랑스 미쉐린 2스타 르 자르당 데 생(Le Jardin des Sens)을 거쳐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후 재패니즈 프렌치 레스토랑의 정수로 꼽히는 칸테상스(Quintessence)에서 그 기량을 쌓았다. 칸테상스가 미쉐린 3스타를 받은 초반 전성기에 빼놓을 수 없는 핵심 멤버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가와테 셰프는 2009년 처음 자신의 이름을 셰프로 내걸고 플로릴레주라는 이노베이티브 프렌치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는 <고기굽기의 기술>이라는 책을 쓸 만큼 육류를 굽는 섬세한 스킬에 능한 셰프다. 비단 소고기뿐 아니라 이번 코스에서 만난 사슴 고기라든가 오리 고기를 익히는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거기에 지속가능성에 대한 철학을 꾸준히 지켜온, 그래서 얼마 전에는 미쉐린 그린 스타를 획득하기도 한, 레스토랑이다. 음식에 사용하고 남은 채소를 모아 콩소메를 뽑아 당당히 코스에 내놓고, 13년이 된 출산을 많이 한 나이 든 소의 고기로 만든 카르파초가 시그니처로 나오기도 했다.
술지게미 이용한 빵과 아이스크림 ‘풍미 가득’
2023년 새로운 챕터를 연 플로릴레주 3.0은 어떠한 그림일까? 많은 기대를 가지고 방문했다. 우선 눈에 띄는 공간의 변화. 타블 도트의 콘셉트로 무대를 앞에 둔 객석 형태였던 좌석을 긴 커뮤니티 테이블과 키친을 긴 바(BAR) 형태로 배열했고 3~4인을 위한 테이블을 뒤쪽에 준비했다. 인상적인 변화로 느껴진 이유는 그동안 손님 테이블에 자주 나오지 않은 셰프의 활발한 소통이었다. 적극적인 호스트가 돼 손님들에게 나가는 요리를 직접 서빙하기도 하고 피드백을 들으면서 교감의 흐름을 중요시 여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키친에서도 고기를 굽느라 여념이 없다.
또한 그의 장기인 고기 굽기는 물론 일본 로컬 채소를 대대적으로 코스 내에 포진시켰다. 채소 베이스의 외식업장이 다양하기로 유명한 일본이지만 본격적인 다이닝 신에서, 그것도 미쉐린 2스타에 아시아 베스트 50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수년간 상위권을 유지해온 레스토랑의 입장에서는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사케카스(酒粕)를 이용해 발효한 빵과 크림도 등장하는데 이는 일본술인 사케 양조 과정에서 여과를 할 때 분리되는 술과 술지게미 중 술지게미를 이용해 발효를 한 것이다. 알코올이 8% 정도 함유돼 있는데 일본 요리에서는 다양하게 이 술지게미를 활용하곤 한다. 생선에 발라 숙성 후 굽는다든가 푸딩이나 아이스크림, 쿠키, 채소 절임 등으로 맛과 풍미를 더한다. 이러한 로컬라이징을 자연스레 입히며 자신들의 철학을 다시금 피력하는 방식도 참으로 유려하다.
그렇다면 프렌치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일식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그것 또한 유려하게 매만지는 기술을 보여준다. 프렌치에서 유제품을 사용하는 방법에서 그것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는데 플로릴레주에서는 셀러리악이나 콩, 두유를 이용해 크리미한 질감과 풍미를 단아하게 살린다. 입안에서 거슬림 없이 그 질감을 대체하기까지는 큰 용기와 시도가 필요한데 적절한 마지노선을 지켜가며 맛을 채우는 법이 인상적이었다.
가와테 셰프가 평생 지켜온 프렌치 퀴진의 맥을 이어가면서 일본에서 나는 식재료의 섬세한 맛과 질감을 살려내는 플로릴레주만의 색이 조금 더 명징해진 3.0 스테이지는 지금보다 더 많은 나이대의 손님들을 끌어올 수 있는 개성 있는 그림을 꿈꾸고 있는 듯하다. 와인 페어링과 논알코올 페어링의 수준 높은 감도부터 셰프와 손님이 함께 어우러져 다이닝을 즐길 수 있는 구조의 공간, 일본에서 나는 식재료와 채소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스테이지는 플로릴레주가 추구하고자 하는 맛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다.
도쿄타워가 눈앞에 펼쳐지는 아자부다이힐스의 압도적인 웅장함 속에서도 누군가의 키친에 초대받아 즐기는 풍요로운 파티 속 주인공이 되는 듯한 따스함을 만들어내는 플로릴레주에서의 디너는 도쿄의 가장 가까운 현재를 만끽할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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