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아베파' 하야시 귀환…차기 총리 노리나

이승훈 특파원(thoth@mk.co.kr) 2023. 12. 1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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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장관 4명 전격 교체
비자금 스캔들 돌파 위해
내각 2인자 관방장관에
라이벌 하야시 재기용 고육책
자민당 역학관계 변화 조짐
도쿄대·하버드 출신 하야시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 주목

일본 정계를 뒤흔들고 있는 '비자금 스캔들'로 장차관급 인사와 여당 자민당 내 주요 보직 인사가 대거 교체됐다. 이 과정에서 '포스트 기시다'를 노리는 하야시 요시마사 전 외무상이 내각 2인자인 관방장관에 기용되면서 자민당 내 파벌 역학관계에도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 14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정치자금을 뒷돈으로 받은 뒤 이를 회계처리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는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 소속 장관 4명을 교체하는 인사를 냈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기시다파 소속의 하야시 전 외무상으로, 스즈키 준지 총무상은 아소파의 마쓰모토 다케아키 전 총무상으로, 미야시타 이치로 농림수산상은 모리야마파의 사카모토 데쓰시 전 지방창생담당상으로,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파벌 소속이 아닌 사이토 겐 전 법무상으로 교체됐다.

이 밖에 아베파 소속인 하기우다 고이치 정조회장과 다카기 쓰요시 국회대책위원장, 세코 하야시게 참의원 간사장도 이날 사표를 제출했다. 이들의 후임 인사는 국회 예산안 처리 결과를 지켜본 뒤인 오는 22일께 결정될 예정이다. 아울러 기시다 총리는 차관급인 부대신으로 활동했던 아베파 의원 5명을 모두 교체했다.

이날 인사 키워드는 지난 9월 개각 때 외무상에서 물러났던 '하야시의 귀환'이다. 당초 기시다 총리는 무파벌 의원인 하마다 야스카즈 전 방위상에게 관방장관 자리를 제안했지만 하마다 전 방위상이 끝까지 고사하면서 차선책으로 하야시 전 외무상이 선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시다파' 소속이고 하야시 전 외무상이 총리직에 꿈이 있다는 점에서 기시다 총리는 하야시와 일정 정도 거리를 뒀지만,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해 '고육지책'으로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현지 분위기다.

하야시는 근대 일본을 이끈 정치인이 많이 나온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지난해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와도 지역구가 겹친다. 아베 가문은 외조부가 총리, 아버지가 외무상을 지내는 등 명문 정치가 집안으로 꼽히고, 하야시 또한 지역 내 재벌이자 유명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난 '금수저'다.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유학할 정도로 수재로 알려진 그는 야마구치현에서 상원인 참의원 의원으로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그 후 총리직을 염두에 두고 2021년 중의원(하원) 의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일본에서 중의원 의원은 총리가 되기 위한 사실상 필수 조건으로 평가된다.

하야시는 지난해 야마구치현 중의원 선거구가 축소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지역구가 아베 전 총리 지역구와 사실상 통합됐을 때 아베파의 반대에도 지역구를 수성해 아베파와 불편한 관계를 갖고 있다.

여기에 다른 파벌 수장인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와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도 하야시 를 껄끄럽게 보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비자금 스캔들'로 아베파를 대거 내친 기시다 총리가 정국 운영을 위해서는 제2 파벌인 아소파, 제3 파벌인 모테기파와의 협력이 중요한데, 하야시 때문에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야시가 재기하면서 포스트 기시다를 노리는 인사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여론조사에서는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이 항상 1·2위를 놓치지 않고 있지만, 파벌 정치로 움직이는 자민당 속성상 파벌이 없는 이시바 전 방위상이 총리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총리가 되는 관문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미 네 번이나 떨어진 바 있고, 그를 따르는 의원도 많지 않다. 자민당 내부에서는 유력한 후보로 모테기 간사장을 꼽고 있다. 모테기파 수장이기도 한 그는 강제노역, 독도 문제 등과 관련해 한국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점이 우리로서는 곱지 않은 부분이다. 하지만 당내에서 지지 기반이 탄탄해 누구보다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 밖에 고노 다로 디지털상 등도 후보로 꼽히지만, 본인이 속한 아소파 수장인 아소 다로 또한 그를 지지하지 않고, 독선적 성격 등 탓에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편 기시다 총리가 아베파 각료와 부대신을 물갈이하더라도 아베파는 물론 기시다파 역시 비자금 의혹에 연루돼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이상 사태 수습에는 한계가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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