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 "법원장추천제 유지를"… 조희대 개혁, 첫발부터 태클?
법원 게시판에 잇단 목소리
운도 떼기전에 '견제구' 날려
"김명수 키즈의 저항" 시각도
曺, 15일 전국법원장회의서
종합적으로 의견 청취할 듯
조희대 대법원장이 '법원장 추천제'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인 가운데 '법원장 후보 추천제와 재판 지연을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반발하는 판사들의 글이 법원 내부 게시판(코트넷)에 올라왔다. 일각에선 '조희대표 개혁'이 시작되기도 전에 '김명수 키즈'의 저항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15일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재판 지연 해소 방안' '안전한 법원 만들기' 등을 안건으로 놓고 법원장들의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선 방안은 자유토론 주제로 포함됐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성남지원의 A부장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 게시판에 '지방법원장 추천제와 사건처리율의 상관관계'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재판 지연(사건 처리 기간 증가)이 화두로 떠오르고 일각에서 지방법원장 추천제가 재판 지연의 한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며 글을 올린 배경을 소개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매년 정기인사에서 각 지방 법원장을 뽑을 때 해당 법원에 근무하는 판사들의 투표로 법원장 후보자들을 압축하고 대법원장이 그중 한 명을 고르는 제도로, 2019년 처음 도입됐다. '사법 민주화'를 명분으로 시작됐지만 '법원장의 인기 영합'을 부추길 수 있다는 염려가 제기됐다.
A판사는 법원의 추천제 기간과 그 직전 임명제 기간의 사건처리율을 비교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사건처리율을 분석한 결과를 설명하며 '어느 한쪽이 우위 현상을 보인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적어도 '추천제로 재판 지연이 초래되었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A판사는 사건 처리 기간이 증가하는 원인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하겠지만, "필요하다면 추천제 법원장도 민주적 리더십을 발휘해 사건처리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사법 민주화의 가치를 강조했다. "지도자가 조직 구성원들의 참여와 협의에 따라 의사를 결정하고 지도해 가는 리더십을 민주적 리더십이라고 한다"며 "민주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민주적 리더십을 통해 조직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의 B판사도 같은 날 '재판 지연과 법원장 추천제도 개선 관련 언론 보도'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B판사는 "법원장 추천제가 정말 재판 지연의 주요 원인인지 짚고 넘어가는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법원장 추천제의 본질은 결국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이원화'의 전제 아래에 지방법원장을 보임하는 대법원장의 인사 재량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있다"며 법원 이원화와 대법원장 인사 재량 통제의 취지가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B판사의 주장대로 법원장 후보를 지방법원 '투표 없이' 전국에서 추천받아 위원회에서 논의하는 방식으로 갈 경우 고등법원 판사가 지방법원장으로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지방법원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고법부장 승진제도로 승진한 부장판사들은 지방법원 부장판사와 가치관과 마인드가 다른데, 지방법원에서는 고법 부장판사들이 지방법원장에 임명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조 대법원장이 법원 이원화까지 흔들 정도로 인사 개혁을 강하게 할지는 미지수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15일 회의에서 재판 지연의 원인 중 하나로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다뤄질 수도 있고, 또는 자유주제에서 관련 제도가 논의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법원장들의 의견을 골고루 들은 후 연내에 개선 방안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은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법원장이 장기 미제 사건을 직접 맡게 하겠다'고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바 있다. 법관 증원 등 물리적 여건 개선도 당연히 추진하겠지만 법원장이 앞장서서 재판에 충실하게 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아무리 온건하게 개선하더라도 지난 김명수 대법원장 시기 '사법 민주화'의 기치를 들었던 판사들의 일정 부분 반발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판사들의 이 같은 기류에 대해 법조계에선 일종의 '기득권 저항'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명수 사법부의 '무(無) 권위, 무 감독' 체제에 적응한 판사들이 변화를 조기에 차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법조 관계자는 "사법부 외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공무원 조직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자는 것인데 마치 권위주의의 복귀처럼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윤 기자 /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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