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전해철 "선거제 개편, 한 걸음도 못나가 안타깝다"
"오늘 민주당 의원총회(의총)도 했지만 선거제 개편에 대해 대안을 마련하거나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이 14일 오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시민센터'에서 '퇴행하는 한국 민주주의, 국민 속에서 해답을 찾다'라는 주제로 열린 '민주주의 4.0연구원 창립 3주년 기념 토론회'에 축사로 나서 이같이 밝혔다. 전 의원은 민주주의 4.0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민주주의 4.0 연구원은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 의원들이 주축이 돼 지난 2020년 11월 출범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주의 2.0 정신과 철학을 이어받을 뿐만 아니라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 계보를 이어 4기 민주정부 출범을 위해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친문 싱크탱크로도 불린다.
이날 전 의원은 "시민의 참여, 대화와 타협의 정치 문화, 투명한 공직사회 구현 등 많은 이들이 민주화 이후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고민했지만 실질적 성과는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양극화 해소, 지역 균형발전, 기후위기 대응 등 국가 발전을 위해 긴 호흡으로 이어야 할 중요한 의제들도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각 분야 전문가를 모시고 다양한 주제로 토론했다"며 "또 혁신에 필요하다면 민감한 사안도 과감히 주제로 끌어올려 토론했지만 노력과 성과가 미흡했다"고 했다.
전 의원은 이 과정에서 현재 정치권에서 뜨겁게 논의중인 선거제 개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민주당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택할지, 준연동형(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할지를 두고 논의중이나 매듭짓지 못했다.
병립형의 경우 지역구 의석수에 관계 없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반면 연동형은 지역구 의석수에 정당 득표율을 연동하기 때문에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못 낸 소수 정당에도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 준연동형은 전체 비례대표 의석 중 일부는 연동형, 일부는 병립형을 따르는 구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대선 공약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거대 양당 정치구도를 깰 수 있는 정치개혁을 약속했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수석 확보를 위해 병립형으로 회귀하는 방안도 비중있게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민주당 내 반발이 거세다.
싱크탱크의 수장 답게 전 의원의 이날 축사 발언도 민주당 내 이같은 분위기, 민주당이 겪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 의원은 "양당이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대립하는 현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승자독식 선거제로 인해 유권자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정당간 극단적 대결 구도, 지역 구도를 바꿀 효과적 방안은 선거제 개편이 우선이라고 많은 분들이 이해하고 의견을 내놓는다"고 했다.
이어 "정치 발전에 필요하다면 정당이 기득권을 내려놔야 하지만 여전히 못하고 있다"며 "민주주의 4.0연구원은 다양성을 높이고 분열을 해소하는 선거제 개혁에 대해 지속 논의하고 필요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정당은 책임있게 선거제 개편에 대한 입장과 해결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자리했다. 홍 원내대표는 전 의원에 이어 축사에 나서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위기가 도래했다"며 "원인 분석에는 차이가 있지만 저는 크게 두 요인으로 본다. 하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전세계적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다. 두 가지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가 숙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당 스스로가 어떻게 다양성, 민주성을 보장하는 구조로 전환될지도 당이 안은 숙제"라며 "다만 저는 민주당이 어려운 시기마다 변화를 이끌고 중심 역할을 해왔단 측면에서 위기는 우리를 뭉치게 하고 발전하게 될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국내외 민주주의 위기 진단과 해법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됐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을 향한 쓴소리도 나왔다.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 국민에게서 답을 찾다'란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선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1960~1970년대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형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쿠테타처럼 한꺼번에 무너지는 양상이었다면 지금은 전복, 붕괴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법과 제도를 합법적으로 이용하면서 하나씩 민주주의 제도를 훼손하는 형태"라며 "우리가 모르는 사이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방식, 이를 스텔스 방식에 의한 민주주의의 퇴행이라 한다"고 했다.
임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 민주주의 퇴행의 징후들로 포퓰리즘, 정당의 약화와 (국민)대표의 실패, 산출되지 않은 임명직 전문가 집정관 집단의 발흥,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통치, 정치의 언론화와 언론의 정치무기화, 극단적 이데올리기의 강요 등을 꼽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임 교수는 엘리트들의 절제와 타협 및 갈등 관리를 기반으로 하는 보수주의자의 해법과 시민들의 더 많은 참여, 즉 '더 많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진보주의자의 해법을 소개했다.
임 명예교수는 "두 접근법 모두 일리가 있지만 상호 절충해서 어떤 것이 더 합리적인지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서 답을 찾는 기본 자세를 지녀야 한다. 국민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민심을 경청해야 한다. 그래야 쌍방 소통이 이뤄지고 국민의 진정한 뜻을 파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패널 토론에 나선 박준 한국행정연구원 국정데이터조사센터 소장은 "한국 민주주의 공고화를 위해 승자독식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양대 정당 중심의 대립적 정치구조를 혁파하고 다당제 연합정치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개헌을 통해 대통령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준연동형 선거제를 유지하면서 현재 15.7%에 불과한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대근 우석대학교 국방정책대학원 교수는 현재 정치 현실에 대해 "민주주의 위기라기보단 민주주의의 질이 나빠지고 있단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정당들이 이념, 비전, 정책이 없는 경쟁을 하고 있다"며 "현재 민주당의 문제는 도덕적 우월감, 정체성을 드러내는 비전과 가치, 정책을 찾아볼 수 없단 점, 비판을 위한 비판에 집중하고 있단 점"이라고 말했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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