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상’ 받은 한국, ‘단계적 퇴출’의 퇴출…COP28 14일의 기록
‘손실과 피해’ 기금 빠른 합의에 기대 모았으나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은 결국 합의되지 못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13일(현지시각) 막을 내렸다. 당사국총회는 세계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큰 기후정상회의다. 이번 회의에서 198개 당사국들은 예정된 회의 폐막을 하루 늦추고 밤샘 협상을 벌여 지구 온도 상승 억제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2030년이 되기 전까지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가속화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아랍에미리트 컨센서스’를 채택했다. 지난달 30일 개막해 2주간 진행된 이번 총회에서 기억해 둘만 한 다섯 장면을 정리해본다.
①예상치 못한 개막 첫날 손실과 피해 기금 합의
“오늘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30일, 이번 당사국총회 첫날 개막식에서 아흐마드 자비르 의장이 ‘손실과 피해 기금’ 운영 방안에 대한 결정문 채택을 선언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 대응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작동시키는 문제는 이번 총회에서 꼭 결론을 내야 할 핵심 의제의 하나였다. 총회에 앞서 다섯 차례 준비위원회가 있었지만 당사국 사이에 이견이 여전했다. 그러다 보니 손실과 피해 기금 문제가 총회 기간 내내 쟁점으로 다뤄질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이 예상이 첫날부터 ‘기분 좋게’ 빗나가면서 이번 총회 성과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게 했다.
당사국들은 이날 기금과 사무국을 세계은행에 잠정 설치하는 것을 포함해 준비위원회가 마련한 권고안과 같은 내용의 결정문에 합의했다. 다만 기금 초기 재원이 기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가 기금에 1억 달러를 내놓겠다며 분위기를 잡았으나, 이후 이어진 공여 약속은 독일 1억 달러, 이탈리아 1억 유로, 독일을 제외한 유럽연합(EU) 1억4539만 달러, 영국 5100만 달러, 미국 1750만 달러, 일본 1천만 달러 등 고작 7억 달러를 넘는 수준이다.
②회의장까지 미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여파
이번 총회는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이전보다 1.5도 이상 오르지 않게 하자고 약속한 ‘파리협정’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각국이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는 ‘전 지구적 이행점검’이 처음 시행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새로 불거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이번 총회에 악재로 작용했다.
전 세계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중국과 미국 정상이 불참했다. 양국은 모두 지구 온도보다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대응이 더 ‘발등의 불’로 여긴 듯 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여파는 회의장까지 이어졌다. 1일부터 2일까지 이어진 정상회의 연설에서 요르단, 터키 등은 이스라엘을 맹비난했고, 이란은 이스라엘 참가에 항의하며 퇴장하기도 했다. 회의장 밖에서도 일부 활동가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리며 희생자들을 기리는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③지명할 때부터 이어진 ‘석유 재벌’ 의장 리스크
“(지구 온도 1.5도 상승 제한을 위해) 화석연료를 퇴출해야 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당사국총회가 나흘째 접어든 3일 총회장 주변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보도한 의장의 발언을 놓고 술렁였다. 기후변화 부인론자가 했을 법한 이 발언은 당사국총회를 주도해야 하는 아흐마드 자비르 의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가디언 보도를 보면 그는 지난달 21일 한 온라인 생중계 행사에서 화석 연료 퇴출에 대한 생각을 묻는 메리 로빈슨 전 유엔 기후변화 특사의 질문에 짜증스런 투로 이렇게 답했다. 자비르 의장은 논란이 일자 이튿날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오해가 있었다”, “과학을 매우 믿고 존중한다”는 발언으로 수습에 나섰다.
아랍에미리트 산업첨단기술부 장관인 동시에 국영석유기업의 최고경영자를 맡은 자비르 의장의 역할에 대한 불안감은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가 그를 당사국총회 의장으로 지명했을 때부터 나왔다. 화석연료 소비를 줄여야 하는 국제사회의 기후 대응과 ‘이해충돌’ 가능성 때문이다. 회의 개막 직전에는 그가 중국, 브라질, 독일, 이집트 등 외국 정부에게 자국의 석유, 가스 기업을 홍보하고 거래를 제안할 계획이었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④한국 기후위기 걸림돌 인증, ‘화석상’ 첫 수상
6일 아랍에미리트 당사국총회에서 대한민국이 호명되고 태극기를 든 기후환경단체 활동가가 시상대에 올랐다. 이날 한국이 캐나다 앨버타주와 노르웨이에 이어 3등으로 수상한 ‘오늘의 화석상’은 세계 기후환경단체들의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CAN)가 이른바 ‘기후 악당’들에게 수여하는 불명예스러운 상이다. 1999년부터 시상되고 있는 이 상을 한국이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한국을 수상국으로 선정한 이유로 화석연료인 가스 확대를 위한 한국의 ‘헌신’을 수상 이유로 꼽았다. 한국 에스케이이앤에스(SK E&S)는 원주민 권리 침해와 화석연료 개발 문제 등이 지적되는 오스트레일리아 ‘바로사 가스전’에 지분 투자를 한 바 있다. 한국 정부가 당사국총회에서 운영하는 ‘한국관’에서 블루수소에 대한 새로운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도 선정 이유 중 하나다.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을 적용하면서 천연가스를 계속 사용해 결국 화석연료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⑤미뤄진 폐막식, 퇴출당한 ‘단계적 퇴출’
당사국총회에서 화석연료는 늘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지난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당사국총회(COP26)에서 당사국들은 석탄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을 논의했다. 인간이 사용하는 화석연료가 기후위기를 불렀고, 그 주범이 바로 석탄이기 때문이다. 당시 회의에서는 ‘퇴출’보다 후퇴한 ‘단계적 감축’(phase down)에 합의하고 끝났다.
지난해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당사국총회에서는 단계적 감축 대상을 다른 화석연료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다. 하지만 결실을 보지 못하고 이번 회의로 이어져 막판까지 최후의 쟁점이 됐다.
앞선 회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회의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은 화석연료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합의문 초안에 ‘단계적 퇴출’ 대신 ‘소비와 생산 감소’(reduce)로 물타기 된 문구가 들어간 것은 어쨌든 합의의 성과를 만들어내려는 조급함의 산물이었다. 이에 회의장 안팎에서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요구를 받아쓰기한 문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기후변화로 수몰위기에 놓인 군소도서국들은 물론 유럽연합까지 협상 이탈까지 경고하며 반발하자 결국 폐막일을 하루 넘기며 밤샘 협상을 벌였다.
그 결과 ‘퇴출’도 ‘감축’도 아닌 ‘전환’이라는 새로운 표현을 사용한 타협이 이뤄졌다. 최종 합의문은 “2050년까지 전 세계가 넷제로(이산화탄소 순배출 0)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결정적인 10년 안에 에너지 체계에서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환을 가속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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